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관계자 “강간죄 구성요건 바뀌어야”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은 가해가 중심적이다. 성범죄의 성립조건이 '비동의'가 아닌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으로 돼 있어 피해자가 직접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가해자의 미래만 걱정했던, 가해자의 감정에 이입했던 모든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25일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29일 오후 5시 현재 약 24만 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해당 청원은 가수 구하라씨의 사망 소식 이후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구씨가 전 연인 최종범과 '불법 촬영물’ 문제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9일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 혐의를 받은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최종범의 공소 사실 중 협박, 강요, 상해 등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없이 불법 촬영을 했지만, 피해자가 촬영을 제지하지 않아 몰래 촬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피고인이 해당 영상을 유포하거나 제보하지 않았고 이를 이용해 금품을 요구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갖게 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행 성폭력처벌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1항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의사에 반한다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강제성을 입증하는 게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온라인상에는 최씨와 1심을 판결했던 재판부의 실명을 거론해 양형기준 재정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관련 국민청원 글을 인용해 청원에 동의를 부탁했다. 또 소설가 공지영 씨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해 남성(최종범)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들이 직접 동영상을 관람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여성단체 관계자는 “현행 성범죄 판결 기준은 피해 여성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준다”며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꿔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하는 잘못된 과정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