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고마워, 꽃망울!
[송장길 칼럼] 고마워, 꽃망울!
  • 송장길(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19.07.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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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던 강원 양양군 손양면의 상운분교. /연합뉴스
인기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던 강원 양양군 손양면의 상운분교. /연합뉴스

한국전쟁이 마을들을 앙칼지게 할퀴고 간 뒤였다. 아직도 그 상처에는 핏자국이 다 마르지 않았고, 군데군데 고름이 끼어 욱신거리는 시절이었다. 난데 없이 반동분자로 몰려 학살 당한 향리 유지들의 유가족들, 그 앙갚음으로 처절하게 짓밟힌 좌익들의 눈빛에는 증오와 살기가 섬뜩했다. 광은 텅텅 비어 있었고, 헛간에는 전시에 망가진 살림들이 나뒹굴었다. 이슥한 밤 호롱불 아래서나 동네 우물가, 개울가 빨래터에서는 불안한 세상 걱정과 한숨이 무시로 스멀거렸다. 폭우가 한바탕 훑고 가면 개울은 흙탕물로 범람하고, 강아지들은 깡마른 채 을씨년스런 고샅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였다. 피폐한 강산에 어느새 새로운 기운이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낙담과 두려움, 원망의 끝자락에서 생존과 희망의 푸른 싹이 일제히 돋아나고 있었다.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밭 대여섯 마지기 가량 떨어진 편편한 뜰이었다. 갖은 푸성귀를 재배하는 채소밭을 가로질러 한달음에 이르면 탱자나무 울타리 가운데로 정문이 의젓하고, 우람한 은행나무와 소나무, 플라타너스가 둘려져 있는 운동장이 널찍하다. 그곳이 우리 어린이들의 천국, 초등학교(옛 국민학교)였고, 새싹들이 서로 부딪치며 쑥쑥 자라는 목축지였다.       

세상이야 어찌 되어가든 우리는 그곳에 가면 신바람이 났다. 거기에는 친구들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고, 재미가 있었고, 때로는 소소한 다툼으로 긴장도 감돌았다. 신지식이 있었고, 새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었고, 단꿈이 몽실거렸다. 가시나들은 사슴때처럼 쭝긋거리며 몰려다녔고, 사내들은 맨땅에서 뒹굴며 길들여졌다. 운동장에 풀어진 아이들은 목청껏 소리지르고 놀며 그들의 세상이 오고 있음을 암시했고, 그 환호와 비명들은 함성으로 모아져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전쟁이 몰고 온 공포와 완고한 전통사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홀가분함도 거기서는 자유로웠다. 우리는 양반 상놈을 가리지 않고 살갗을 부비며 친구가 됐고, 우익 좌익도 곰파지 않았다. 그러나 눈치로 보면 벌써부터 사내들은 여성의, 가시나들은 남성의 다른 성을 엿보느라 너나 없이 눈알을 바쁘게 굴렸다.   

어린 사슴의 사향이 봄바람에 풍겨왔던 것일까? 움추렸던 심장이 모처럼 울렁거렸다. 맨드리 단정한 동급 여학생의 해맑은 눈빛이 보숭보숭한 한 남학생의 언저리를 줄곧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나 또래들과 어울려 하교할 때, 교내의 무슨 시합이 벌어질 때 어김 없이 사슴의 곁눈질이 나에게 꽂혔다가 재빨리 달아나곤 했다. 부끄럽기도 했겠지만, 흔했던 수근거림에 들킬세라 잽싸게 도망쳤을 것이다.            

얼굴을 빠알갛게 붉히는 청순한 수줍음이었다. 자운영 꽃 붉게 널려있는 들판 길에서도 미풍에 실린 시선을 얼른  걷어갔고, 발목까지 빠지는 설원의 뾰드득뽀드득 거리는 눈길에서도 뽀얗고 불그스레한 볼에 머금은 미소를 감추었다. 수줍음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은 간절해도 도무지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번도 얼굴을 맞대고 멋적어 눈빛을 섞은 적이 없고, 이름 한 번 다정하게 불러보지 못했다. 그저 첫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정만도 아닌 그 중간쯤에서 서성이며 기억 속에 서로의 영상을 꼭꼭 담기만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졸업을 맞았고, ‘빛나는 졸업장’을 말아 들고 노래 부른 송별회를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눈물 범벅이 된 졸업식에서 그 아이는 내내 고개를 떨구고 울었고, 나는 먼발치로 비켜가 만만한 앞산을 바라보며 눈을 연신 껌벅거렸다.             

꽃망울의 추억은 미리 내 가슴에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적에 조부를 따라 대전 근교 진잠의 친척 댁(대교댁이라고 칭함)에 다녀온 일이 있다. 낙락장송에 둘러싸인 제법 큰 연못을 뜰 앞에 거느리고 있고, 소슬대문을 두 개나 거쳐 들어가면 넓은 화단이 펴져있고, 행랑과 사랑, 안채, 그리고 뒤안에 사당까지 늘늘이 기와집이 겹겹이 자리한 위풍스런 고택이었다. 조부와 나는 범절이 반듯한 그댁의 따듯한 대접을 받으며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귀가할 때 그댁 어른께서 “화초를 좋아하는구나”하시면서 소담한 작약 한 그루를 잘 싸서 나에게 선사하셨다. 나는 그 어린 생명을 애지중지 보듬고 돌아와 집안에 정성들여 심었다. 아풀사! 낮가림인지, 텃세 탓인지 입양한 함박꽃은 그날 저녁부터 생기를 잃고 축축 늘어져 버렸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아무리 수집다는 꽃말을 품고 있더라도 이렇게 시들 수 있느냐” 제발 살아나라고 간절히 보채도 소용이 없었다. 나의 상심에 놀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극진한 공을 들인 효험이 있었는지 며칠 사이에 화초는 원기를 되찾아 꼿꼿하게 다시 일어났다. 어느날에는 놀랍게도 작은 몽우리들까지 몽실몽실 빚어내 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망울의 조화에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내면의 진홍색 비밀을 빠꼼히 열어 보일 즈음에는 그 화려한 개화를 기다리며 희열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랴! 2학년 되던 해 6월 25일 지긋지긋한 그 공포의 전쟁이 터졌다. 세상이 온통 혼비백산의 혼돈에서 허우적댔고, 우리 가족은 서둘러 피난 길에 올랐다. 생사의 절박함 앞에서는 모든 것이 짐이었고, 작약도 물론, 경황 중에 작별의 눈빛 마저 나누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겨졌다.       

계절이 흐르고 전황이 바뀌었다. 우리는 국군의 수복을 따라 꿈길처럼 귀가할 수 있었다. 돌아와 보니 집은 대지와 골격만 남아 있을 뿐 온기와 생기는 바짝 말라 너덜거리는 벽지에 붙어 있었다. 피난지에서도 가끔은 생각나던 함박꽃도 기다리지 못하고 시체가 돼 있었다. 선혈처럼 붉었을 꽃잎은 흔적만 겨우 보일듯 말듯 가물거렸고, 이파리도, 줄기도 메말라 땅 위에 스러져 있었다.     

꽃의 정교한 조형과 색감, 주위와의 자연스런 조화를 따를 형질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기 위한 몽우리의 가려진 열정 또한 어찌 가볍게 여길 수 있는가. 내면으로 품은 희원과 열망, 그 치열한 정진은 꽃보다 더 조밀한 함축이지 않은가.          

나는 사라진 함박꽃을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초등학교 동기동창 여학생을 해후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의지가 없어서였지, 서로 다른 삶의 길을 떠나서라든지 시간적, 또는 그 외의 여유가 없어서라는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양 쪽이 모두 선뜻 나서는 숙기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의 없이 공감한다. 중학생 시절 어느 날 집 근처의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무엇인지가 익숙한 한 여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감성의 촉수가 파르르 떨렸다. 휙 돌아서 보니 틀림 없이 그 아이였다. 순간, 그녀를 불러 세우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충동을 억누르면서 그녀가 총총히 사라짐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기회를 놓아주었고, 그리고 갈등했다. 그 여학생이 이사한 우리 집을 찾아내서 집 주변을 배회하다가 나와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 버렸고, 내가 불러주기를 기대했으리라는 추리에 이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들의 수줍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상대를 경외하는 태도와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는 윤리,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심성이 없었다면 동구 밖 주모처럼 스스럼 없이 거칠고 대담해졌을지 모른다. 그 수줍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만일 우리가 어릴 적에 고적한 뚝길에서 조숙한 만남이라도 이어갔다면, 키 큰 밀밭으로 들어가 비릿한 포옹이라도 즐겼다면 그 뒤에는 필경 어떤 멍에를 지고 살았을지 알 수 없다.

게으른 일요일 아침, 창가에 앉아 멀리 푸른 하늘을 응시한다. 이따금 흰구름이 지나가며 부드럽게 손짓하고, 산들바람에 가로수 가지들이 산들거린다. 나는 어느새 상념의 끈에 이끌려 싱그러운 고향, 그 찬연한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는 소박한 인성들이 곡채의 씨를 뿌리고, 그 결실로 소찬을 장만하는 그윽한 풍경이 있고, 삶의 기쁨과 아픔, 위안을 서로 나누는 따스한 정경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수줍어했던 초등학교 동기 여학생의 청아한 미소가 필름처럼 흐른다.  

그 미소의 배음은 무엇일까? 날로 피폐해지는 인간성을 배양할 내면의 향기와 품격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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