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법정스님의 시래기와 아내의 감말랭이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법정스님의 시래기와 아내의 감말랭이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19.12.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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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와 시래기 / 연합뉴스
감나무와 시래기 / 연합뉴스

고향에서 감이 두 박스가 왔다. 양가 부모님께서 각각 보내주셨다. 농사를 짓지도 않는 분들이 자식들 먹으라고 굳이 감을 사서 보내주신 것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틀림이 없다.

내 고향 경남 하동에는 특산물이 몇 개 있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것 같은데 옛날에는 하동 김이 유명했다. 김은 해태(海苔)라고도 하는데, 하동 해태는 임금님께 진상하는 김으로 유명했다. 또 하나가 하동 차(茶)다.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한 차의 시배지(始培地)라는 자부심이 있다. 대량으로 재배하는 다른 녹차들과는 달리 야생녹차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대봉감이 있다. “과실 중에 으뜸은 감(柑)이요, 감 중에 최고는 대봉감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제 때부터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박경리 여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하동군 악양면에서 ‘대봉감 축제’까지 열릴 정도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대봉감은 나 이외에는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생각해 낸 것이 감말랭이를 만드는 것이다. 감말랭이는 애들도 좋아한다. 대봉감이 홍시로 변하기 전에 감을 편(片)으로 썰어서 열풍 건조기에 넣어서 말렸다.

모 회사에서 나온 ‘열풍건조기’를 몇 년 전에 사서 레몬도 말리고, 호박도 말리고 했다. 올해의 건조 대상은 감말랭이로 정해졌다. 하룻저녁 건조기로 말리고 다음날 햇볕에 다시 말렸다. 내가 “햇볕에만 말려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건조기를 사용하는가?” 물었다.

아내는 “햇볕으로만 말리면 너무 오래 걸리고, 자칫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감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거의 감 두 박스가 다 들어갔는데, 실제 만들어진 감말랭이 양은 얼마 되지가 않는다. 누구 코에 붙이고 말고 할 것도 없을 정도였다. 아내가 놀란다. “감말랭이를 시장에서 살 때는 양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비싸다고 농민이나 상인 욕하지 말아야지!” 반성도 한다.

아내가 감말랭이를 만드는 걸 보니 근 30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1983년 겨울이지 싶다. 당시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고 성적 통지표가 오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법정(法頂, 1932~2010)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친구와 같이 스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당시 법정 스님은 순천 송광사의 말사인 불일암에 머물고 계셨다.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불일암으로 가기 위해 송광사 한 쪽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마침내 아주 작고 아담한 전통 한옥이 한 채 나타났다.

어떤 여성잡지사의 기자와 사진기자가 먼저 와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작정 찾아온 우리와 달리 그들은 이미 인터뷰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가 “스님은 산에 나무하러 가셨다.”고 말해 주었다. 마루에 앉아 무작정 스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식경이 지날 무렵 스님 일행이 산정 쪽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보자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사정을 말하자,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 좀 푹 쉬고 대학 들어가서도 보람 있게 지내라.”며 이런 저런 덕담을 해 주셨다.

지금 돌이켜 기산(起算)해 보면 당시 법정스님은 5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우리 학생들이 왔는데 내가 먹거리를 좀 내와야겠군!” 하시면서 나를 부엌으로 데려가신 일이다. 뭔가 전통 사찰 음식으로 보이는 한과 등의 먹거리를 내주셨다.

그때 내 눈에 확 들어오는 소품이 하나 있었다. <오xx 마요네즈>병이었다. 내 어린 마음에 청빈한 산사의 수도승이 속세의 백성들이 먹는 서양 식료품인 마요네즈를 드시는 게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는 스님들이 채소를 마요네즈와 함께 드셨던 것이리라.

또 하나 부엌 쪽으로 가는 암자의 흙벽에 걸려 있던 우거지와 시래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거지와 시래기는 불일암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스님과 헤어지고 송광사 경내를 구경하고 있는데 60대로 보이는 일본인 관광객 한 분이 사찰 건물 벽에 걸린 시래기와 우거지를 보면서, “니들은 저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더니, “우리도 시래기와 우거지를 먹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국과의 어떤 인연이 있어서 먹는다는 것인지, 통상적으로 모든 일본인들이 시래기와 우거지를 상식(常食)한다는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와 2대 8 가르마에 포마드 기름으로 단정히 빗어 넘긴 그의 헤어스타일이 기억날 뿐이다. 어쨌거나 한일 양국 사람들은 공히 채소 말린 것을 먹는다.

요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식품을 말려서 먹는 게 유행이다. 예전에는 감이나 호박, 무 정도였는데 이제는 각종 과일, 야채에서 육포까지 가정에서도 만들어 먹는 모양이다. 열풍 건조기도 제법 팔린다고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임금이 신하에게 양고기 말린 것에서부터 각종 건어물, 과일과 야채 말린 것을 하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물론 거꾸로 진상하는 장면도 많다. 식품 저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생겨난 건조법이 21세기에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면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은 모양이다.

우리 아들과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이런 건조식품을 먹겠지? 아내가 만든 감말랭이를 맛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노라니 뜬금없이 고교시절에 만났던 법정 스님 생각도 나고 일본인 관광객 생각도 나고 해서 심심파적으로 몇 줄 끄적거려 본다.

사족: 나는 일요일에만 교회에 나가는 정도인 선데이 크리스찬이지만, 독실한 신앙을 가진 기독교도인 내 아내도 법정 스님은 좋아한다. 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로 많이 돌렸다. 다른 교리들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법정의 무소유 정신은 기독정신과도 본질적으로는 부합하지 않나 싶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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