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 박철중 기자
  • 승인 2019.12.10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향년 83세…"청년 해외진출 돕는 교육사업 체계화" 유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 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2014년 10월 30일 제주대학교에서 '자신감으로 세계와 경쟁하자'란 주제로 특강하는 모습. / 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9일 오후 11시 50분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지난해부터 건강 악화로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세운 한국 대표 기업인에서 외환위기 직후 그룹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내몰리는 등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했다.

이후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아울러 김 전 회장은 21조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으로 감형됐으며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이후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머물며 동남아에서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에 주력해왔다.

고인은 지난해 8월 말 베트남 하노이 소재 GYBM 양성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안 좋아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다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해 장기 입원에 들어갔다고 대우 관계자는 밝혔다.

대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GYBM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줄 것"을 유지로 남겼다고 밝혔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진행 예정이며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