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선유도의 추억과 달라진 풍광
[송장길 칼럼] 선유도의 추억과 달라진 풍광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11.26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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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선유도 / 연합뉴스
전북 군산시 선유도 / 연합뉴스

1975년 8월, 고군산 군도의 선유도는 고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인적은 드물고, 바다와 하늘, 섬들이 어우러져 전설에서 나올 법한 환상적인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미상불 신선들의 놀이터다웠다.

소나무들은 미풍에 살랑거리고, 갈매기들이 포물선을 그으며 바다 위를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밀가루처럼 곱고 뽀얀 모래밭은 발바닥을 포근히 감싸며 푹신거렸고, 파도는 오는 듯 가는 듯 낮게 몰려다녔다. 새벽의 삽상함과 낙조의 현란한 채색은 그야말로 미학의 원형질이었고,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저 건너 편의 청정한 세계였다.

교목 무리들은 해무를 벗어나와 짙푸르렀고, 눈부신 햇살이 바다 위에 쏟아져 파도를 타고 빤짝였다. 산과 바다 사이 바위에 달라붙은 이끼들은 철석이는 해수에 시달리며 파릇했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어둑어둑해지자 물 위를 떠돌던 새들이 어둠을 피해 산 속으로 숨었다. 사위의 시야 어디에도 인간들이 오염시킨 물체들은 보이지 않았다. 긴긴 세월의 그런 섭리에게는 인류의 손길이 하등 덧없을 터였다.

새댁 시절의 아내와 두 살짜리 딸, 그리고 30대 중반의 나는 일주일 여름 휴가를 얻어 이른바 바캉스 여행을 떠나온 참이었다. 근근했던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모두 가슴에 품은 듯 더 바랄 게 없었다. 무엇보다 아내는 자연 속에 흩뿌려지는 딸의 재롱을 쫓으며 환희에 겨워 자지러졌다. 어린 생명은 넓직한 모래밭에서 엎어지고 일어나고를 거듭하며 제멋대로 뛰어 다녔다. 신비로운 생명의 율동이자 몸짓이었다.

딸과 함께 희열에 빠져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의 가슴은 일렁였다. 순간순간이 환희의 윤슬이었다. 세파에 시달리던 일상, 번뇌와 압박의 굴레에서 말끔히 벗어난 해맑은 영혼을 주무르는 음원이며, 춤사위였다. 그 때의 순수했던 기쁨, 자유로웠던 영혼은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로 각인돼 평생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가슴의 한 구석에 머물고 있는 순수의 심해, 한 조각의 꿈으로 간직돼 온 것이다.

선유도가 바다 가운데 떠있는 신비로운 나라라는 인상으로 내 기억에 생생했던 이유는 인간들의 탐욕에 오염되지 않고, 자연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였다. 배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출렁거리며 도착한 곳에는 선녀 형체의 섬산이 티끌 만큼도 꾸미지 않고 묵묵히 누워 있었고, 인간들이 머무는 시설들은 산 밑 귀퉁이에 작게 숨겨져 있었다. 해수욕장에는 세 넷 가족들만이 띄엄띄엄 한가하게 노닐고 있었는데, 그정도의 인적은 끊임없는 바닷바람과 파도가 깨끗이 정화해 주고도 남는 듯했다.

사람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이미지는 현실세계로 삐져나와 어떤 형태로든 신선하게 구체화 되기도 하고, 의식 속에 잠재해 있으면서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에게는 선유도의 인상이 뇌리에 남아 있으면서 때때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사회생활에 권태를 느낄 때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나 깊은 산중의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깊이 그리워했다. 누구나 체험해 봄직한 현실 밖의 그림일 것이다. 해밍웨이의 키웨스트 해변이나 소로우의 월든 호숫가, 고갱의 하이티 바닷가 등을 읽을 때 자연히 선유도를 떠올린 버릇은 나만의 특별한 징후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2019년 11월, 우리 부부는 미국에서 날아온 친구 부부, 미국과 인연이 깊은 다른 젊은 부부와 뭉쳐서 서해안을 훑었다. 바다의 숨결과 육지의 의연함을 유유히 체험하려는 의도였다. 오래 전의 추억을 확인하고 싶어서 선유도를 넣어 여행 코스를 잡자는 나의 제의는 다른 이들의 동의를 쉽게 받았다. 여섯 명의 풍류객들을 태운 기아 카니발은 잘 닦여진 도로 위를 부드럽게 달려 목적지에 정확히 데려다 주었다. 군산에서 서쪽으로 꺾어 들어가 새만금 방파제를 미끄러지듯 달린 다음, 부안으로 갈리는 신사도를 통과했다. 이어서 신설된 연육교를 건넜고, 무녀도를 거쳐서 드디어 선유도에 진입했다. 나무랄 데 없이 편리하고 안락한 기행이었다. 밴은 선유항과 옥돌해수욕장을 뒤로하고 선유도 해수욕장을 가로 질러 모래밭 건너편 선유도리까지 달리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 편리함과 안락함 뒤에는 진한 아쉬움이 따라다녔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팬션들이 즐비해서 망주봉 중턱까지 갉아 먹어버렸고, 식당과 점포들도 주변에 총총히 늘어서서 바다 깊숙히까지 상술이 빼곡함을 들어내 보였다. 선유도는 선유도로되 옛 선유도는 아니었다. 차량들과 숙박시설들, 점포들, 그에 종사하는 종업원들, 그리고 부쩍 늘어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선유도의 풍광은 이미 신선들이 노닐던 순수무구한 선경은 아니었다. 오늘을 사는 방문객들에게는 시대에 맞게 변형된 이미지를 심어 주겠지만, 나의 오랜 추억에게는 많이 낯설었다.

인간들의 작위가 자연을 파먹어 들어가는 현상은 이미 선유도로 향하기 전에 충청남도 보령의 오천항에서부터 체감했다. 오천항의 중심지역은 무질서를 대변하고 있었다. 일찍이 고려시대에 이미 중국과의 무역항이어서 예로부터 ‘보령 북부의 길은 오천항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충지였음에도 건축물들은 낡았고, 상가는 복잡하고 후졌으며, 도로는 차량들이 움직이기에 애를 태울 만큼 서로 엉키기 일쑤였다. 집단 스트레스의 집합지 같았다.

사람들은 자연의 순수함과 싱그러움을 동경하면서도, 생계와 사업 목적으로 자연의 공간을 파고 들어간다. 생업과 기업활동을 제한하기도 어렵고, 자연에로의 회귀 본성도 버릴 수 없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순의 해결에는 미적 세련성과 공동체의 계획성이 요체이다. 자연의 수준에 수렴하는 미학적 세련성은 인간과 자연 간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해 줄 것이다. 국가관리와 행정을 통한 비전 있는 국토의 조형과 운영의 계획성은 인간들의 탐욕과 공공의 정서, 편리성 등의 충돌을 줄여 준다. 만일 지역의 난개발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자연과 공동체들을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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