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계란 프라이의 추억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계란 프라이의 추억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19.12.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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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계란 프라이를 하는 노파'
디에고 벨라스케스 '계란 프라이를 하는 노파'

스페인 출신의 화가 중에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라는 이가 있다. 그는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다. 그를 빼고 서양미술사를 논할 수는 없다. 특히 그가 그린 <시녀들>이라는 작품은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자 스페인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려고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프라도 미술관을 찾는다.

벨라스케스는 초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카라바조(1573-1610)의 영향을 받아 경건한 종교적인 내용을 주제로 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가난한 일반 민초들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작품도 많다. 그가 아직 화단에 이름을 널리 알리기 전인 1618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18살에 그린 그림 중에 <계란 프라이를 하는 노파>라는 작품이 있다.

영국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그림 속의 노파가 아들인지, 손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어린 친구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주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달걀이 보급되고, 또 계란 프라이라는 요리가 정착된 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벨라스케스가 이 그림을 그린 시절까지 올라갈 것까지는 않다. 1618년이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중기 임진왜란(1592-1598) 등 전란의 영향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이었을 것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초에 ‘보온도시락’이라는 게 처음 나왔다. 초기에는 스티로폼으로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들어갈 모양을 만들고, 반찬통과 물통이 들어갈 공간을 가진, 비닐로 커버를 씌운 다소 조악한 형태였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열면 온기는 남아있었다. 교실 한가운데 놓인 장작으로 혹은 조개탄으로 피운 난로 위에 노란 알루미늄 도시락을 차근차근 올려서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데워 먹던 시절에 비하며 놀라운 시대적 변화였다.

점심시간에 밥공기에 반숙한 달걀 프라이를 얹은 보온도시락을 열고, 흰쌀밥 사이로 스며든 터진 노른자를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물론 이 맛을 즐긴 이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반농반어(半農半漁)의 빈한한 시골에서 이런 정도의 여유를 누리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달걀이 상대적으로 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프라이를 비롯한 계란 관련 요리는 소위 586의 우리 세대에게는 하나의 로망이었다. 소풍을 가도, 여행을 떠나도 삶은 계란은 필수 품목이었다. 중고교 시절 우리끼리 외식의 주 메뉴중의 하나는 계란 오므라이스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시험을 치고 난 날 저녁이면 부모님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먹었던 짜장면과 탕수육이 최고의 외식이었다. 그 때도 부모님의 ‘사전허락’ 하에 소스가 따로 나오고 달걀 프라이를 얹어주는 간짜장을 주문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간짜장에 계란 프라이를 얹어 주는 요리방식은 내가 살던 경상도 등 일부지방에만 모양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자취를 하던 한 대학 후배(물론 고향 후배이기도 하고)가 간짜장을 먹기 위해 서울의 학교 앞 중국집을 찾았다가, 중국집 주인과 대판 싸웠다고 했다. 간짜장을 시켰는데 계란 프라이가 안 나왔다는 이유로.

가난한 자취생이 그냥 짜장도 아니고, 비싼 간짜장을 큰 맘 먹고 시켰는데 프라이가 없었으니 그의 좌절과 분노도 이해할만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간짜장+계란 프라이’라는 조합과 프라이의 부재에 대한 항의에 중국집 주인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역시 그 시절 이야기다. 다른 후배에게 점심을 사주러 학교근처 식당을 찾았다. 내가 주문한건 그 식당의 정식이었다. 정식의 다른 반찬은 매일 바뀌어도 계란 프라이는 항상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식이 아닌 다른 메뉴를 주문한 그 후배가 음식이 나오자마자, 내게 묻지도 않고 내 정식의 프라이를 한 입에 날름 집어 먹는 게 아닌가?

정식을 시켜도 되는데 자신은 다른 요리를 시키고, 선배 밥상에 나온 프라이를 슬쩍하는 후배가 엄청 얄미웠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한 대 갈겼다. 아차, 했지만 엎지르진 물이다. 후배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근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몇 년 전 나는 그 후배에게 그 날의 사건을 정식으로 사과했다. 지금은 유명한 글로벌 기업의 간부로 있는 후배는 “형은 언제 적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하며 웃어넘긴다. 지도 잊지는 않았다는 거다. 나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금기를 깨뜨린 못난 선배라는 혼자만의 심리적 부채의식을 20여년 만에 청산한 셈이다.

대개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대부분 정해진다고 한다. 음식에 대해 유독 고향의 맛, 엄마 손 맛을 따지는 것도 이런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소리다. 우리 세대에게 달걀은 아련한 추억과 함께 기억되는 추억의 음식이다. 그러나 내 아들과 딸은 흔해 빠진 달걀요리를 좋아하는 애비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가끔씩 계란 프라이의 반숙노른자와 섞인 쌀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은 나에게는 지금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라면은 그냥 아무것도 넣지 않고 쫄깃하게 끓여야한다고 주장하는 아들딸과 달리, 나는 계란을 반드시 ‘풀지 않고’ 넣어서 반숙 노른자를 즐긴다.

계란찜이나 삶은 달걀 혹은 계란 프라이가 우리 아들과 딸에게는 그냥 흔해 빠진 요리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음식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로망이었고, 추억이고, 역사였던 계란이 나는 지금도 좋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에 나오는 그 소년도 성년이 되었을 때 저 노파가 해주었던 계란 프라이가 그리웠을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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