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현해탄에 감도는 경제전쟁의 먹구름
[송장길 칼럼] 현해탄에 감도는 경제전쟁의 먹구름
  • 송장길(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19.07.10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것은 명백히 기술의 무기화다. 일회성 보복이나 이해타산 수준을 넘어서 경제전쟁의 인상이 짙은 힘의 행사이자 한국 국력을 길게 압박하는 전초전이다. 앞으로도 한국경제에 급소가 되는 100여 가지의 금수 리스트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극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르고 제압하려는 무서운 의도가 감추어져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총을 무기로, 이토오 히로부미는 교묘한 외교력을 무기로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던가. 한국의 국력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공격이고, 대한민국에 대한 치밀하게 계획된 도전으로 봐야한다. 아베 신타로 총리실에서 직접 세 팀을 구성해서 비밀리에 1년 간 세밀하게 준비했다니 소름이 끼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일본측의 규제 철회와 한일 간의 협의를 촉구하자 일본정부는 가차없이 거부했다. 문 대통령이 자유무역의 원칙을 들며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볼 때에는 맞대응을 하겠다는 국제적, 자구적 조치를 절절히 예고했음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베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철회할 생각도 없고, 협의할 대상도 아니라고 말해 일본은 규제 방침이 외교와 경제의 확실한 방향타임을 내비쳤다. 안보와 연결된 고급 소재들이 한국을 통해 유엔 제재국인 북한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명분도 내세운다. 한국이 조사해 봤지만 징후를 찾지 못했다고 밝혀도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기업들과 회동해서 대책을 논의하고, 오래 걸리는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다고 특별한 묘안이 나올 성 싶지 않다. 국제사회의 여론에 호소하고, 친일 인맥을 통해 간청해봤자 이미 출범한 일본의 통치 항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 참에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평가하고, 두 나라의 미래와 동북아의 역학관계를 아우르는 큰 틀에서 새로운 협력관계의 위상을 정립하지 않고는 뾰죽한 방안이 나올 리가 없다. 어떻게라도 한일 정상들이 새 시대에 촛점을 맞춘 획기적인 방안을 들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는 제의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이다.

자칫 두 나라의 명운에 암초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절실하다.  한국은 시간에 쫓기고 있다. 일본이 이미 수출 규제에 들어간 IT 핵심소재 3가지, 플루오린 플루이미드와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은 국내에 수입 재고품이 2~3 개월 치만 남아있다. 그 후에는 국가 주축 산업의 제조 라인이 정지될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전략 기업들의 생산라인이 스톱되는 현실은 상상하기도 끔찍한 국가적 대재앙이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의 70~95%를 점유하고 있어서 대체국가도 없고, 국내 생산도 요원하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급거 일본으로 뛰어갔지만 기대난이고, 미국은 중국을 비슷한 유형으로 압박하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돕고 나설지 의문이다. 더구나 여러 징후가 있었음에도 손놓고 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이 터진 뒤에야 “연구하겠다”고 한가한 모습을 보이니 무슨 외교력을 바랄 수 있겠는가. 강 장관은 아프리카 순방길에 올랐고, 문 대통령은 30 대 기업 총수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독려했다.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경제가 비상이 걸렸는데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 앞에서 표정관리에 신경 쓸 겨를이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대기업 총수들과 관련자들 앞에서 일본이 국내 정치를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고, 근거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켰다고 비난했다. 물론 어떤 효과를 노린 발언이겠지만, 다급한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반대 방향의 발언이다. 기업들의 수입처 다변화와 국내생산의 확대, 원천기술의 도입 등을 지원하겠고, 인허가 간소화와 일부 예산지원을 추경에 반영하겠다면서 야당의 협조도 구했다. 그러면서 핵심 기술의 개발과 해외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 맞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멀리 보고 지시하는 식으로는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후 이승만 정권은 반공과 함께 반일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웠다. 일제 때 훈련됐던 인사들을 다수 기용하기는 했지만, 식민통치에 대한 국민감정의 앙금을 정치화해 한일관계는 내내 꺼끄러웠다. 이어진 박정희 정권에서는 북한에도 뒤져있어서 시급했던 경제개발에 일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청구권 협상을 타결했고, 국교 정상화 뒤에는 발전의 롤모델로 삼았다. 한국의 20세기 후반 압축성장에는 안보와 해외 진출 지원 등 한미동맹의 덕이 가장 컸지만, 일본의 기술과 노하우의 학습도 일정 부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후 한일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어 현해탄에는 냉랭한 풍랑이 드높았다. 오죽하면 지난 달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한일 정상들이 단독회담 의사가 타진됐음에도 겨우 8초 간 스치듯이 만나고 말았을까? 양 쪽 모두 속 좁은 지도자상 아닌지? 문세광 사건과 김대중 피납사건, 독도 영유권 주장, 우경 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 같은 심각한 충돌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아베 정부와 갈등 수위를 높인 원인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서 발생한 것도 아니다. 대립의 촉발은 잘 알려진 대로 박근혜 정부 당시에 체결한 위안부 문제의 협약인데, 국제 협약 폐기에 새 정부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타로 총리가 국제회의에서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기 싸움을 지속하다가 겨우 타결한 궁여지책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들어서자 마자 전 정권의 흔적 지우기에 열을 내면서 한일 협약은 휴지가 됐고, 대법원은 새 정부의 반일 기세에 부합되게 일제 시대 강제 징용의 보상을 일본회사가 부담하라고 판결하므로서 일본의 분노를 부추켰다. 그 후에도 한국 사회에는 독립운동과 친일 적폐론이 복구풍 민족이념으로 분출, 팽배하므로서 일본의 정계에는 물론,  일본 사회의 전반에 혐한 여론이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절대 잊을 수 없다. 또다시 그와 같은 질곡을 겪어서도 안 된다. 따라서 비열하게 굴종해서도 안되며, 경계를 소흘히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일본은 잇몸과 입술이라 듯이 아주 가까운 이웃이고, 서로 도와야 할 공통점이 많으며, 실제로 경제분야에서는 톰니처럼 얽혀 돌아가는 부분이 상당하다. 삐걱거리면 서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첨단 부분에서는 소재와 공작기기 등에 일본의 기술이 뛰어나 우리에게는 편리한 수입선이고, 산업적으로 서로 보완하는 입장이 돼왔다. 일본도 안보적으로 한국의 방파막이가 필요하며, 한미일 삼각대가 유용할 것이다. 노벨상을 22명이나 수상한 일본은 국제 협업의 측면에서 활용할 여지가 많은 국가인 것이다. 단순 논리로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으로 단 번에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도 않는다.       

일부 정치인들이 반일 감정을 부추키는 언행을 보인 것은 정치 이기주의이다. 대중의 인기를 의식한 얄팍한 선동이다. 일부 근시안적 네트즌의 선동, 그에 부화뇌동하는 시민들도 기업들의 사정과 나라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무분별한 언행으로 독을 살포하는 꼴이다. 과거의 아픔을 망각해서는 안 되지만, 과거에 매몰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하지 않는가? 상대의 잘못은 준엄하게 고치도록 서릿발 같은 논리와 꼼짝 못 할 실력으로 요구하되, 배우고 인정할 일은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와 일본이 상생하는 길이다.      

조선을 정복하지 않으면 오히려 당한다는 헛된 망상에 젖어있던 명치유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 그를 정신적 멘토로 신봉한다는 아베에게 평화와 협력의 진실을 감동적으로 각인시켜주는 일이 한일 관계의 건강한 미래에 요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