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눈물 젖은 빵 먹어 보셨나요?”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눈물 젖은 빵 먹어 보셨나요?”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19.12.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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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구두회 엘지그룹 창업고문과 부인의 낭만적인 사랑의 심리학
故 구두회 LG그룹 창업고문
故 구두회 LG그룹 창업고문/노승환 작가 제공

‘의․식․주’ 3가지 중에서 재벌과 일반 서민 사이에 가장 평등한 게 무엇일까? 그건 바로 ‘식’(먹거리)이다. 고대광실 호화 주택에 살고, 세계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옷을 입고 사는 재벌이라고 해도 하루 5끼를 먹고 살 수는 없다. 아무리 비싼 요리도 어쩌다가 먹어야 맛있지 매일 먹을 수는 없다.

오늘 진주비빔밥과 눈물 젖은 빵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LG그룹의 창업고문이었던 고 구두회(1928~2011) 회장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경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모 중국식당에서였다. 그는 공식 회의를 마치고 오찬장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대뜸 한마디 했다.

“미스터 킴! 당신, 술 잘 마셔?”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나를 직급으로 호칭했지만, 조금 편안한 자리에서는 ‘미스터 킴’으로 불렀다.

“그다지 잘 하는 편은 아닙니다.”

나의 대답이 예의상 하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바로 받았다.

“저널리스트들은 다들 술을 잘 하더구만! 허허.”

어쨌거나 어른이 따라 주시는 고량주 두어 잔을 고개를 돌려 단숨에 들이키자, “그것 봐! 내 말이 맞잖아.” 하면서 몇 잔을 더 따라 주었다.

구두회 회장의 고향은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다. 진양군은 후일 경남 진주시로 편입된다.

“미스터 킴! 고향은 어디요?”

“네, 경남 하동입니다.”

진주시나 하동읍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진주를 중심으로 서부경남 사람들이 모이는 ‘범 진주권’의 동향사람이라 생각했는지, 나는 그에게 그냥 진주 사람이 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진주비빔밥을 사주셨다. 

진주비빔밥을 먹던 단골식당은 구회장의 사무실이 위치한 코엑스인터내셔날 건물 안에 있는 한 레스토랑이었다. 그곳은 한, 중, 일, 인도, 터키 음식을 뷔페나 코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내놓는 곳이었다. 나는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싶었지만, 구회장이 진주비빔밥에 은대구 구이를 먼저 시키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1933년생인 우리 아버지보다 연상이신 대선배님께서 까마득한 고향 후배를 위해 고향음식을 베푸시는 배려를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고담준론에서부터 사소한 일상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나절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시고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까닭에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이런 저런 후일담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부인과의 로맨스였다.

1949년에 대학에 입학한 구회장은 2학년 때인 1950년에 6.25전쟁이 나면서 대구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그 곳에 꾸려진 임시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피난시절 구두회 학생은 어떤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는데, 그 하숙집 주인의 여고생 따님이 바로 후일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유한선 여사였다고 한다.

한데 그보다 20여년 위의 큰형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의 연애를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진주 만석꾼 집안의 막내아들인 동생을 ‘전쟁 중에 만난 가문의 내력도 잘 모르는 사람과 백년가약을 맺게 할 수는 없다’는 게 맏형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미 첫 눈에 반한 구두회 학생의 사랑의 감정을 꺾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 뇌는 0.1초만에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더구나 사랑이란 게 어디 합리성에 기반을 둔 논리던가. 

대학생 구두회와 여고생 유한선 사이에 전란의 포화 속에 피어난 애틋한 사랑, ‘금지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옆에서 반대가 심할수록 그 사랑이 더 깊어진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Romeo & Juliet Effect)도 있지 않은가. 맏형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맏형은 급기야 막내 동생에게 그 사귐이 계속된다면 집안의 경제적 후원을 끊겠다고 최후의 경고를 했다.

전란 전후의 피폐한 경제사정을 감안한다면 만석꾼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막내아들, 그것도 아직 대학생의 몸으로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구두회 학생은 형님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맏형은 막내 동생이 졸업하자마자 바로 미국의 뉴욕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보내버렸다.

이렇게 구두회 학생은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연인과 눈물의 이별을 고하고 이역만리 머나 먼 뉴욕 땅에서 유학생활 아닌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경제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유학생활이었겠지만, 일각이 여삼추라, 한나절만 못 봐도 미칠 것 같은 사랑을 멀리 두고 떠나온 구두회 학생의 마음은 독방에 홀로 수감된 죄수신세나 진배없었다.

드디어 뉴욕대 MBA 과정의 대학원생 구두회는 중대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형님 몰래 뉴욕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물론 맏형의 특별지시로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LG상사(당시는 아마 락희산업이었을 것이다) 뉴욕 주재원들의 눈을 피해야 했지만, 사랑에 눈이 먼(?) 그에게 그런 것쯤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드디어 젊은 연인들의 꿈같은 재회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쁨의 순간은 짧았고, 시련의 시간은 길었다. 한국인들의 행동반경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50년대 후반 뉴욕에서 동양인 유학생 구두회가 락희산업 뉴욕 주재원들을 위시한 한국인들의 눈과 소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지된 사랑으로 시작했던 사랑의 도피 행각은 결국에는 종말을 고했다. 락희산업 뉴욕지사는 물론이고 구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불같이 화가 난 장형은 일순의 주저함도 없이 막내 동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가차없이 끊었다.

만일 사후에라도 지원 사실이 발각이 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엄명이 락희산업 주재원들에게도 떨어졌다. 유복한 유학생 구두회 커플은 일순간에 무일푼의 고학생 커플 신세로 전락했다. 학업은커녕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계상황에 부닥친 구두회 커플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모님이 호텔의 메이드로 나서는 것이었다. 만석꾼집 도련님으로 고생 한 번 안하고 귀하게 자란 구두회 학생.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에 물도 안 묻히고 큰 귀한 딸이었던 유한선. 그녀는 이제 호텔에서 이불 홑청을 갈고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일용직 종업원 신세가 되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호텔 종업원 생활을 하는 사모님이 출근하면 공부를 한답시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구두회 학생의 발길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없는 사람에게는 살인적인 물가고에 허덕이게 만드는 뉴욕이 아닌가. 게다가 뉴욕대학의 등록금은 미국 내에서 제일 비싸기로 유명했다. 호텔 메이드 벌이로는 대학 등록금과 집세는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고, 일용한 양식도 근근이 해결해야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계속되는 궁핍한 일상에 찌들대로 찌들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어느 날 저녁 과도한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사모님이 퇴근길에 사온 빵을 두 사람은 나눠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두 연인의 눈길이 마주쳤다. 먹고 있던 빵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연이어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날 밤 구두회-유한선 커플은 서로 부둥켜안고 밤새 펑펑 울었다고 했다.

‘눈물 젖은 빵’에 대해서 말한 사람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다.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나온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 본적인 없는 자 / 근심에 싸인 수많은 밤을 /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 울며 지새본 적이 없는 자 / 천국의 힘을 알지 못하나니…’

괴테 소설 속의 이 구절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한다.”라는 말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어느 날 와인이 한 순배 돌았을 쯤에 그가 뜬금없이 내게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이봐! 미스터 킴! 당신, 눈물 젖은 빵 먹어본 적 있어?”

“회장님! 그래도 결국은 첫사랑 연인과 결혼에 골인하셨네요. 결혼하시고는 맏형께서 순순히 구씨 가문의 막내며느리로 인정해 주셨어요?”

“뭔 소리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형님의 차별도 한동안 계속되었지. 허허”

그래도 사모님께서 지극정성으로 살림을 살고,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화합을 도모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맏형의 마음이 누그러졌고, 인정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경의 일이다. 그 즈음 나는 직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는데, 나와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구회장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 워낙에 건강하셨던 분이라 더욱 믿기지 않는 비보였다.

오늘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구회장 생전에 사모님과의 러브 스토리, 특히 ‘눈물 젖은 빵 스토리’는 꼭 외부 잡지에 한번 인터뷰를 해서 기록으로 남겨 보자고 내가 여러 차례 건의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의 확답을 듣지도 못한 상황에서 유명을 달리하여 더욱 안타까웠다.

재계의 거목으로서, 또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모범적인 일생을 살다 가셨던 구두회 회장님을 다시 한 번 기린다. 그리운 구두회 회장. 늘 진주비빔밥처럼 소박하고 담백했던 어른. 그가 살아계셨더라면 “이번에는 진주비빔밥 말고 진주냉면 좀 사주세요!” 하고 조를텐데… 큰 체구에 걸맞지 않게 한없이 자상했던 그가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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