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서커스단의 봄날은 간다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서커스단의 봄날은 간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20.01.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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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심리학
에드가 드가, '페르낭드 서커스단의 단원 라라양'(1876) 작품
에드가 드가, '페르낭드 서커스단의 단원 라라양'(1876) 작품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는 사진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물의 동작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의 많은 그림들이 발레리나, 오케스트라 단원, 경마장 기수, 서커스 단원 등의 다이내믹한 동작을 소재로 한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 중에 <페르낭드 서커스단의 단원 라라양>(1879)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의 특기인 스냅사진을 연상시키는 역동성이 돋보인다. 턱관절의 악력만으로 외줄을 물고 버티는 라라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성 서커스단원 라라양이 보여주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촉즉발의 위험한 곡예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어린 시절, 서커스는 어린이들의 로망 그 자체였다. 1965년생인 나는 서커스단과 유랑극단이 전국을 돌며 순회 공연하던 시절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서커스단이 읍내 장터에 들어온다는 소식은 아이들이 더 먼저 알았다. 동네 빈 터에 서커스단의 대형 천막이 올라가는 게 신호탄이었다. 곧 이어 서커스단 특별 홍보팀이 읍내 주요 지역을 돌며 바람을 잡았다.

홍보팀의 활약은 대단했다. 서울 이모집에 놀러가서 창경원(지금 창경궁)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코끼리, 사자, 낙타, 기린 등의 동물들이 화려한 치장을 하고 피에로의 선도로 팡파르를 울리며 손바닥만한 다운타운을 오전 오후로 나누어 며칠 간 몇 번을 누볐다.

접시를 돌리거나 줄을 타는 곡예사도 큰 트럭과 달구지 위에서 손을 흔들며 퍼레이드의 흥을 돋웠다. 곡예단 털보 아저씨의 횃불을 넣었다 뺀 입에서는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첫 눈 오는 날 동구 밖까지 정신없이 휘젓고 다니는 강아지 마냥 즐거워했다. 공연도 공연이거니와 서커스단의 퍼레이드는 애들에게는 생애 최대의 축제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 그들은 기억도 어렴풋한 아스라한 옛 추억의 조각들을 얼기설기 끼워 맞추고 그것을 새롭게 재해석 해낸다. 심리학과 뇌과학의 많은 연구결과들은 사람들의 기억은 참으로 ‘제멋대로’라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들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제멋대로 축소, 생략, 과장, 미화 한다. 때로는 없던 사실까지 천연덕스럽게 만들어 내고는 사실인양 착각한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오기억’(false memory)이라 부르는 이런 무의식적 과정을 거쳐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스토리에 대한 뛰어난 작가이자 편집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기억을 통해 자신의 아픈 상처는 살짝 무의식 깊은 곳에 밀쳐버린다.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만 의식으로 들추어낸다. 추억을 자신의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잘 활용하는 셈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서커스는 지방순회공연이 있던 그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는 뇌리에 깊이 박힌 추억의 한 장면일 것이다. 아무리 ‘태양의 서커스’같은 외국의 초대형 서커스단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동춘서커스단은 우리의 그런 추억을 일깨워 주는 우리 시대 마지막 서커스단이다.

몇 해 전에 연휴를 맞아 나는 아내와 함께 안산시의 동춘서커스단 대부도 공연장을 찾았다. 오래 벼르고 있었는데 기회를 못 찾다가, 우연히 들른 대부도에서 동춘서커스단 천막이 눈에 띄어 공연을 보게 되었다. 공연 시작 전 반시간 넘게 나는 근 40년만에 다시 서커스를 보게 된다는 흥취에 젖어 만감이 교차했다.

대부도 한 길가 공터에 올라간 공연장 천막은 그다지 높지는 않아서 그네타기 공연이나 오토바이 공연 등 규모가 좀 큰 공연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의자는 플라스틱 보조의자를 위주로 극장용 의자를 군데군데 갖다 놓았다.

서커스단 특유의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시작된 첫 공연은 B보이 차림의 청년들이 보여주는 외나무 타기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종 저글링 묘기도 등장했다. 접시돌리기, 방망이 돌리기, 모자 돌리기, 공연용 실패 돌리기, 외발자전거 타기, 심지어 상대 파트너의 몸 돌리기까지 프로그램이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 8자형으로 된 큰 회전기구를 타고 돌기도 있었다. 비단으로 만든 줄을 타고 원심력을 이용해서 공중을 빙글빙글 돌면서 나르거나, 공중에서 춤을 추거나, 아슬아슬한 묘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국 전통의 변검공연과 항아리 돌리기 공연 등이 이어지면서,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공연하는 친구들이 중국인들이잖아?"

내 입에서는 나지막하게 ‘오 마이 갓!’ 한숨이 새어 나왔다. 
40년 전의 추억을 파는 향수산업? 좋다.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일본 강점기 때부터 생겨난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면서도 100% 중국인 공연자들을 불러놓고 "이것이 80여년 전통의 동춘서커스단의 공연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다. 공연은 본래 동춘서커스단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추억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오기억이든 뭐든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것은 북경에서 본 '북경잡기단'의 잡기(雜技)를 연상시켰다. 잡기가 바로 중국어의 서커스다. 혹은 상해나 소주 항주에서 본 대규모 서커스 공연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들고 온 게 많았다. 내 눈은 공연을 보고 있었지만, 머리는 복잡했다.

머릿속에는 70년대 말에 유행했던 가수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이라는 노래가 각종 상념과 함께 오버랩되고 있었다. 
"줄을 타면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울어 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하지만 '줄을 타면 행복'하고, '공굴리며 좋아'하던 한국인 곡예사들은 없었다. '서글픈 사랑'에 울던 어릿광대도 없었다. 중국 한족(漢族) 단원들만 무대 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공을 굴리고, 줄을 타고 있었다. 일체의 진화나 발전은 없었다. 저렇게 힘들게 외줄타기를 하는 중국인 공연자의 모습이 바로 한국 동춘서커스단의 오늘의 모습이었다.

동춘 관계자에 따르면 1972년 TV에서 드라마 '여로'를 방영하면서 한국 서커스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당시 여로를 방영하는 저녁시간이면 전 국민이 티브이 앞에 모여 들어서 길거리에 인적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는 것을 나도 기억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객들의 호응이었다. 공휴일 연휴라서 그런지 몰라도 대충 한 200석 정도로 보이는 객석이 거의 다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공연은 북경이나 상해의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파는 ‘추억팔이’ 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국 서커스를 사랑하는 한 애호자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이 결단의 시기인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과감하게 그만 둘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거듭날 것인가? 지금 동춘서커스단의 봄날은 그렇게 서서히 가고 있었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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