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욱 인사만사25시] 작은 것이라도 변화해야 할 이유
[박창욱 인사만사25시] 작은 것이라도 변화해야 할 이유
  •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
  • 승인 2019.08.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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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

 

눈을 부릅뜨고 내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말은 없지만 “어른 왔는 데 자리 안 비켜?” 라는 투이다. 자리에 앉아있는 젊은이는 피곤해서인지 싸가지가 없어서인지 애써 외면한다. 평일 오후에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을 거치면 자주 보는 풍경이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탑골 공원이 있는 지하철역이다. 사무실이 서울역 앞 간혹 지하철로 지나며 보는 풍경을 그려 보았다.

조금 민감하게 둘러보면 지하철 안에 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묘한 게 아니라 악취이다. 대체적으로 50대,60대되는 분들이 모여서 하루를 보낸 결과이다.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가 잘 씻질 않아서, 담배에 찌들어서, 그리고 낮에 술까지 한 잔씩 하고 마침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탄 것이다.

30여년전 직장생활을 할 때 익히 만나던 서울역 앞 지하도 풍경도 스쳐 지나간다. 이른 아침 출근시간에 혹은 늦은 퇴근시간이면 어김없이 만나는 ‘노숙자’라고 하는 무리다.

왜 저런 결과들이..
어느 나라, 어디를 가도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머리에 맴돌지만 답을 차지 못했다. “처음부터 저런 삶이었을까? 원해서 간 것일까?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되었을까? 그 전의 삶은 어땠을까?”

강의를 하면서 만나게 된 특이한 분이 있다. 이런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사회복귀 교육을 자주 시켰다는 분이다. “어느 한 사람도 이런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살다보니 어느 순간에 이 위치에 와 있고, 이 자리를 거슬러 가려고 했으나 잠시후에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나 NGO단체에서 다음을 기약할 공간이나 기회를 주는 시도를 많이 했고 본인도 그런 강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다시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는 것이다.

친구의 고백… 40대후반에 보고 들은
그런 중에 내 머리를 치고가는 일이 생각났다. 10여 년 전 고향친구를 서울에서 만났다.그리고 1년여가 된 시점에 들은 말이다. 지방국립대 법학과를 나왔던 친구로 비교적 총명했다. 졸업하고 20여년이 지난 시점에 만났을 때 모습은 뭔가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서울 살면서 한 때 가락청과시장에서 과일상자를 나르는 중노동, 흔히 말하는 ‘노가다 생활’을 제법 오래 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그 이후 서울에서 만나곤 했는데, 어느 날 경기도 소재의 산속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소식이다.

왜 이런 일이?
결론은 ‘되는대로 살고 내키는 대로 지르더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생 뭐 별거 있냐?”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어! 어!”하다가 그 위치로 간 것이다. 주변도 의식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의 꿈은 모두가 컸다. 주변에서 박수 받은 것도 똑같다. 그런데 어릴 때, 젊을 때는 제대로 못하고 안 해도 별차이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하루이틀, 1년2년을 그런 모습으로 살다가 보면 어느새 그 위치에 가 있게 된다.

15년간 일했던 직장을 떠난 지 10년만에 돌아와 같은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인,군인,교사로서 평생 ‘사람’에 관한 일로 관심이 주를 이뤘다. 한 조직에서 지속되었으면 모르고 지나갈 일이었다. 같은 사람을 10년의 공백후에 만나니 전후 모습이 비교되어 가지게 된 결과이다.

메타인지심리학
심리과학공부를 하다가 최근에 알게 된 메타인지학(META COGNITION)’으로 이해해 본다.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프로이트, 융에서 시작된 연구의 맥락이다.

인류역사의 대부분은 수렵.채취, 농경시대이다. 긴 세월동안 우리의 몸은 에너지 보존, 저장의 메커니즘이 강력하게 구축된 것이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배를 채워 에너지를 보강하는 것이 기약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에너지의 소비가 최소화되는 행동만 골라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소 행동을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려면 평상시 에너지의 2배 이상이 소요된다. 점심식사와 저녁시간 사이가 보통 4시간인데 생소한 경우를 당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면 절반이 되는 2시간만 지나면 배가 고파진다. 언제 배 채울 지 모르니 죽음의 두려움에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말에 ‘앉으면 기대고 싶고, 기대면 눕고 싶고, 누우면 종부리고 싶고, 종부리면 자고싶은 것’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기본 속성이 된 것이다.

100세 시대의 대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결론이다. 지금 나이로 청년이든 장년이든 몇 살까지 살 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몸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언제든지 에너지가 넘치는 여건이 되었다. 뭐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에너지 순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부지런해야 한다고 한다. 지하철의 무법자가 아니라도 넘치는 에너지인 ‘당(糖:에너지)’뇨병이 기다린다.

언젠가 신문 스크랩 해 두었던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이 젊은이들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 두어라.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는 말이다.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고 저 사람들이 저 꼴 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지금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것이다”

가슴에 새기고 지금의 내 모습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언제까지 살아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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