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의사 자녀 학원 바래다 주는 일까지' 제약사 영업직의 비애
[포커스] '의사 자녀 학원 바래다 주는 일까지' 제약사 영업직의 비애
  • 김연주 기자
  • 승인 2019.09.16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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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근절위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이 되레 제약사 간 시장점유경쟁 부추겨
이사도와달라는 약사의 요구 뿌리치지 못해...제약사 영업사원에 갑질·인권 침해 여전
의사·바이오제약협회 등 관련단체 “문제점 알지만 뽀족한 대안없어”’
제약사가 의사·약사에 제공하는 리베이트의 처벌 수위가 강화됐지만 제약사 영업사원에 대한 갑질과 인권 침해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의사·약사들의 갑질과 인권 침해로 인해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이직을 고려해야할 만큼 큰 고통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이미지

#1. A 제약회사 영업사원 김 씨는 자신을 의사들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의사가 처방해주느냐에 따라 자사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그는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면 밤낮없이 무조건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을 만들면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대리운전부터 담당 병원장 자녀의 학원 픽업, 쇼핑 심부름 등 잡다한 일까지 떠안아야 한다. 무리한 요구를 전부 들어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회사로부터 끊임없이 영업 압박을 받는다”며 “일정 실적을 채우지 못해 자비를 들인 적도 있다”고 답했다.

#2. B 제약회사 전직 영업사원 이 씨는 견딜 수 없는 수준의 갑질에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근무 첫날부터 심한 모욕과 약국 측의 무리한 요구로 곤혹을 치렀다. 이 씨는 “약국에 들어가 환한 얼굴로 인사했지만 대꾸도 하지 않아 무안했다”며 “그런데도 계속 인사하고 말을 걸고 무시당하기를 반복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사를 도와달라는 약사의 요구에 주말을 반납하고 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씨는 “당시 약사는 부탁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업무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해 약을 먹다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약사가 의사·약사에 제공하는 리베이트의 처벌 수위가 강화됐지만 제약사 영업사원에 대한 갑질과 인권 침해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과 과도한 리베이트 관행 규제로 뿌리 깊게 박힌 ‘갑질’이 근절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제약사와 의사·약사 간의 갑을 관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지난 2014년 회사별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을 도입해 리베이트를 근절하고자 했다. 지난해부터는 반부패경영시스템 ‘ISO37001’ 인증제를 마련해 내부 부패를 비롯한 리베이트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리베이트는 지불대금이나 이자의 일부를 지불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CP가 운영됨에 따라 제약사 간 시장 점유 경쟁이 더 치열해져 병원과 약국의 ‘입맛 맞추기’가 불가피해졌다. 

시장 경쟁 과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측은 일선 영업사원들이다. 의사나 약사가 회사 제품을 처방해줘야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사의 약을 판매하기 위한 갖은 방법을 전부 동원해야 한다. C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영업사원 이 씨는 “병원, 약국과의 관계유지가 영업 실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회사에서 실적 압박이 수시로 이어지기 때문에 ‘놀았다’는 말을 피하고자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서 행정처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협회 측에서 부당한 요구를 한 의료인에 대한 징계조치가 있는지 묻자 관계자는 “협회에서는 자정하는 분위기지만, 따로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병원과 약국, 제약사 간 발생하고 있는 갑질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리베이트 규제와 관련해 파생되는 의료계·의약계와 제약사 간의 갑질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협회 차원에서 해당 사안에 개입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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