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식 칼럼] 日경제보복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만들자
[송하식 칼럼] 日경제보복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만들자
  • 송하식(언론인)
  • 승인 2019.08.02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조치로 우리경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부산항 신항에서 크레인들이 무역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다./연합뉴스
우리경제가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조치로 크게 위협받고 있다. 부산항 신항에서 크레인들이 무역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다./연합뉴스

 

필자가 신문의 헤드라인 제목을 달던 일간신문 편집기자 시절인 1984/85년의 일이다. 과학기술과 산업경제 지면편집을 담당했었는데, 취재기자들이 올리는 기사는 대부분 국내기업의 신기술·신제품 관련기사가 많아 중복 제목을 피하기 위해 무척 고민했다. 그 시절 신문은 세로쓰기 15단 체계로 뉴스기사는 대략 10단을 채우고 나머지 하단 5단은 광고가 차지했다. 1개 지면은 박스기사 2개, 스트레이트기사 7개 안팎이었다. 두 개 지면을 편집하려면 기사는 적어도 15개 꼭지가 소요됐다. 필자는 단어 중복을 최소화하기 이를테면 ○○○ 개발, ○○○ 상품화, ○○○ 국산화, ○○○ 수입대체, ○○○ 量産, ○○○ 생산시스템 구축 등을 사용했고 이마저 부족하면 제목 끝에 ‘성공’ 두 글자를 추가하거나 ○○○ 국내 첫 공급, ○○○ 첫선, ○○○ 선뵈 등으로 둘러대기 바빴다.

1984~1988년 당시 우리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률은 1985년(7.7%)을 빼고 1984년(10.4%), 1986년(11.2%), 1987년(12.5%), 1988년(11.9%) 3년 연속 두 자릿수 고공행진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주최국으로서 국내외 성가를 날렸다. 국내기업들은 호경기를 맞아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예산을 대폭 늘려 하루하루 신문 지면을 꽉 매울 만큼 신제품·신기술 개발경쟁을 벌였다. 우리기업들은 자고나면 쑥쑥 자랐고 우리 청년들도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나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당시 대학졸업예정자들은 입도선매(立稻先賣)식으로 4학년 재학 중 전원 취업했다. 우리 기업들은 덩치를 키우면서 기술집약·하이테크 산업구조로 본격 전환했던 것이다.

국내 기업이 핵심부품·소재를 국산화하면 해당 일본기업들은 국산화 초기 가격 덤핑을 쳐 국산의 성장 싹을 자르려했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으면 신기술을 앞세워 파트너 십을 유지하려 접근한다. 다시 말해 대일의존도가 높을 때 일본기업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지만 국내 점유율이 낮아지면 생존을 위해 한국기업과의 다각협력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국산화·수입대체 기사들이 많을수록 한일합작투자, 조인트벤처 기사들도 덩달아 많았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베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확대할수록 우리기업들의 국산화·대체수입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일본기업들도 특단의 생존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본정부가 자국기업의 수출규제를 위해 간섭과 단속을 지속한다면 일본기업들마저 한국의 큰 손을  잃지 않으려고 한국이나 제3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겨야 한다. 이처럼 脫일본 현상은 한국기업 뿐만 아니라 일본기업들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보다 나은 국내 기업환경을 만들면 핵심부품·소재산업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다. 정부가 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 등 기업친화 정책을 강화한다면 국내 기술기업 육성뿐만 아니라 해외기술기업 유치도 가능할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경제보복을 우리가 슬기롭게 극복할 때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미래를 보장하는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올해 나라살림 중 일자리예산 23조5000억 원을 청년·여성·어르신·신중년·장애인 취업을 돕는 데 쓰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 정부의 추경예산이 곧 투입될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생산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에 의존했던 핵심부품·소재의 국산화·수입대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가 늘면 늘수록 우리 청년들,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학수고대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8월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 27개국)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국내 파장과 피해규모는 예단할 수는 없지만 1차 경제보복(반도체 핵심부품·소재 3개 품목)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오는 28일부터 일본 기업들은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일본 경제산업성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특히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선 하나하나 허가까지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수출품목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들은 일본기업들로 하여금 한국과의 거래를 끊으라는 대목으로 읽혀질 수 있다. 아배 내각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나라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기업들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7월 29일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을 시작으로 기계·자동차(31일), 정보통신·석유화학(8월 1일), 바이오(2일), 정밀화학·섬유(7일), 전자·철강·비철금속(8일), 드론(9일) 등을 대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 업계 설명회를 순회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주요 산업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의 위기는 그동안 해외아웃소싱을 선호하고 대일의존도를 생각 없이 늘려온 국내 대기업들의 자업자득일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 노사 산업평화, 첨단기술·자본재 자립, 다품종 소량생산체제 등을 기반으로 우리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믿을 건 우리 스스로일 뿐이다. 

중일 센카쿠갈등과 희토류 무기화, 중국의 사드보복,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경제보복 등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 세계는 지금 ‘자국 우선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국제질서는 20세기 초 서구열강들의 약육강식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지금처럼 엄중한 시기에는 실력을 키울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에서 당당하게 승전보를 알려와야겠지만, 이를 기화로 제3국들과의 통상·경제협력을 한층 더 넓혀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진정한 극일(克日)의 길은 10년, 20년 뒤 일본을 이길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게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