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김지영'의 길을 딸과 손녀도 걷게 할 참인가?
[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김지영'의 길을 딸과 손녀도 걷게 할 참인가?
  •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 승인 2019.12.04 13: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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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영화사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영화사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예술적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배우들이 다시 재연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300만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는 제목 그대로 82년생 김지영이란 주인공이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가정과 직장에서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상의 애환을 그린다. 

감독은 급변하는 시대가 우리 정서에 세대별로 어떻게 다른 파장을 그리는지 알고 싶은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은 우선 자기 나이부터 밝혀야 한다. 나는 60년대 중반에 태어나 80년대 전두환정권 시절에 대학을 다닌 전형적인 586이다. 동갑내기 아내와 90년대에 태어난 아들과 딸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아내는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영화에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보고 그것에 감정이입을 했던 모양이다. 친구들과 영화를 봤다는 대학생 딸은 상영시간 내내 펑펑 울었다고 했다. 영화 속 사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 혹은 살아갈 미래에 그대로 재현될까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가끔씩 코끝이 찡해지고, 살짝 눈물이 맺히는걸 감출 수 없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군대에 있는 아들이 나중에 뭐라 평할지 궁금하다. 여동생과는 또 다른 평가가 나오지 싶다. 80평생을 유교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국적 어머니로서 굳건히 살아오신 우리 엄마는 영화의 내용을 이해는 하시겠지만, 내심으로는 ‘우리 시절 저 정도는 약과였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실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은 그 이전 세대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70년대,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 세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지방 소도시에 살던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는 60대가 된 누나는 ‘여학생을 혼자 서울로 유학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우리가 살던 지역에서 대학을 갔다. 내 아내는 80년대 후반 교사가 되었다. 출근을 하려고 택시를 잡으면, 택시기사가 ‘아침부터 재수없게 안경 쓴 여자가 마수걸이를 하려든다’고 조롱섞인 승차거부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출근 시간에 쫓겨 남성들만이 합승한 승용차를 추월했더니, 그들이 보복운전으로 학교까지 쫓아와 학교장에게까지 항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가관인 것은 그들이 다른 학교 교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인 건 그런 그들의 행태를 교장, 교감이 나무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들의 역성을 들었다는 데 있다. 

이렇게 말하면 페미니스트들이 ‘지금도 별다르지 않다’면서 펄쩍 뛸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든 지독한 ‘야만의 시대’였고, 심각할 정도로 ‘마초들의 전성시대’였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남녀평등이라는 이슈는 여전히 부글부글 끓는 활화산이다. 왜 그럴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가 사바나초원에 살던 원시시대 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남자는 ‘사냥’에 최적화 되었고, 여자는 ‘채집과 양육’에 최적화 된 상태로 수만년 이상을 살아왔다. 

그런 경험은 지금도 우리 인류의 몸과 마음에 DNA처럼 새겨져있다. 남자들은 그냥 열심히 사냥터(직장)에 가서 사냥감을 잡아 집으로 돌아오면 그뿐이었다. 남성들이 가져온 포획물과 여성들이 채집해온 과일 열매를 다듬고 분배하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일도 오롯이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런 현상은 불과 몇 십년 전까지는 지구상에 보편적인 현상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냥은 알다시피 육체노동이다. 평균적으로 여성들보다 더 큰 덩치와 강한 체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제격이다. 당연히 수렵시대에는 남자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다. 농경, 목축시대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정신노동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되었고, 여성들의 사회참여도 크게 늘었다. 사냥이 남성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여성도 사냥터에 나아가 남성과 같이 경쟁하며 사냥감을 포획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대로 남성들은 ‘어쩔 수 없이’ 채집과 양육에 참여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쩔 수 없다고? 물론이다. 사냥에 최적화 되어있는 남성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정신적 DNA 어디에도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은 채집과 양육을 강요받는 초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파더쇼크(Father Shock)’라고 한다. 

파더쇼크가 있는데 ‘마더쇼크(Mother Shock)’가 없을 리 없다. 채집과 양육에 최적화 되어있는 여성들은 난데없이 사냥을 강요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제는 원시시대 이래로 세상은 여전히 남성우위의 시대라는 점이다. 그런 불평등이 여전한 세상에서 팔자에 없는 사냥까지 강요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기존에 해오던 채집과 양육의 부담이 사라지거나 경감된 것도 아니라는 데 여성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채집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평가나 정책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득한 꿈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여성들이 강력한 모성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기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 엄마로 산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다. 우리시대 여성들은 마더쇼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비극적인 운명을 사는 시지프스와 같은 존재들이다.  

영화 속의 김지영처럼 여성들은 가정에서 자랄 때부터 남아 선호사상에 의해 차별을 받고, 직장에서는 진급에 차별을 받는다. 육아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공원에 나와 쉬고 있어도 언어폭격을 받는다. “나도 저 여자처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펑펑쓰며 편안히 애나 키웠으면 좋겠다.” 남자들과 함께 사냥터에 나가도 문제, 양육에만 집중해도 문제가 되는 곤혹스러운 세상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이렇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감내하기 힘든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멘탈이 붕괴되어 ‘빙의’현상까지 보이고 급기야 정신과 상담을 받게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런 문제는 김지영과 같은 80년대생은 물론이고, 취업을 목전에 둔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나와 같은 586세대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직장을 골라갔다. 당시 국제 경제가 그만큼 호황이었고 우리나라는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최고 명문 서울대를 나온 스펙 좋은 졸업생도 취업을 보장받기 힘든 장기불황기다. 남성 입장에서는 예전에는 남성들끼리 사냥에 집중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 그뿐이었지만, 이제는 사냥터를 두고 여성들과도 무한경쟁을 해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상황이다. 여성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유행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지금도 남녀의 차이를 논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만큼 남녀간의 차이는 크다. 요즘 뇌과학의 연구결과도 남녀는 외형적 생식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내부 염색체, 호르몬, 사유구조 등 심신 양면으로 메꾸기 힘든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다고하여 이런 차이가 남녀간의 갈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거나, 남녀차별을 합리화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특히 남성들은 아직도 남녀차별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마치 지신의 기득권을 침해한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사고를 해서는 곤란하다. 정치경제적 상황이 많이 불안정하고, 우리의 미래가 험난할 지라도 남녀는 선의의 ‘전략적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가야 한다. 우리 할머니, 우리 엄마, 그리고 우리가 걸어왔다고, 우리의 누이, 우리의 딸, 우리의 손녀에게 82년생 김지영이 걸어간 길을 또 다시 걷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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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2019-12-05 08:53:54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