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女·성] 시인·사진작가·기획자...'나 자체가 콘텐츠' 이민정 작가
[일·女·성] 시인·사진작가·기획자...'나 자체가 콘텐츠' 이민정 작가
  • 고윤(라이프라이터)
  • 승인 2019.07.23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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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女·聲’은 ‘일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뜻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워킹우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오늘, 바로 당신에게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이민정 작가 / 고윤 라이프라이터
이민정 작가 / 고윤 라이프라이터

정의하기 참 어려운 사람이다. 누구나 책 한 권 쯤 거뜬히 나오는 인생이고 마음속에 우주를 품고 있는 지라 누군가를 한마디로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난해하다지만, 특히 이민정 작가는 하나, 아니 두세 개 직업으로도 규정하기 힘든 사람이다.

이미 15년 전 첫 시집을 낸 시인이지만 이번 세 번째 시집은 무려 13년 만이다. 오랜만에 다시 시인으로 돌아왔다. ‘사랑은 詩時하다’(새라의숲), 이번 책은 이전 두 권의 시집과는 결을 달리한다. 오롯이 텍스트만 있던 이전 책들과 달리 사진과 함께다. 사진과 시가 어우러지는 ‘감성시문’, 시와 사진이 독립적이어서 별개로 읽히길 원하는 ‘본격시문’,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첫 시집을 낼 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와, 이렇게까지 ‘입맛’에 맞게 고쳐 써야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2년 후 두 번째 시집을 낼 때는 아예 계약할 때부터 출판사에 ‘내 글에 대해 행간의 점 하나도 바꾸지 말고, 오타라도 고칠 거면 미리 말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덕분에 예쁘지는 않아도 진짜 내 자식 같은 느낌이었죠. 반면 1집은 예쁘게는 나왔는데 자식 갖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하하.”

15년 전 첫 시집...13년 만에 사진과 함께 한 3번째 시집 내

이렇게 두 권의 시집을 내고 13년이 훌쩍 지나간 사이 이민정 작가의 손에는 운명처럼 카메라가 들렸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글을 사진과 같이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기다렸어요, 사진이 모일 때까지(웃음). 글은 계속 썼으니까 차곡차곡 쌓여 왔었고요. 성격상 대강은 싫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고 그 사이 제가 생각한 콘셉트의 포토에세이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어, 밀렸다(웃음)’ 싶었지만 제겐 또 아무도 못 말리는 ‘근자감’이 있어서 ‘내 사진과 글은 너희들과 달라, 내 이야기니까’ 이런 마음이 있었죠.”

이민정 작가와 마주한 곳은 마침 ‘사랑은 시시하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 현장이었다. 밴드의 공연과 이 작가의 노래, 시 낭송과 진솔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따뜻한 시간이었다. 이날 낭송된 시 중에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로 시작되는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보여줄 만큼 보여주고 들려줄 만큼 들려준 것 같은데 아직도 내 안엔 할 말이 차고 넘쳐’ 들려줄 게 참 많은 그다. 그리고 그 말들을 참 다채로운 형태로 변주해 들려줬다.

학원강사-연구원 하다 교통사고가 인생의 전환점...시-음악-사진

이민정 작가 / 본인 제공
이민정 작가 / 본인 제공

학창시절부터 이미 예체능 관련 상은 숱하게 휩쓸었지만 그는 그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마침 진로도 고교 교사였다. 그러다 유난히 보수적인 분위기를 참지 못해 좀 더 자유로운 학원강사가 돼 사회탐구-논술을 10년간 가르쳤다.

‘이 정도 했으니 이제 좀 큰 조직에 들어가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공채를 뚫고 한 교육기관의 연구원으로 1년 정도 일했을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8개월간 병원에 누워있을 정도로 심각하고 큰 사고였다. 이는 이민정 작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퇴원하고 처음 시작한 건 음악이었다. 인터넷에 공고를 내 멤버를 모아 밴드를 했지만 맨날 ‘투닥투닥’ 오래가진 못했다. 일산의 유명한 노래패 ‘포크와 삐꾸(전신이 종이연)’에서 노래를 하면서 ‘잘 한다’는 칭찬을 처음 들었다. 잠깐 ‘어, 음악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형태로든 꾸준히 써왔다. 집중력이 남다르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에 뭐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만족도 중단도 없어 결국 등단을 했고 작가라는 타이틀도 달게 됐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한창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훌쩍 떠나 봐’ 하면서 카메라를 쥐어졌다. 한 달간 빨간 마티즈를 몰고 전국을 일주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그 사진들을 보며 친구는 ‘넌 사진을 찍어야겠는데? 글보다 사진을 잘 찍어’라고 말해줬다.

“카메라는 제게 저 멀리 있는 사치품 같은 느낌이었는데 저를 위해 비싼 카메라를 한 대 샀어요. 내가 번 돈으로 내 일을 위해 투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평생에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사진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팔리기 시작했고 프로로 일을 하게 됐어요. 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사진은, ‘예술 해서 돈을 벌 수 있구나’를 깨닫게 해줬어요. 주변에서도 엄청 놀랐죠. ‘그걸로 밥을 먹고 살아?’ 하면서요.(웃음)”

처음엔 요리잡지에서 음식사진을 찍다가 음악잡지 일을 하면서 뮤지션 사진을 찍게 됐다. 사람을 찍기 시작하니까 이 작업이 그렇게 좋고 즐거웠다. “적어도 인물사진은 깊이 본다는 생각이 들어요. 뻔하지 않게 찍는다고 스스로 자부하고요. 사람들이 주는 느낌을 잡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제주에서의 4년 반, 여행 다녀온 기분

시, 음악, 사진까지 숨 가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5년 전 훌쩍 제주도로 내려갔던 그다. 금세 올라오겠지 했는데 4년 반이 흘렀다. 역시나 바쁘게 살아서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는 게 정확하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 용문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제주는 그냥 여행을 한 기분이에요. 제주가 일상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제주에선 특히나 변화가 되게 많았어요. 첫해엔 밀려오는 사람들 속에 있었고, 이듬해엔 지역방송 작가로 일했고, 3년 차엔 문화기획, 콘텐츠기획을 했고, 그리고 네 번째 해엔 전시를 했어요. 손대는 콘텐츠의 테마가 계속 바뀌고 시스템, 스타일 다 바꿔서 해봤는데 새로운 재미가 있었어요. 안정감 보다는 약간 떠다니는 느낌으로 계속 즐기다 온 것 같아요.”

웹툰 얘기도 빼놓을 순 없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이민정 작가를 상징하는 ‘마녀’ 캐릭터. 이건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대한민국 우수캐릭터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캐릭터로 ‘검정고무신’으로 유명한 이우영 작가의 작품이다. ‘한국의 여성 캐릭터는 영심이, 하니 등 ‘어린’ 소녀 밖에 없고 어른, 나이 먹은 노처녀 캐릭터가 없네’ 하는 생각에 탄생한 게 이 작가를 모티브로 한 ‘마녀’다. 그림 작가와의 웹툰 협업은 제주에서도 계속 됐다.

이제까진 다른 작가의 그림에 이 작가의 글이 얹혀 졌다면 올 가을엔 아예 그림까지 도맡아 그린 웹툰 북이 나온다. 특히 1020세대가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갖는 별자리 관련 일러스트 북이다. 별자리에 관해서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공부를 했고 뭐든 하고 싶은 거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이번엔 그림까지 다 그렸다. 이쯤 되면 그 능력치의 한계가 궁금해진다.

용문, 일상 안에 자연이 들어오다...이제 또 새 도전

여기서 또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한다고? 맞다. 작년 말 양평군 용문에 자리 잡은 이유가 따로 있다. 조용히 침잠하며 시도하고 싶은 일이 있다.

“실은 올해 초에 기획 쪽으로 다른 일을 해볼까 잠시 궁리를 했었는데 결국 엎었고 책, 출판 그리고 드라마 대본 작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진행하던 3번째 시집은 나왔고, 별자리 관련 웹툰 북은 하반기 출간 예정으로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드라마 대본 작업이다.

“콘셉트는 비밀이고요. 이제까지 제가 한 일들, 15년 가까이 했던 것들을 쌓아서 축약해 다 쏟아 붓고 있어요. 제 일들 중엔 괜히 하는 건 없었거든요. 하하.”

양평 용문의 넓은 주택에서 이민정 작가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뭐 하나를 사러 갈 때도 20분씩 운전해야 할 만큼 시내와 거리가 멀다. 구도심이든 신도시든 여태까지 도심에만 살다가 산중에 툭 떨어진 느낌이다.

“운전할 때 또 걸을 때 보이는 풍경들이 제주하고는 또 달라요. 제주처럼 시선을 뺏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달까요. 제주 바다는 특히 ‘와~’ 하며 절로 시선이 뺏기게 되는데, 여긴 풍경 안에 제가 있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느낌, 안정감이 있어요. 제 일상 안에 자연이 들어온 느낌이요.”

너무 잔잔하고 심심하진 않을까.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하면 작가 못합니다(웃음). 남들이 머리 식힐 때 하는 걸 전 일로 하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놀면서 하는 거라서. 오롯이 여기에만 몰두합니다. 따로 여가 이런 건 없고요, 제 휴식은 잠입니다. 하하. 저 자체가 콘텐츠라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꺼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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