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사막은 울고 있었다
[송장길 칼럼] 사막은 울고 있었다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12.10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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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 여성경제신문 DB
황무지 사막 / 여성경제신문 DB

미국 남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가면 숨이 막힐 듯한 박토, 모하비 사막이 널브러져 있다. 자동차로 몇 시간씩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방대한 황무지다. 통칭 7만여 평방미터의 넓이이니 한반도의 1/3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이다. 대륙으로 굽이굽이 뻗은 시에라 네바다와 샌 개브리엘, 샌 버나디노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 거대한 사막은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네바다 세 주에 걸쳐 넓게 펼쳐져있다.

이 산간 분지는 대부분 모래와 자갈로 덮여있는데, 고대에는 내해였으나 화산과 콜로라도강의 퇴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불모의 저지대와 편편한 계곡이 되었다. 까마득히 보이는 높은 산들은 대부분 자갈산들이다. 사막의 가운데는 소금 평원도 자리잡고 있으며, 샌 버나디노 산맥에서 발원한 모하비강은 지하로 흘러 헤스페리아와 빅터빌을 거쳐 멀리 소다호로 흐른다.

윗쪽으로 뻗은 고속도로 15번으로 계속 달리면 라스베가스에 이르고, 중간에 127번 하이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꺾으면 데스 밸리로 들어가며, 아래의 10번 고속도로는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을 비켜 애리조나주로 치닫는다. 오아시스 같은 작은 도시들과 관광업소, 광산, 군사기지들이 이따금 눈에 띈다.

온종일 사정없이 내려쬐는 땡볕은 맨발이 데일 정도로 지각을 달구고, 조금만 물기라도 있으면 살아보려고 솟았던 잡초들이 곳곳에 말라 죽어있다. 여름에는 기온이 평균 섭씨 38도까지 올라 폭염을 내뿜고, 일교차가 심해서 밤에는 -1도 내지 -10도까지 추워져 서리도 내리며, 매우 건조하고 강풍이 불기도 한다. 겨울에만 비가 내리는데, 강우량은 평균 127mm 정도에 그친다.

15번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127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길가 아무데나 멈춰 차에서 내렸다. 11월인데도 햇살이 따갑고, 대기 온도가 후끈하다. 황량한 벌판에 파란색은 온데간데 없고 주검의 회색만이 광범하게 깔려있다. 작달막한 나무 가지들도 바싹 마른 채 앙상하기 그지없다. 멀찍이 자갈 위로는 지열이 피우는 아지랑이가 어른거린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죽음의 냄새가 더운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태고의 체취일까?

황야의 손짓에 이끌려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 황량한 사막에도 생명력이 수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깡마른 줄기도 죽은 듯 연명하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앙징스런 작은 꽃들도 가끔 보석인 양 피어있다. 선인장과의 식물이리라. 바위 틈엔 벌레들도 기어다니고, 다람쥐도 쭝굿거리다가 날세게 숨는다. 무얼 먹고 살고있을까? 밤 이슬일까? 저 멀리에는 우람한 조슈아 트리도 우뚝 서있다. 신비스러워 적이나 놀라운 세상이다.

그 중에서도 조슈아트리의 우람한 모습은 그 자체로도 어떤 강한 신호를 발산하고 있었다. 가시처럼 찔러대는 땡볕, 뿌리까지 뻗어오는 건조한 살기, 한 모금의 물기마저 공중 분해시켜버리는 광야에서 저토록 걸출한 자태로 서있다니! 그것은 치열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의 기상이요, 꺾이지 않는 생물의 승전고이다. 발신자의 의도는 고사하고, 이 수신자가 느끼는 함의는 폭탄급이다.

강렬한 전류가 온 몸으로 흘렀다. 식은 땀이 솟았다. 자연과, 지구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움추러들고 움출어들었다. 자신이 하나의 점이랄 정도로 작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자괴감이 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치열한 존재의 바다 속에서 나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얼 하면서 지금껏 살아왔단 말인가? 나에게서 모든 허울을 벗기고, 온갖 오염을 씼어내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한 점의 존재일 뿐이지 않은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다른 동식물보다 월등하므로 틀리지는 않는다. 두뇌를 고도로 발전시켰고, 엄청난 문화도 이룩했다. 그러나 여기 사막에 정박해 펼처져 있는 존재의 세계에서는 인간도 하나의 미미한 분자일 뿐이다. 탐욕과 허영, 사치, 계산, 싸움, 경쟁같은 인간사들이 범접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생물도 무생물도 모두가 삶과 죽음의 경계로 나뉘어져 있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산 자는 죽지 않으려고 고통스러워 한다. 나 자신도 여기 사막에서는 미상불 한낱 미생물이었다.

가까운 모래와 자갈, 식물들에 감히 손을 대보았다. 찌르르 감전이 되는 듯 하다가 이내 따듯한 체온이 전해진다. 어떤 동질감이 틀림없다. 아마도 같은 본질, 같은 운명이라는 공감일 것이다. 안도감이 슬그머니 배어난다.

그런 감정을 간직하고 다시 차를 몰아 데스밸리로 향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죽음의 계곡'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의 마을, 테코파에서 묵기로 했다. 겨우겨우 지탱하는 듯한 외딴 시골이다. 근근한 공동체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밤이 되자 달빛이 휘엉청 밝아 천지를 비춘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이 윙윙거리며 드세게 분다. 바람소리와 함께 동물의 울음이 섞여 들린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점점 더 가깝고 크게 들린다. 카요테가 떼지어 다니며 울어대고 있었다. 야릇한 소리이다. 슬퍼서도 아닐 테고, 기뻐서도 아닐 터이며, 그렇다고 신나는 놀이소리도 아니다.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내지르는 아우성이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부르짖는 포효이며 함성이다. 울음소리는 사막을 온통 뒤덮고 깨운다. 마치 사막 전체가 울음 속에 떠있는 듯하다. 달빛과 사막과 바람과 동·식물이 어우러져 처연하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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