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친구란 무엇인가
[송장길 칼럼] 친구란 무엇인가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20.01.06 18: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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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갈매기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내가 친구의 중환에 몹시 상심해 있다. 폐의 일부를 절제하고 항암제를 투약했는데도 병세가 악화돼 요양병원에 들어간 뒤로는 더욱 심란해 하고있다. 친구들과 함께 병문안을 가기도 하고, 친구가 좋아하는 카스테라와 총각김치 등을 싸들고 불쑥 달려가 온종일을 보내고 온다. 강추위에도 차로 두 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먼 시골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녀오는데, 다녀와서는 소침해져서 입을 굳게 다물고 안쓰러움을 내면으로 감추려 한다.

아내의 친구는 기독교 목회자인 남편을 따라 해외와 남쪽 바닷가 오지에서 평생 봉사활동을 펴온 외로운 사슴이다. 어떤 면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인품을 갖추고도 내로라하는 생활을 한 번도 누려보지 않은 분이어서 더욱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SNS을 통해서 나누었다는 친구들 간의 대화는 따듯하고 간절해서 듣는 이를 숙연케 한다. 이따끔 병세의 악화와 신체의 퇴화, 고통스러워함을 전화로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를 곁에서 들으면 그 안타까움이 나에게도 전염돼 온다.

친구는 무엇인가?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친구이고, 그 공유의 깊이가 우정의 무게일 것이다. 우연히 서너 번 만났던 사람, 가끔 조우하는 이웃, 어떤 일로 엮인 이들을 친구라고 호칭하는 경우를 자주 보고, 친구라는 인연을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하기에는 속이 보이는 일이다. 최소한 친구의 기쁜 일에 환호하고, 친구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는 그런 심지가 우정이고 벗이다.

가장 흔하게 친구라고 일컫는 관계의 텃밭이 학연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동창생들이 모두 친구는 아니다. 물론 어린 시절 배움의 마당에서 만나 우정을 쌓는 일이 순수하기도 하고, 기회도 많다. 동창은 운명처럼 벗어날 수도 없어서 자연히 오랜 친구의 테두리에 묶이지만, 만났다고 무조건 친구가 아니듯이 동창생도 동창생 나름이다. 그래서 동창 중에서도 가까운 사이끼리 그룹을 만들어 더 돈독한 관계를 맺는 모습도 보인다.

영국 속담 ‘친구와 포도주는 오랠수록 좋다’는 말이 멀리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오래 사귈수록 정이 깊이 든다는 뜻이리라. 미국 시인 에머슨도 ‘오랜 친구는 바보 짓을 해도 괜찮다는 사이’라고 표현했다. 오랜 우정은 친구의 약점까지 감싸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익스피어도 ‘친구라면 친구의 약점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썼다. 오래됐다고 우정이 반드시 숙성된다는 것은 아니고, 짧은 시일로도 의기가 투합하면 가까워질 수 있지만, 대개 세월의 흐름을 겪으며 고운정미운정이 들어 정의 밀도가 진해짐을 말할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고사 <관포지교>처럼 결정적일 때도 친구의 결점과 실수를 덮어주고, 어려움에서 구해주면 우정은 더할나위 없이 깊어질 것이다. 생사가 갈리는 정쟁에서 관중이 중죄인이 되었을 때 포수아가 구해주어 나중에 정승에까지 올랐고, 관중도 어릴 적부터 포수아를 나락에 떨어질 뻔한 곤궁에서 여러 번 건져주었다. 이들은 ‘어버이는 자기를 낳아주었지만 자신을 알아준 사람은 친구이다’라는 말을 후대에 남겼다. 조선조에서도 오성과 한음, 이순신과 유성룡 사이의 우정은 인구에 회자될 만큼 귀감이 돼왔다. 조선조 중기에 시대를 섭렵한 인물들인 송시열과 허묵이 벗이었지만 정치적으로 갈라져 으르렁거릴 때 송시열이 허묵의 약처방을 의심없이 복용했다는 일화는 색다른 우정의 일화로 전해진다.

나이가 지긋해지면서 가까웠던 친구들이 하나씩 유명을 달리한다. 최근에도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같이 다닌 오랜 벗들을 몇몇 잃었다. 우리나라 광고계를 개척했던 한량, 법조계에 족적을 남긴 호남형, 상공계의 고위직을 지낸 고고한 관리형, 그들은 그런 인상을 남기고 홀홀히 사라졌다. 모두 중병에 걸려 힘겹게 투병하다가 영면했다. 영결한 뒤에는 어김없이 생전에 왜 더 가깝게 옆에 있어주지 못했느냐는 회오가 뭉근하게 저며온다. 오랜 동안 교우한 우정을 얼떨결에 놓아버리고 말았다는 속쓰림이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알아본다고 한다. 시성 이태백은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비로서 친구가 친구임을 안다”고 읊었고,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행은 진정한 친구인지를 가려준다”고 일러주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기의 입장이나 이해를 무릅쓰고 친구를 지켜야 고귀한 우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공감을 주는 명언들이다.

시대가 생활 패턴을 바꾸어놓자 친구를 찾는 양상도 많이 바뀌었다. 이런저런 일로 여유가 없어진 현대인의 생활은 벗을 챙기는 여유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따끔 모임에 함께 참석해서 만나게 될 뿐, 이해가 얽힌 직장이나 일과 관련한 접촉이 더 잦아지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가 그들과 정이들면 그도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

우정은 역시 마음 속 깊은 데에 쌓인 오래된 더깨가 제맛을 우려내며, 그 맛이 진국이다. 그래서 나이가 든 이들은 옛 친구들과 떼몰려 다니며 마음 속 옹심이들을 풀어내놓는다.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든 우정에는 삿된 의도가 끼어들어서는 안되며, 머리를 굴리는 계산이야 말로 우정에의 독이라는 이치는 누구나 느낄 것이다.

오늘도 아내는 멀리 진천에서 요양하는 친구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침묵의 그림자가 하릴없이 거실과 부엌을 오락가락한다. 아무튼 아내가 투병하는 친구에게 기울이는 배려는 항용 온기를 띄고 있다. 이 찬 겨울에도 집안에 알게 모르게 훈훈한 기운도 스미게 한다. 작은 일이지만 진실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친구들과 더 가까이 어울리리라, 허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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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타 2020-01-06 19:16:30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