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안익태 친일논란 대립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안익태 친일논란 대립
  • 김여주 기자
  • 승인 2019.08.08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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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한신대 교수 “안익태는 친일을 넘은 친나치”
김형석 안익태 재단 박사 “사실 무근”
8일 오전 국회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 김여주 기자
8일 오후 국회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 김여주 기자

 

친일인명사전에 안익태가 기재돼 논란이 이어져 온 가운데 그가 작곡한 애국가 존폐 여부를 두고 찬반이 대립 중이다.

8일 오후 국회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반면 지난 7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안익태에 관한 역사적 진실’ 기자회견이 열렸다. 두 행사는 각각 안익태의 친일 여부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지난 2008년 민족문화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안익태를 기재했다.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은 “안익태는 유럽에서 주로 한국 환상곡을 연주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1940년 이후 일본 황실 음악을 주제부로 작곡한 ‘에덴라쿠(월천악)’, ‘일본 축전곡’,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 작곡한 ‘만주 환상곡’을 주로 지휘함으로써 군국주의 일본의 프로파간다에 충실히 복무했다”고 주장했다.

‘안익태 케이스’를 서술한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안익태는 친일을 넘은 친나치”라며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어도 이제 (친일 행적을) 알고도 계속 이어나갈 건지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애국가 변경을 촉구했다.

반면 안익태재단 측은 안익태가 친일이 아닌 ‘극일’이라는 주장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안익태의 모교인 숭실학교는 평양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당시 그는 ‘3·1운동 관련 수감자 구출운동’에 가담했다가 일경의 지목 대상이 되어 퇴교처분을 받았다고 근거를 댔다.

지난 7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안일태의 극일 스토리’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 김여주 기자
지난 7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안익태에 관한 역사적 진실’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여주 기자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를 서술한 김형석 박사는 “이해영 교수가 주장한 ‘친일을 넘어 친나치’는 허구임이 입증되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이해영 교수가 CIA 기록이라고 주장한 <호프만 자료>를 비롯하여, 그가 인용한 자료들을 추적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한 결과 그의 책에는 20여 가지가 넘는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애국가 탄생 비화를 설명했다. “안익태는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애국가를 작곡했다”며 “일본뿐만 아니라 체코, 스페인에서도 외국인에게 ‘한국환상곡’을 원어로 가르쳐 우리나라말로 부르게 했을 정도로 애국심이 가득한 사람이다”고 설명했다.

박성원 연세대학교 음대 원로교수는 “과거에 안익태 선생님을 뵙고 언제가 제일 기쁘셨는지 여쭤본 적 있다”며 “안익태 선생님께서는 일본 사람들 입에서 ‘대한 사람 만세’라는 가사가 나올 때 제일 벅차다고 말했는데 절대 친일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안익태의 친일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애국가의 존폐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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