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가곡에 흐르는 한국의 정서
[송장길 칼럼] 가곡에 흐르는 한국의 정서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20.01.21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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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의 겨울 철새들 / 연합뉴스
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의 겨울 철새들 / 연합뉴스

새해 벽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아리수 한국가곡제는 한반도의 수려한 산과 강, 먼 바다, 그리고 바람과 구름 아래의 우리네 삶을 두루 불러들였다. 청산에 살리라고 노래했으며, 남쪽 바다를 추억했고, 금강산을 그리워했다. 리라꽃 향내와 고향을 절절히 그리는 향수, 시리도록 순수한 사랑도 피워냈다. 봉선화와 목련화, 동심초는 영원한 민요 아리랑의 곡조와 어우러져 생화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가슴에 묻혔던 깊은 정서를 홀려내는 선율을 타고 겨울밤은 그렇게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졌으며, 풍류로 감싸주었다.

올해 한국가곡의 밤은 더욱 뜻 깊은 향연이었다. 한국가곡이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가 그 첫모습을 보인 지 10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홍난파의 곡이 1920년에 ‘애수(哀愁)’라는 악보로 선을 보였고, 이웃에 살던  김형준이 뒤에 가사를 붙여 넣었다. 1922년에는 박태준이 ‘동무 생각’을 ‘사우(思友)’라는 제목으로 작곡해 이은상의 가사를 받아 붙였다. 창가(唱歌)시대를 거쳐 본격적으로 한국 고유의 가곡이 큰 걸음을 내딛은 발원이었다. 그리하여 가곡은 한국적인 산하(山河)와 감성을 토양으로 쑥쑥 자라서 애창됐고, 한국인들은 그 가곡에 실린 감흥에 젖어 울며, 웃으며 고달픈 삶을 달랬다.

공자는 순(舜)임금의 음악 ‘소(韶-중국의 고대 악곡)’에 취해 석달 동안 고기맛(음식맛)을 잊고, “음악을 하는 것이 이런 경지에 이를 줄은 몰랐다”고 술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공자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마음을 밝고도 순수하게 하며, 그리고 조화롭게 한다고 역설했다. 2500여 년 전에 동양문화와 사회규범을 설계한 성인(聖人)은 그때 벌써 음악의 예술성과 힘을 선명하게 갈파했던 것이다. 그 만큼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휘어잡는 절묘한 문화적 도구이자 반려이었다.

가곡이 한국인의 깊은 마음밭을 그토록 흔들어 놓는 요인은 무엇인가? 외국가곡도 감흥을 크게 일으키는 명곡들이 많지만, 한국가곡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고도 공감을 주는 이유는 의식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한국적인 것, 민족혼과 민족얼 때문일 것이다. 노랫말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숨쉬고 있는 독특한 한(恨)과 그리움, 희원(希願) 같은 감성이 여기저기 드리워져서 향기를 풍긴다. 이은상의 ‘가고파’에서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라든가 정지용의 ‘향수’에서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라는 가사는 얼마나 한국적인 표현인가. 김형준의 ‘봉선화’에서 "울밑에 선 봉선화야~, 북풍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라든가, 이은상의 ‘동무생각’에서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도 우리의 심금을 지극하게 울리는 서정시적 묘사이다. 장일남의 비목과 윤해영의 선구자, 김동환의 봄이 오면, 이은상의 봄처녀, 정인섭의 산들바람, 김팔봉의 그네, 함호영의 사공의 노래, 경기 민요 박연폭포, 김남조의 그대 있음에 등등의 주옥 같은 가곡들도 굽이굽이 한국적 삶을 상징하는 대목들을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적인 정서로 꽃핀 가곡은 거꾸로 한국인의 정서에 다시 흐르고, 파고들어 심상을 맑게하고, 어루만저 주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영-미풍과 대륙풍의 가곡 형식을 도입해 성장한 한국가곡은 서구화의 물결을 타고 보편화를 체화하고, 학교교육을 통해 일반화됨으로서 교양을 높이고 품성을 함양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시적으로 고양된 가사는 고도로 수련된 음악인들의 비단 같거나 우렁찬 발성법에 올라타 아름다운 춤사위처럼 고고하고 찬연하게 가창됨으로서 애청자들을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끌어 준다. 정교하고도 신비로운 음악의 극치는 듣는 이를 황홀경에 이르게 하지 않는가!

한국가곡은 음악적으로 서구적 작풍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선율 속에도 고유의 리듬과 음의 가락이 면면히 살아있다. 한국인 작곡가들이 모국의 전통적인 잠재 음원에 젖어 부지부식 간에 채굴하고, 융화시킨 게 아닐까? 그런 다음 작곡된 가곡을 통해 그 음악을 한국인의 잠재 음원에 다시 심어놓지는 않았을까? 작곡자와 연주자는 한국의 정서를 정밀하게 뽑아내고 재생해 노래부르고, 애청자는 그 노래를 통해 한국의 정서에 깊이 공감하고 황홀해 하는 것이리라.

홍난파의 금강에 살으리랏다와 봄처녀, 성불사의 밤 등은 자라는 청소년들의 잊을 수 없는 멜로디였으며, 현재명의 산들바람, 희망의 나라로도 기회 있으면 흥얼거리거나 신나게 부르던 리듬이었다. 채동선의 그리워와 추억, 이흥렬의 봄이 오면과 고향 그리워, 코스모스를 노래함, 조두남의 청산별곡, 김성태의 동심초와 산유화, 김순애의 그대 있음에와 모란이 피기까지는, 네잎 클로버 등등도 한국의 심성과 자연에서 추출된 미학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걸작들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가곡은 소중한 자산이고 위로이며, 즐거움의 샘이다. 음악이 있는 곳에 흥이 일고, 음악을 옆에 두고 살면 행복해진다. 더구나 대중가요와 달리 가곡은 한층 더 품위가 있고 깊이를 느끼게 하는 화음이다. 한국가곡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정신과 시류를 외면하는 예술은 뒤처지기 마련이다. 음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는 일은 당연하다. 가곡도 급변하고 있는 산업사회와 대중사회의 발전 속도에 적절하게 순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요즘 가곡의 작곡 성향은 더 현대적인 화성과 선율 수법을 추구하고 있음은 다행이다. 그러나 일부의 트렌드처럼 서양 음악의 맹목적 수용과 모방은 한국적인 문화의 궤도를 벗어난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과 호흡을 함께하되 문화적인 자긍심과 유구한 정서를 바탕으로 살려 가슴 뭉클한 가곡들이 속속 창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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