[김영회 칼럼] 토정비결
[김영회 칼럼] 토정비결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20.02.10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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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장에 삿갓 쓰고 
평생 청빈한 기행으로
살아 온 토정 이지함.
그의 ‘토정비결’은 오늘도
 서민들의 지침서가 되고 있습니다 ―

민족의 명절 설을 쇠고 대보름마저 넘겼으니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제각기 “올 해 신수는 어떨까”에 쏠리고 있습니다. 이미 거리에는 책자를 바닥에 깔아놓고 앉아 손님을 부르는 이들이 눈길을 끌고 있고 인터넷에도 운세를 안내하는 사이트가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앞일에 대한 궁금증과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토정비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새해가 되면 점집을 찾아 신수를 보거나 토정비결을 통해 한 해의 운수를 미리 알아보는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토정비결은 우리 국민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근한 삶의 지침서가 된지 오래입니다.

‘토정비결’을 쓴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은 조선 12대 인종 때인 1517년  충청남도 보령현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가의 후예인 이지함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맏형에게서 글을 배웠고 대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나루(현재 서울 용강동)에서 흙담집을 짓고 움막에서 청빈하게 살아 ‘토정’이라는 아호가 붙었습니다.  

그의 나이 56세 되던 1573년 종6품으로 포천현감이 되어 처음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식량부족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휼하자는 자신의 상소(上疏)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 사직하였고 몇 해 뒤 다시 아산 현감에 발탁되어 이때 걸인청(乞人聽)을 세워 가난한 백성들을 돕는데 진력하였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현감을 지냈으나 재물에 욕심이 없어 평생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베옷과 집신을 신고 살았습니다. 

이지함은 평소 삿갓에 죽장(竹杖)을 짚고 팔도강산을 유람하는 기행을 보여 세상은 그를 ‘기인(奇人)’이라 불렀습니다. 젊은 시절 곳곳을 방랑할 때 지방 수령들이 그를 시험해 보고자 기생을 시켜 유혹하게 했지만 한 번도 이에 응하지 않는 등 여색(女色)마저 멀리했습니다. 

이지함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남명(南冥) 조식(曺植) 등 대학자들과 가까이 지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율곡에게 “이지함은 어떤 사람이요?”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율곡은 “비유하자면 기화이초(奇花異草)와 진수괴석(珍禽怪石)과 같소”라고 진기한 꽃과 풀, 진귀한 새, 보석과 같은 사람이라고 그의 사람 됨됨이를 평했습니다. 

토정비결은 기본적으로 주역(周易)의 괘로써 풀이한 비결입니다. 하지만 주역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주역의 괘는 64괘인데 토정비결은 48괘이며, 주역은 괘상이 424인데 토정비결은 144괘로, 괘를 만드는 방법 중 연월일시 중에서 생시가 제외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오늘 날 전해 오는 토정비결은 원본이 아니라고 합니다. 서민들에 의해 전해져 오는 내용을 전문가들이 기술해 놓은 책자가 전부로 거의 대부분 ‘신년운세’ 등 주술적인 성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토정비결이 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첫째 전설이나 야사를 통해 토정에 대한 여러 가지 신비한 일화가 전해져 옴으로써 토정이 쓴 비결이라면 적중률이 높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예언서와 달리 보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누구라도 책자만 있으면 작괘 법에 대한 이해와 일년 신수를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비교적 적중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선 중종과 명종 때의 인구가 적었다 하더라도 토정비결이 지니는 점괘의 한계성은 분명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점괘로서 144개 이외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운세를 보는데 그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성실 근면 정직하면 길운이 오는 괘, 노력하여 성공하는 괘, 선행을 하면 좋은 일이 있는 괘 등 전통 서민의 실천윤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토정비결은 그처럼 서민들이 살아가는데 현명한 판단을 하게하는 교훈적 내용으로 구성됐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토정비결의 특징은 사언시구(四言詩句)로 이어지고 그 밑에 한 줄로 번역되어 읽기 쉽게 되었으며 다른 점서(占書)와 마찬가지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북쪽에서 목성(木性 · 李씨, 朴씨, 林씨와 같이 木자가 들어간 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는 등의 희망적인 구절이 많고 좋지 않은 내용도 “이 달은 실물수가 있으니 조심하라,” “화재수가 있으니 불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되어있어 일상생활의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또 ▷東風解氷(동풍해빙) 枯木逢春(고목봉춘) “동풍에 얼음이 녹으니 마른나무가 봄바람을 만난다” ▷乘龍乘虎 變化無雙(승룡승호 변화무쌍) “용을 타고 범을 타니 변화가 무쌍하다” 용은 문장(文章)이고 범은 무예(武藝)의 비유이니 용을 타고 범을 탄다는 것은 문무양과(文武兩科)에 모두 급제한다는 뜻입니다. ▷有弓無矢 來賊何防(유궁무시 내적하방) “활은 있으나 화살이 없으니 공격해 오는 적을 어찌 막으랴” ▷萬頃蒼波 一葉片舟(만경창파 일엽편주) “파도치는 망망대해 나뭇잎 같은 조각배의 형세”이니, 몹시 어려운 처지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쪽에서 목성(木性 · 朴씨나 李씨, 林씨 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라는 희망적인 구절이 많고 좋지 않은 내용도 미리 경각심을 주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 사람도 희망을 갖게 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결국 토정비결의 점괘는 정해진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삶의 지침이나 덕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라고 하겠습니다.  

한 조사를 보면 토정비결은 144개 운세 중 길운(吉運)60%, 악운(惡運)20%, 도덕적 충고13%, 중립운세 7%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좋은 운이 많을 수  밖에 없고 나쁜 운은 적게 나오기 마련입니다. 옛말에 “점괘는 좋게 받아들이면 약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괘가 나오면 기분 전환으로 삼아 즐기고 나쁜 괘가 나오면 언행을 조심하라는 충고로 삼으면 좋을 것입니다. 

이지함은 아산 현감이던 1578년 갑자기 이질을 앓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수많은 고을 백성이 길에 나와 애통해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소란한 이때 미국에서 날아 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의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최고상인 작품상까지 수상하면서 4관왕에 올랐다는 낭보가 날아왔습니다. 한국 영화 101년의 금자탑이며 온 국민이 기뻐 할 쾌거입니다. 오랫만에 “아! 대한민국!”이 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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