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식 칼럼] 식민지배 日경제수탈의 ‘화석’ 광명동굴
[송하식 칼럼] 식민지배 日경제수탈의 ‘화석’ 광명동굴
  • 송하식(언론인)
  • 승인 2019.07.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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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길은 명동굴이 일제강점기 국내 유수의 금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광명동굴 홈페이지 캡쳐
황금길은 광명동굴이 일제강점기 국내 유수의 금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광명동굴 홈페이지 캡쳐

 

KTX광명역에서 시흥·안양방면으로 좌회전, 양지사거리에서 시흥·광명IC 방면으로 우회전, 그런 다음 서독터널을 지나 1.2km 이동한 후, 다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1.6km 올라가면 가학산자락에 광명동굴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3.1운동 100주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시절이 어찌어찌 수상하던 차에 서울 외곽에 위치한 광명동굴을 찾았다.

광명역에서 승용차로 12분 거리에 위치한 광명동굴은 연간 120만 명 이상의 유료관광객이 찾는 국내 최고의 동굴테마파크다. 요즘 야간연장개장으로 열대야를 피해 동굴을 찾아든 피서객들이 북적인다. 광명동굴은 형형색색 화려한 불꽃처럼 이같이 탈바꿈했다. 과거 금광이었던 광명동굴은 1972년 폐광 이후 40여 년간 새우젓 창고로 버려졌다가 지금의 기적을 이뤄낸 곳이다.

하지만 광명동굴의 속살은 우리의 아픈 과거사 흔적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총연장 8.2km에 이르는 갱도는 황금과 은, 구리, 아연 등을 캐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거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가파른 목재갱도에는 시간에 쫓기면서 목숨을 걸고 험한 일을 하는 그들의 피땀이 배어 있고,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는 낙서도 남아 있다.

동굴 출구를 나오면 왼쪽에 ‘광명평화의 소녀상’을 만나게 된다. ‘어, 소녀상이네’, 폐광지역에서 소녀상이라니 생뚱맞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녀상과 그 옆의 목련나무에 대한 사연을 듣고 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광명시는 자신을 ‘못다 핀 꽃’에 비유했던 고(故) 김순덕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목련처럼 활짝 꽃 피우라고 목련나무를 심었고 그 아래 소녀상을 세워 일제의 반인륜적 만행에 청순을 빼앗기고 성노예로 끌려갔던 위안부할머니들을 보듬고 있다. 

그렇다. 이곳의 광명동굴과 소녀상은 일제가 조선병탄 이후 자원수탈과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을 지속하며 우리 민족에게 갱도처럼 굴곡진 삶을 강요했던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광명동굴은 구한말인 1903년 5월 2일 ‘시흥광산’으로 개발됐다는 최초 기록이 남아 있다. 본래 조선의 금광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는 ‘광상조사기관’을 설치, 조선반도에 흩어진 광업권을 모두 거두어갔다. 시흥광산도 이때 침탈돼 ‘고바야시 토우에몬’이라는 일본인 소유로 넘어갔다. 일제강점기 시흥광산은 전성기 500여명에 달하는 광부들을 부렸는데, 대부분은 끼니를 이어가기 위해 모여든 농민들이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금광과 관련한 선광과 제련기술을 독점하면서 시흥광산에서 생산된 금·은·구리·아연 등은 대동아전쟁의 군비와 전략물자로 쓰도록 일본으로 보냈다. 

시흥광산은 세계 2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금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큰 금광이었다. 생산량 52kg(1955~1972년)의 우리기록으로 짐작할 때 일제강점기 수백kg의 황금을 캤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시흥광산은 황금 말고도 은·구리·아연 등 당시 일제의 전략물자와 다름없는 다량의 광물을 매장하고 있었다.

대개 그러하듯, 전국의 광산 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거나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은 죽도록 일하고도 밥 세끼 수준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에 불과했던 구조였다. 따라서 제값을 치르고 조선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반출한 것은 경제수탈이 아니라고 일본이 강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베 일본정부가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식민지 사죄를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와 같다. 

일본정부와 일본기업의 의도된 딴청(?)으로 배상과 사죄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위안부할머니와 일제 강제징용노동자들이 고령과 병세악화로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나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한일 양국의 외교문서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적시하지 않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1965년 국교정상화를 졸속 추진하다 보니 그 골격인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이 불완전한 상태로 체결돼 오늘날 한일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반세기 동안 한일 외교관계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수시로 흔들렸다.

이달 들어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일본전범기업에 대한 강제징용피해자 배상판결을 타박하며 대한민국에 수출규제 카드를 내밀었다, 이어 8.15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서 지금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 27개국)’에서 한국을 핀셋으로 콕 집어 본격적인 경제보복을 할 것이라고 선전포고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공식사이트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런 행태를 연속으로 보면서 일본은 우리에게 신의칙이 없는 ‘불편한 이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우리의 선택지는 점점 분명해진다. 일본과는 아예 상대하지 않고 새로운 친구를 찾아나서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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