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갑’질하는 뇌가 따로 있다고?"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갑’질하는 뇌가 따로 있다고?"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19.12.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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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모 사건과 미투의 심리학
가수 김건모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서평 고은석 변호사(오른쪽)와 김 씨의 소속사 건음기획 손종민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수 김건모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서평 고은석 변호사(오른쪽)와 김 씨의 소속사 건음기획 손종민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인 최영미는 1994년에 낸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2017년 그녀가 발표한 시 중에 ‘괴물’이라는 시가 있다. 이렇게 시작한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그녀가 시 후반부에서 성추행을 일삼은 추한 ‘괴물’이라고 지목한 이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던 시인 고 모 씨였다. 그는 문단권력을 뒤에서 틀어쥐고 대문호 행세를 해왔다. 그러나 그의 기행, 추행이력이 표면화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고 씨를 고발한 최영미 시인을 바라보는 세간의 눈초리가 고운 것만은 아니다. 어떤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만일 자신이 제3자이고, 그 사건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면 사건 자체에 대해서 언급을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일방을 역성들면서 다른 한쪽을 별다른 합리적 근거 없이 매도하거나 비난한다. 아니면 “쟤들 왜 싸우고 그래?”하면서 양시양비론으로 사건 자체를 대충 뭉개버리려 한다. 사건의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고 분통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상대가 고 씨처럼 문단권력의 한 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라면 사람들의 비겁함은 더 심해지고 판단은 더 편파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저 사람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저러는 거 아냐?’하면서 심지어 ‘꽃뱀’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최영미 시인은 베스트셀러 시인으로서 나름대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통로와 힘을 가진 편이어서, 이 정도라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막강한 한국 문단권력의 최고 상층부에 해당하는 고 씨를 향해 저항하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최근 가수 김건모가 폭행 및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일이 우리 사회 핫이슈가 되고 있다. 제2, 제3의 피해자나 증인이 나타나는 등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재판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막 수사가 시작된 시점에, 이른바 김건모 사건을 직접 거론하는 것은 마치 김건모의 유죄를 전제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문제라는 소리다. 당연하게도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

김건모 사태의 전말 파악이나 사건 보도는 수사당국이나 사회부 기자에게 맡기고, 오늘은 김건모 사태를 계기로 ‘미투의 심리학’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알다시피 미투운동(Me Too Movement)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나 아동들이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을 사회적으로 호소하는 것과 그런 호소를 돕는 행동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사실 미투운동은 ‘성(性)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얼핏 성의 문제로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권력을 가진 갑(甲)이 그렇지 못한 을(乙)을 대상으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본질이다. ‘권력형 성범죄’라는 말이 그마나 미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가해자가 여성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만, 인류 사회가 대체로 남성이 기득권을 가진 권력집단인데다가, 신체적인 측면에서도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체격, 체력이 떨어지는 여성이 아무래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적인 문제로 착각하기 쉽다는 소리다. 사람뿐만 아니라 영장류의 경우에도 ‘성적 강제(Sexual coercion)’는 수컷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런 고 씨 같은 괴물은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만일 어떤 사람이 사회적인 성공을 통하여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치자. 그 성취는 정치적 권력일 수도 있고, 사회적 명성일 수도 있고, 경제적 재원일 수도 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들의 성공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추진력을 배가시킨다.

‘승자의 곡선’이론을 주창한 신경심리학자 한스-게오르크 호이겔에 따르면 이렇게 지속적인 성공경험을 한 사람들은 테스토스테론과 세로토닌의 혈중농도가 일반인들에 비해 많이 높아진다. 남성호르몬으로 불리는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의 몸속에도 있지만 주로 남성에게 훨씬 수치가 높다. 테스토스테론은 지배욕, 공격욕, 성욕을 고양시키는 호르몬이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장류를 상대로 한 연구를 살펴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에 사회적 서열이 높고, 공격적이며, 성적 접촉이 늘어나는데 비해 ‘사회적 지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는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는 세로토닌이 과도해지면서 자기중심적 사고를 부채질한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 성공에 취해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만 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승자의 뇌’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걸 쉽게 ‘갑(甲)의 뇌’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갑의 위치에 오래 있다고 해서 갑질을 하지 않듯이 승자의 뇌, 즉 ‘갑의 뇌’가 전부 ‘갑질의 뇌’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최영미 시인이 말한 괴물을 나는 갑질의 뇌라 부른다. 갑질의 뇌는 승자의 뇌보다 훨씬 극단적이다. 괴물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사람을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물건’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일부 상류층 인사 중에서 막말과 폭언을 일삼고, 주위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데 ‘공감’ 운운할 여지도 없다. 기내에서 라면을 잘못 끓여왔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포스코 상무, 견과류를 접시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멀쩡하게 잘 가는 비행기를 되돌린 ‘땅콩 회항’ 사건이 다 이런 사례다. 후배 연예인이나 부하 여직원을 오로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 시키는 ‘노리개’ 정도로 인식하는 것도 사회적 지능이 현저히 떨어진 갑질의 뇌에 대한 좋은 사례다. 고용승계가 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화물차 운전기사를, “한 대 맞는데 1백만 원”이라며 야구 방망이로 무차별 구타한 한 재벌 2세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스탠턴 새미로는 그의 저서 <범죄심리의 내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장기판으로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을 자기 의지대로 밀어젖혀도 되는 장기판의 졸(卒) 로 본다. 믿음, 사랑, 성실, 팀워크 같은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도 인간적 본능과 본성을 잘 관리하고, 수양에 힘써 품격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은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모범적으로 살아간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 격으로 일부 갑질의 뇌를 소유한 이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

가수 김건모는 그가 불러 히트 시킨 노래 ‘핑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 니가 지금 나라면은 넌 웃을 수 있니”

나는 가수 김건모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근거없이 미투운동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반대로 김건모를 고소한 여성도 유흥업소에 출입한 여성이라고 해서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비난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조용히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잘못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법적인 처벌과 아울러 윤리적 반성을 해야겠지만, 이미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수사가 종결되고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거짓으로 핑계를 대고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은 핑계를 댄 그 사람에게 더욱 엄중하게 묻게 될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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