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영혼을 빼앗는 시끄러운 대화
[송장길 칼럼] 영혼을 빼앗는 시끄러운 대화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11.19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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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울 명동거리 / 연합뉴스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울 명동거리 / 연합뉴스

친구들과 오찬을 나눈 뒤 최근 화제가 된 영화를 함께 관람했다. 영화는 예술의 한 장르인데, 재밌게 표현은 했지만 순수하지 않게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 듯해서 떨떠름했다. 영화가 끝나고 무거운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오는데, 같이 탄 30대의 두 여성이 어찌나 큰 소리로 떠드는지 내부가 몹시 시끄러웠다. 별 일도 아닌 시시한 자기들의 이야기로 승강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영화의 내용을 되씹어 음미하려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승강기에 탄 7~8명의 다른 탑승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쓸데없는 이야기에 정신을 침식당하고 있는지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참다못해 나는 두 여성들에게 타이르듯 쓴 소리를 던졌다.

“나중에 밖에 나가서 이야기 할 수 없나요? 이 좁은 공간이 너무 시끄러워서…”

승강기 내부는 일순간 조용해졌고, 곧 출구가 있는 1층에 도착했기 때문에 상황은 일단락됐다. 실은 나는 그들에게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승강기 문이 열려서 그냥 헤어졌다. 나의 입에서 나오다 머문 말은 특별한 건 아니고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당신들이 떠든 말들이 함께 탄 우리들의 머릿속에 다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의 두뇌를 침해한 것이고, 우리들의 생각은 모두 방해를 받은 것이다. 남을 해치지 않는 공중도덕은 함께 부딪치지 않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다. 선진국에 가보면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가.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하거나, 꼭 말해야 하면 소곤거리더라. 여기가 불 난 호떡집이 아니지 않으냐’

나와 친구들은 영화관을 나와 찻집으로 들어갔다. 자연히 승강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 화제가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좌중이 모두 나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조심하라고 충고를 하지 않는가. 물론 우호적이기는 했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구들의 논지는 ‘그 여성들이 크게 떠든 짓은 당연히 치기이지만 그렇게 한, 둘에게 꾸짖는다고 해서 세상에 꽉 찬 무수한 무례가 고쳐지겠느냐, 그들조차도 쉽게 태도를 고치겠느냐, 그들이 내 뒤에다 대고 ‘별 꼴이야’라고 쏘아붙이더라, 반발한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괜히 망신만 당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나는 ‘그래도 하나라도 일깨워 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 발전을 위해서 해야 할 작은 당위이며, 모른 척 하거나 참아버리는 것은 오히려 비겁함 뒤에 숨어버리는 소극성이다’라고 반박했지만, 나의 설득력은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옆의 제과점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 자리의 두 여성이 안하무인으로 마구 떠들어댔다. 나는 그들을 손짓으로 부른 뒤 “우리가 너무 크게 이야기했나요?”라고 반어법으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소리를 낮추는 듯 하더니 곧 높은 언성으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시계를 보며 아예 그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지하철 안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에는 한 중년 남성이 내 바로 앞에 서서 전화를 통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상품을 주고받는 과정을 협의하고 있었는데, 서로 이해가 엇갈려서 끝없이 소리를 높여 다투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 피하려다가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서 조금 음성을 낮춰서 말해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 이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조적으로 크게 화를 내는 경우도 겪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나이 지긋한 초로의 여성이 앉아서 아는 사람마다 전화를 걸어 대학 동창생들과 그날 점심 먹은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었다. 딸과 여러 친구들을 불러내 계속해서 갈비탕의 맛이 어떠니, 반찬이 어떠니, 언제 또 만날 것이고, 지금 어디를 지난다는 등 구차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말투로 보아 배울 만큼 배운 멀쩡한 계층인데도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그녀를 향했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가 되니 조용조용 말해달라는 취지로 점잖게 요청을 했다. 그녀의 반응은 차갑고도 공격적이었다. 정색을 하면서 무슨 권리로 남의 자유를 꺾느냐고 대들었다. 나는 그 여자와 다툴 의사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공중도덕에 관해 몇 마디 하자 그녀는 “잘난 체 하면서 왜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냐”고 비꼬았다. 나는 침묵해 버렸다. 비례를 지적해 주었으므로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공공장소에서의 언행은 그 사회의 품격을 말해준다. 발전된 사회일수록 세련되고 부드럽다. 그만큼 타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관찰하면 나라마다 떠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중국을 여행 할 때와 일본을 여행할 때, 또는 선진의 서방 세계를 다닐 때면 자연히 우리의 현실도 비교가 된다. 다르다는 느낌과 개선할 점이 분명히 떠오른다.

남을 더 많이 의식해서 행동하고 말한다면 갈등과 다툼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거리에서건, 음식점에서건, 차 안에서건, 어떤 형태의 모임에서건, 공공장소에서는 목소리를 낮고 부드럽게(겸허하게) 해야 그 공동체는 평화로워진다. 더 평화로워져야 더 건강해진다. 그리고 건설적이 된다. 하물며 태생적으로 경쟁과 대결을 위해 형성되는 비정한 정치에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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