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칼럼] 신인류 합류기
[송장길칼럼] 신인류 합류기
  • 송장길(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19.09.25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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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스마트국토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정밀도로지도에 따라 운행되는 자율주행차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스마트국토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정밀도로지도에 따라 운행되는 자율주행차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층아파트 숲 속의 거처에서 나오면 으레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류와 조우하기 시작한다.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도 가끔 만나지만 대개는 낯선 이들이다. 나름의 개성과 이해가 다르더라도 공통점으로 넖여보면 같은 인종들이다. 큰 거리로 들어서면 행인들은 부쩍 늘어나게 마련이고, 지하철 입구에 이르러서는 제법 조밀한 인파를 이룬다. 물 흐르듯 밀려가고, 꾸역꾸역 몰려오는 군중 속에 나는 어느덧 하나의 분자가 되어 생동하는 인간 물결에 휩쓸린다.      

지하철 개찰구를 향하는 걸음걸이는 천차만별이다. 속보와 완보, 팔자 걸음과 십일자 걸음, 종종걸음과 뚜벅거림, 갈지자로 걷는 모양새와 발을 오무리고 걷는 모습들이 모두 제각각이다. 장신과 단신, 깡마른 홀쭉이와 디룩디룩 뚱뚱보, 정장과 캐주얼 차림 등등이 혼재하고, 때로는 수다를 떠는 패거리와 굳은 표정의 외톨이들도 뒤섞여 있다. 핫팬츠를 입은 젊은 여인들은 미끈한 종아리와 토실토실한 허벅지를 귀엽게 움직여 세련된 체구를 맵시있게 나르고, 성큼성큼 전진하는 근육질의 청년들은 건장한 멋을 뿌리며 당당히 행진해 나간다. 출퇴근 시간띠에는 인파의 물살이 더 세차서 나는 그 흐름에 뒤처질세라 가랑이가 뻐근하도록 힘겹게 대열을 따라잡는다.        

지하철 안의 풍경은 볼 때마다 진기하다. 어림잡아 승객의 8할도 넘게 핸드폰에 시선을 꽂고, 액정 위의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대면과 유선을 통한 대화의 시대는 가물거리고, 거의가 SNS로 원거리 통신을 하거나, 화면 위로 불러온 정보와 지식의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들은 단말기 하나로 멀거나 가까움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어디든, 무엇이든 손쉽게 연결할 수 있다. 소통은 물론, 저장된 문자나 미리 보내온 메시지, 그리고 넘치는 문화와 첨단 정보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까지도 맞닿을 수 있다. 가위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지하철 안에 갇혀있는 시간에도 원격 조종으로 외부 세계에 관여가 가능한 수퍼 인간들의 모습인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연장해논 인간들의 두뇌 용량이 얼마나 늘어났고, 삶의 폭과 질량이 얼마나 증폭됐을까?   건너편에 앉아 내내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20대의 한 여성은 손가락으로 핸드폰의 자판을 날렵하게 두드리며 자주 표정을 바꾼다. 밝은 미소를 띄기도 하고, 입을 삐쭉거리기도 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남자 친구와 채팅을 하고 있으리라. 몸은 여기에 있어도 정신은 여기와 그곳을 오가거나 걸쳐있는 요술이 아닌가.      

그 오른 쪽 한 자리 건너에는 50대 중년 남성이 긴 시간 동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건너편에서 유심히 쳐다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학 교수풍의 외모로 미루어 짐작컨데 상당한 수준의 지적인 글을 읽거나, 전문 분야의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을 활용하는 단순한 셈법을 넘어서 그는 시방 세상의 복잡한 이치나 심오한 진리, 또는 우주의 무한한 섭리에 뇌의 촉각을 뻗쳐 섭렵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류는 이미 우주의 현상과 비밀을 상당히 밝혀냈고, ‘우주 정복’이라는 개념을 상식화하지 않았는가.   

감히 우주 정복이라니~! 아직은 달과 화성 정도의 탐험 수준이지만 그 의지만으로도 대견하다. 이 조그만 지구에서 저 광활한 우주를 넘보는 것이 인간의 두뇌이고, 인류의 힘이다.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별이 천 억 개가 넘고, 우리가 속해있는 은하계에만도 1억 개의 별이 떠 있으며, 줄잡아 70조의 은하계에 7백만 경의 별이 존재한다니(호주 국립대 천문학팀 추산), 우주를 향한 인간들의 꿈은 범인의 얄팍한 상상을 훨씬 넘어 멀리 나가있다.           

저쪽 구석 경로석에서도 핸드폰에 열중인 한 노인이 보인다. 나는 그와 어쩐지 공통점이 많을 성 싶어서 곁눈질로 흘깃 보았다. 80대 중반을 넘겼을 그는 필경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류의 동화를 읊으며 자란 세대일 것이다. 당시에 달은 최고의 아름다움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농경 산업이 주종이었던 그 시대는 전통 문화의 생활방식과 가치관, 규범이 대세였다. 아마도 수천 년을 전승, 발전시켜온 문화의 주류일진데, 이제는 서구 문화와 첨단 문화에 가려진 채 본채는 사회의 외진 곳에 보일락말락 내재해버린 상황으로까지 전락했다. 저 노인은 핸드폰 다루는 서투른 솜씨로 보아 밀려든 새 시대에 적응하려고 겨우 신시대의 바닷가 모래 밭에 나와 헤매거나 하구역쯤에서 서성이고 있을 터다.

한 세대가 농경사회와 서구화한 사회, 고도의 IT 산업사회 등 세 문화를 차례로 영유하며 살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보기 드문 요행이다.  강남역에 이르자 승객들이 떼몰려 내리고, 우르르 탑승한다. 하차한 젊은이들의 발길이 다시 빨라졌다. 일터로 달려가는 중이리라. 재택 집무도 늘어나고 있으므로 딱히 출근길이라고 못박아 말하는 날도 오래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수준의 사업에서는 직장이든, 재택 집무든, 아니면 회의 장소든 컴퓨터에 입력된 다큐와 발 빠른 통신 연결로 대부분의 업무가 진행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업무 처리 뿐 아니라 생활의 수단도 사물인터넷의 개발로 깜짜깜짝 놀랄 변혁이 이뤄지고 있다. 첨단 분야에서는 AI나 정교한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하는 수준까지 진화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고속이어서 미래에는 어디까지 변모할지 전망조차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대세를 따라가려고 어디쯤에서 발버둥치고 있는가!     

약속 장소에서 차를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나는 다시 생각에 젖는다. 나의 굼뜬 지체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초고속으로 진화하고 있다. 제 4차 산업 혁명으로 인류의 문명이 천지개벽 같은 변혁이 이뤄질 때 인간의 본성, 인류의 본질은 어떤 모양을 띌 것인가? 인간의 의식과 가치체계도 물론 문화의 변화와 연동할 것이다. 수십만 년 전의 인류, 원인과 구인을 거쳐 수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시기에 이르러 서서히 형성되고 계발되어 전승돼온 인간의 본성도 구비구비 수없이 탈바꿈했을 것이다. 이제 또다른 대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유형으로 일신하게 됨은 뻔한 일이다.              

나는 미래의 인간형이 무섭게 치닫고 있는 기계화를 따라 까칠하고 무미건조해지는 대신에, 더욱 순수하고, 합리적이며, 정직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있다. 첨단의 시대가 정밀하게 짜여져서 사악함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건실한 인간사회를 견인할 수 있다면 그또한 오죽 좋을까. 그리하여 100세 내외의 짧은 세상살이가 보다 평안하고, 서로 신뢰하고, 어떤 인간관계에도 사랑으로 가득가득 채워지기를 희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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