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 노벨상과 대한민국
[김영회 칼럼] 노벨상과 대한민국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10.21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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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세계인의 로망 노벨상. 
그 상을 받기 위해 각국의 
위인들이 밤잠을 못 잡니다.
웃기는 일도 많은 노벨상―

노벨상 / 연합뉴스
노벨상 기념메달 / 연합뉴스

국내에서 ‘조국파동’으로 북새통을 떠는 사이 북유럽의 스톡홀름(스웨덴)과 오슬로(노르웨이)에서는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망의 2019 노벨상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노벨상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평화상입니다. 올해 평화상 수상은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알리(43)총리에게 돌아갔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알리총리는 평화와 국제협력을 달성하려는 노력, 특히 이웃 나라인 에리트레아와의 국경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이고 진취적인 결단을 보여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한국과 일본 같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의 매우 불편한 관계입니다.

필자는 1990년대 말, 북유럽을 여행하던 중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노벨평화상 시장식장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해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거행되는 노벨평화상의 시상식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습니다. 커다란 그림 두어 점이 벽에 걸려 있는 것 말고 별달리 꾸밈도 없는 넓은 공간은 과거 60, 70년대 우리나라의 중・고교 강당과 비슷했습니다. 수상자가 연설을 하는 앞쪽 연설 대 역시 흔한 목재로 만든 수수한 보통 탁자였습니다. 다른 상이 시상되는 스톡홀름의 호화롭고 휘황찬란한 궁정 시상식장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일찍이 중학교 시절 “노벨상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터라 시상식장, 바로 그 장소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탁자 앞에 서서 “우리나라는 언제, 누가 이 자리에서 상을 받고 연설을 할 수 있을까” 상상을 하며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몇 해 뒤 꿈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과 북,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 분단 55년 만에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역사적인 ‘6·15 선언’을 한지 얼마 뒤이니 국내는 물론 온 세계가 환호를 보냈습니다. “아, 드디어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한 개인의 ‘인간승리’를 뛰어 넘어 한민족의 쾌거라서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섯 번에 걸친 죽음의 고비, 투옥기간 5년 11개월, 3년에 걸친 천신만고의 망명 끝에 이룬 꿈같은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1980년 광주사태 때는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였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기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남긴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입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거대한 재산가가 되자 죽기 한 해 전인 1895년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노벨상은 해마다 노벨의 기일(忌日)인 12월 10일 시상식을 갖고 수상자에게 금으로 된 메달과 표창장, 노벨재단의 당해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줍니다. 올 2019년의 경우 수상자는 상금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0억 9000만원)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로는 미국이 362개를 기록해 1위이며 2위는 123개를 수상한 영국, 3위는 107개의 독일, 4위는 68개의 프랑스, 5위는31개의 스웨덴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25개, 중국 12개, 인도 11개 한국이 1개입니다.

그런데 평화상만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선정하고 시상하는데 상 제정 당시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통합국이면서 역내 평화에 공이 많아 그를 배려한 것이 분리 시상의 이유라고 합니다.

노벨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예로운 상이다보니 경쟁이 심해 해마다 10월이 되면 수상자 선정을 놓고 잡음도 일어납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수상 때는 노벨상의 ‘흑 역사’라고 할 만큼 낯 뜨거운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김 대통령이 평화상 후보로 떠오르자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반겼지만 정치적 반대자들이 수상 반대운동을 펼쳤던 것입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들고 일어났고 “오슬로로 가서 데모를 하자”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사태가 시끄러워지자 군나르 베르게 노벨상위원장은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수 천통의 편지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다. 한국인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009년에는 김 전 대통령 서거 뒤 추모 열기가 일자 정보기관에서 특별 팀을 만들고 보수단체를 앞세워 뒤늦게 스웨덴에 수상 취소운동을 벌였다는 사실마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가 사형선고를 받으면서까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해 온 것에 대한 공로였습니다. 1987년 서독의 사민당 의원 90여 명이 민주투사로서 김대중의 정치적 공로를 인정해 매년 추천, 결실을 본 것입니다. 김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던 날 저녁 오슬로 시민 500여 명은 촛불을 들고 아시아의 거인이 평화상을 받은 데 대한 축하로 거리행진을 벌였습니다.

노벨평화상에는 웃기는 사연도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도 평화상 후보로 추천 된 적이 있고,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전쟁종식 공로로 두 차례나 후보에 올랐으며, 우리나라의 전두환 대통령도 재임 중 평화상후보로 추천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9개월 만에 평화상을 받자 “당선된 지 몇 달 만에 뭘 했는데?”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왔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진 오바마 대통령은 “나도 왜, 상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노벨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비상하면서도 고독하고, 비관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현대전에 사용된 강력한 폭탄을 발명함으로써 ‘죽음의 상인’이라는 혹평을 듣고 있는가 하면 인류에 이바지한 지적인 업적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제정함으로써 ‘위대한 인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노벨은 열아홉 살 때 프랑스 유학도중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불행하게도 그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 상처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1896년 이탈리아 산레모의 별장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뒤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문이 돈 적이 있습니다. 김칫국 먼저 마신 자가발전이었지만 전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완전히 제거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된다면 노벨평화상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수상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3인이 공동 수상하는 것이 돼야합니다. 한반도의 주인은 남과 북입니다. 꿈같은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조국파동’은 결국 그가 장관직을 사퇴함으로써 일단락되었습니다. 조 장관은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면서 “죄송하고, 송구하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한명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라는 귀거래사를 남기고 장관 재임 35일, 그동안 자신을 옭아맸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매우 아쉬운 소회를 밝혔습니다.

조국 장관이 사퇴하자 삭발 투쟁까지 벌였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은 득의만만 “사필귀정”이라며  “문대통령은 사죄하라”고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면서 장외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문대통령은 11월이면  5년 임기의 절반을 맞습니다. 가라앉은 경제, 복잡하게 얽힌 한일관계, 냉각된 남북문제, 사회 갈등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습니다. 과연 문대통령은 이 난국을 잘 이겨 낼 수 있을지, 지난 날 “대통령 못 해 먹겠다”던 노무현 대통령,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탄식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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