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도덕재무장이 시급한 한국사회
[송장길 칼럼] 도덕재무장이 시급한 한국사회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11.11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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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 / 연합뉴스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 / 연합뉴스

출퇴근 시간이라서 전차 안은 붐볐다. 손잡이를 잡고 서있기도 좁았다. 가까스로 서서 견디고 있는데 연로한 노인 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면서 차 안으로 올라왔다. 90세도 훨씬 넘어 보이고, 깡마른 데다가 구부정했으며, 작은 백팩까지 메고 있었다. 전차가 흔들리자 노인도 휘청했다. 내가 마침 그와 가까운 거리에 서 있어서 얼른 부축해 주었다.

노인이 측은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자리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우정 주위에 잘 들릴 정도의 제법 큰 소리로 노인을 향해 말을 건넸다.

“요즈음은 노인이 차를 타도 앉아 있는 젊은이들이 본척만척 하지요?” 앞의 자리에 젊은이들이 죽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그 말이 들렸겠지만 한 사람도 자리를 양보하는 이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피곤하게 일 하니까 그렇지요”, 노인의 대꾸가 예사롭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그래도 그렇지요. 윤리 도덕이 희미해졌어요.”
“사정이  다 있을 텐데 그렇게 바라고 살아서도 안 되겠지요” 노인의 그말에 나는 적이 놀랬다. 나는 도덕을 말했는데, 노인은 아량으로 받았다. 노인은 아주 연로해서 나에게 기대며 겨우 지탱하면서도 희생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때 노인 옆쪽에서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일어나 노인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노인이 괜찮다고 사양하니까 여인은 자기는 곧 내린다며 입구쪽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보니 그 여인은 꽤 멀리까지 서서 가다가 늦게 내리는데도 자리를 양보했던 것이다.

두 정거장이 더 지나자 노인 옆자리에 자리가 나서 나는 노인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노인은 95세의 은퇴한 목사인데, 사목했던 교회를 방문하러 가는 중이었다. 평안북도 출신으로 전쟁의 혹독함을 겪었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했다. 그런 강인함이 그가 지팡이를 의지하면서도 노구를 이끌고 전차를 타며 세상을 체험하게 하는 듯했다.

노인은 전쟁 전에 월남해서 고생고생하다가 교회와의 인연으로 미국에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다. 뉴욕 근교에서 공부했다길래 뉴저지 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그의 입에서 본토발음의 영어가 튀어 나왔다.

Have you been to New York? (뉴욕 가보셨어요?)
Sure. I’ve been there several times. (그럼요. 몇 번 가봤지요)

노인은 귀국 후 목회를 맡으면서도 신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열심히 봉사했노라고 회상했다. 내가 목적지인 신분당선 양재역에 내리려고 인사를 하자 노인은 좋은 대화였다며 악수를 청했다.

친구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전차 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자 한 친구가 조심하라면서 자기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가 어느날 전차를 타고 가는데 노인 둘이 거나하게 술이 취한 채 떠들며 탑승하더니 앞자리의 젊은 승객에게 노인을 보고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나무랐다. 좀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술주정 반 꾸중 반 언설을 편 것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40대 청년이 얼굴색을 벌겋게 붉히며  벌떡 일어나 노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죽고 싶어?”

순간 차 안은 조용해지고, 노인들은 맞설 듯 하다가 워낙 청년의 기세가 사나워서 투덜거리며 주춤주춤 피해가더라는 것이다. 공연히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술에 취해 무례하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요구하는 짓도 가관이었겠지만, 부모 같은 노인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겠다고 막말로 협박하는 행패는 사회의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졌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이러한 사례는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겪는 이의 가슴을 쓰리게 한다. 무엇이 잘못일까?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를 그렇게 조장한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과 오염된 정치에 책임이 크다. 특히 가장 영향력이 있는 최상위 개념인 정치와 정치인들의 부정직과 이기주의, 반성하지 않고 남 탓하며 공격하는 언행은 사회 구성원들을 타락시킨다. 정치가 건전한 경쟁이 아니라 싸움을 하는 일로 잘못 인식하고 정쟁만을 일삼아 사회를 살벌하게 만든다. 범법과 법망을 교교히 피해 사욕을 채우는 지도층 인사들, 그 비리를 물리적으로 비호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사회 전반에 횡행하면 구성원들이 무엇을 배우고 따르겠는가. 갈등만이 고조될 것이다.

교육의 현장에는 미래의 동량들을 건실하게 자라게 하는 양식의 기운이 융성하지도, 충만하지도 않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려는 살벌함과 이념주의가 학교들을 지배하고 있다. 배움의 터에 윤리와 도덕의 교육, 인성을 함양시키는 교육은 빈약한 대신, 출세주의와 공격적이며 편향된 진영의 망령이 휩쓸고 있다면 이 공동체의 건강한 기상이 어디에서 배양되겠는가?

미국 펜실베니아주 출신 목사 프랭크 부크먼이 옥스퍼드대를 중심으로 1938년에 정식 발족한 MRA, 도덕재무장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피폐해진 지구촌의 놀라운 호응을 받았다. 무사(無私), 사랑, 순결, 정직이라는 네 가지 신조로 화합을 강조한 도덕 세우기의 높은 외침이었다. 한국에도 환영리에 전파돼 청소년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꼭 MRA가 아니라도 그런 건전한 정신의 사회운동이 일어나면 큰 도움이 되지 싶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도덕과 윤리의 회복이며, 그래야 사회가 튼튼해지고 장래가 밝을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할 일도 세부적인 트집과 투쟁보다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정화운동에 치중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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