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설날이란 무엇인가’ 묻고 싶은 당신에게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설날이란 무엇인가’ 묻고 싶은 당신에게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20.01.23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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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과 정치적 올바름의 심리학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지난해 12월 신간 관련 기자간담회 하는 모습 / 연합뉴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지난해 12월 신간 관련 기자간담회 하는 모습 / 연합뉴스

요즘 가장 핫한 칼럼니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서울대 정치학부 김영민 교수일 것이다. 그는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영화평론으로 등단까지 한 다방면으로 재주가 탁월하고 문장력도 뛰어난 실력 있는 학자다.

그런 그가 지난 2018년 추석을 맞아 모 신문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하는 칼럼으로 장안에 화제를 모으며 일약 당대 최고인기를 가진 대중적인 칼럼니스트가 됐다. 그는 예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취직은 했는지,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살은 언제 뺄 것인지 등등…

당신도 과거의 당신이 아니며, 친척도 과거의 친척이 아니며, 가족도 옛날의 가족이 아니며, 추석도 과거의 추석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은 집어치워 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물론 그의 글은 학문적 논증을 필요로 하는 논문도 아니고, 비유와 상징을 냉소적으로 혹은 해학적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칼럼의 형식을 빌렸다. 당연하게도 그는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누릴 권한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철학을 공부하고 사상사를 강의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최고의 지성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한마디가 던질 수 있는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학동기였던 김영민을 기억한다. 그와는 그냥 인사만 몇 번 나눈 일면식 정도의 인연이지만 학부시절부터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탐구하던 똑똑한 학생이었다는 인상은 남아있다.

하지만 이 칼럼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글에는 그의 스승 도올 김용옥 선생을 추종하던 철학과 대학생 김영민의 혈기 방장함이 묻어 나온다. 포퓰리즘, 즉 대중추수주의(大衆追隨主義)에 능한 도올 선생의 문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도양단 식으로 단순명쾌하게 단정을 내리는 스타일도 빼닮았다.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김영민에게 있어 부모나 일가친척은 한 순간에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들의 자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에 불과할 뿐이다.

하긴 김영민에게 가족과 친척은 ‘성가신 오지랍퍼’이고 명절은 아무런 의미없는 ‘무의미철자(nonsense syllable)’에 불과한 것 같다. 그는 말한다.

“당신도 과거의 당신이 아니며, 친척도 과거의 친척이 아니며, 가족도 옛날의 가족이 아니며, 추석도 과거의 추석이 아니다.”

이미 세상은 변했다. 당숙이 취직에 대해서도 묻는 것이 금기가 되는 사회다. 이런 행태는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듣지 않으려 하는 풍토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향성이 운동성까지 띠게 된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 그것은 소수자에 대해서는 어떤 종류의 편견이 담긴 언어적 표현도 하지말자는 사회적 운동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운동의 기본적인 취지는 옳다. 나 또한 전적으로 찬동한다. 하지만 늘 그것을 엉뚱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어느새 정치적 올바름은 모든 종류의 듣기 싫은 소리를 막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아니 모든 인간관계를 갑-을관계 아니면 다수자-소수자 프레임 혹은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

부모님의 애정 어린 자식 걱정도 나의 자유를 박해하는 가해성 발언일 뿐이다. 핏줄이 섞인 당숙의 조카에 대한 관심도 갑질 발언이다. 그러므로 당숙에게 굳이 ‘당숙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야 직성이 풀린다.(라고 김영민은 선동하고 있다.)

나도 인정한다. 세상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 이제는 남의 자식이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 묻지 않는 게 예의인 세상이다. 혼기가 찬 자녀들이 결혼은 언제 하는지, 그들은 왜 아직도 애를 갖지 않는지 묻는 것은 금기가 된지 오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것처럼, 명절에 시댁에서 실컷 봉사하고 겨우 한숨 돌려 친정으로 가려고 하면, ‘네 시누이 가족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 대접 좀 하고 가라!’는 그런 시부모님이야말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명절에 여성들만 죽어라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남성들은 흥청망청하는 집이 아직도 있다면 곤란하다.

한창 취업 준비 중인 조카 앞에서 자기 자식이 어느 대기업에 취직했네, 자랑질이나 해대고, 결혼 아직 못한 사촌동생에게 무슨 문제나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촌 오빠 같은 사람도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그런 시류를 감지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면 그야말로 개념없이 오지랖만 넓은 사람 소리를 들어도 싸다. 이번 설은 김영민이 말하는 것처럼 ‘잡귀’나 오지랖퍼가 설치는 명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도 아니고 부모님이, 친척이 인지상정의 관심을 표명하는 애정어린 한마디조차 참지 못하고 싸가지 없게(?) 대꾸를 하라고 선동하고, 그들을 잡귀(雜鬼)로 매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그만해야할 것 같다. ‘예능을 다큐로 받는다’는 말처럼 김영민 교수가 한번 웃자고 한 얘기를 정색하고 되받은 것 같다. 이제는 원숙한 경지에 들어선 50대 중반의 중견 교수가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이나 심리학적 성찰은 없이, 대중에 아부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곡학아세의 선봉에 선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 정담을 나눌 것이다. 이번 설에 우리가 ‘설날이란 무엇인가?’하고 가장 먼저 물어야할 대상은 우리 부모님이나 당숙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추석이란 무엇인가’ ‘설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김영민 교수가 명쾌하게 다시 내려주기를 학수고대한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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