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인격이 초라해지는 세상
[송장길 칼럼] 인격이 초라해지는 세상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12.23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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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거리 인파 / 연합뉴스
서울 명동거리 인파 /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의 권유에 따라 내장검사를 받으러 동네 내과에 들렀다. 북적이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어 접수처에 나가니 개인정보기록지와 채변용기를 내밀며 준비해서 내일 다시 오라한다. 2분의 절차를 위해 20분을 대기한 셈이다. 다음 날 준비물을 내놓자 분주한 접수인이 용지만 잡아채고, 채변용기는 저쪽에 놓고 가라고 턱으로 방향을 가르킨다. 용기 넣는 곳이 잘 안 보여 두리번거리자 옆에 있던 다른 분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결과는 3주 후 집으로 통보된다고 한다. 나의 몸뚱아리는 속절없이 병원을 나와 허위허위 귀가하였다.

며칠 전 친구들과 송년회 오찬을 나눴는데, 밖으로 나오자니 내 구두는 없고 딴 구두만 한 켤레 덜렁 남아 있었다. 종업원에게 묻자 아래층 책임자에게 연락을 하는 듯 싶었다. 기다리면 되겠지 하면서 5분이 지나도 별 반응이 없었다. 다음 일에 늦을세라 아래층에 내려가 살펴보니 모두 바빠서 내 신발 건은 옆으로 밀쳐져 있었다. 책임자에게 다그치자 그제서야 우리의 옆방에서 식사하고 간 다른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등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화를 안 받는 사람, 모른다는 사람, 연락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응답을 지켜보다가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느끼고는 업주를 찾았다.

업주는 다른 체인점에 있어서 전화로 연결이 됐다. 그는 신발을 누가 바꿔 신고 간 것이지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라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다른 약속이 촉박하다면서 찾아낼 확신도 없이 마냥 더 기다릴 수가 없다고 추궁했다. 맞지 않는 남의 신이나 슬리퍼를 신고 다음 장소에 갈 수는 없는 만큼, 서둘러 내 구두 정도로 신발을 구입해 주는 게 해결 방법 아니냐고 닦달했다. 잘 맞는 새 신발을 잃고도 떨떠름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지난해 겨울 우연히 지나던 유니클로에 들러 터틀넥 셔츠 두벌을 샀는데,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목부분이 매끈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매장을 다시 찾아 이유를 대며 반품하려 하자 본사를 통해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와 심사결과를 기다렸는데, 3주일이나 지난 뒤에 반품 불가라는 통보가 왔다. 소비자보호센터의 심사가 어디를, 어떻게 검토했는지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상업주의와 소비자 만족도의 충돌에서 고객의 이유있는 불만은 여지없이 묵살되었다. 이런 경우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반드시 반품 처리된다.

대형 마트에서 실제 상품가격과 선반 위의 가격표시가 다를 때 고객을 존중한다면 당연히 진열장에 표시된 가격으로 계산하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 3천원 짜리 삼품이 2천원으로 가격표시가 돼 있는 선반에 진열돼 있다면 계산대에서 확인을 하고나서 2천원으로 값을 부과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관계자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계산은 코드 바에 입력된 값을 고집한다. 대개는 고객이 양보해 버리고 말며, 고객 중에 간혹 불만을 나타내면 겨우 미안하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고객이 속임을 당한 기분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손님은 수익을 올려주는 숫자이거나 돈 쓰는 개체로만 취급될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소소한 일들 같지만 그 속에는 무서운 독초가 자라고 있다. 사람을 인격으로 보지않고 상업적이거나 다른 목적의 재료로 삼는 경향이다. 도시화와 기계화가 늘어나고, 대중사회가 날로 기세를 넓히면서 인간의 본성과 품격은 점점 더 무시되고, 움츠러들고 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저잣거리에서는 민감한 상업주의와 그에 오염된 악취에 역겹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참고 살자는 말을 무수히 되뇌게 된다. 조직 속에서는 위계질서와 연륜, 권위가 자유로운 영혼들을 알게 모르게 옥죄려 한다. 고도화로 치닫는 산업사회에서는 얼마나 더 건조하고 기계적인 세상으로 변할 지 모르겠다.

한국사회가 빠르게 서구화를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주의와 인본주의라는 서구식 문화의 정수를 흡수하는데 지체현상을 빚는 데는 전통문화의 잔재, 내지 불협화음에도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이 흔들어버린 가치체계의 혼돈에도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유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얽히고설키며 형성된, 부분적으로 일그러진 전통문화와 한국전쟁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직면했던 가치관의 파열은 한국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독특한 문화적인 혼돈의 양상을 띄게 하는 멍석이 됐을 것이다. 그 가장 두드러진 표본이 정치의 기현상이다. 한국의 정치 유형은 유례가 없을 만큼 날카롭고, 혼란스러우며, 경쟁자를 타도 대상으로 공격하는 비정한 양상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정치의 중증은 사회의 여러 하위체계로 흘러 부정적인 영향을 그대로 미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선진화는 물론 하루 아침에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할 덕목을 알아보는 안목과 본받을 점을 솜의 물기 빨아들이듯 흡수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한 자세는 사회발전의 기상과 관련돼 있다. 겸허한 자세로 터득하고 체화하려는 태도야 말로 사회변화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중시하자는 이념이다.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가치체계이다. 앞으로도 인류가 부등켜안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소중한 개념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흔해빠진 숫자로서의 사람, 이용가치로서의 사람은 진정한 인본주의도 아니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도 아니다. 인격과 인성을 중시하는 것이 민주주의 핵심이며, 어떤 경우에서라도 인격이 존중돼야 세상은 윤택해지고,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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