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식 칼럼] 다시 보는 ‘수입선다변화’
[송하식 칼럼] 다시 보는 ‘수입선다변화’
  • 송하식(컬럼니스트)
  • 승인 2019.07.08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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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대책 논의를 위해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대책 논의를 위해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의 무역보복과 관련해 옛날 얘기지만, 일제 골프 채를 구입했던 1993년의 여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배기자들이 골프를 하라고 강권해 물려받은 헌 채로 실내 골프연습장을 드나들던 필자는 필드에 나갈 때를 앞두고 새 것으로 치려고 들뜬 마음에 우선 아이언 세트만을 구매했었다. 브릿지스톤 단조 제품이었는데, 값은 당시 두 달 치 월급에 상당하는 177만원에 달했다. 브랜드는 일본 회사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헤드는 태국산, 샤프트는 대만산, 그립은 인도네시아산 등 그런 식이었다. 막상 일제 골프채를 샀는데, 시쳇말로 짝퉁과 같은 것을 샀다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나 싶었던 일본의 기습 공격이 시작됐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전격 단행함으로써 재고가 소진된 국내 해당 업체는 1~3개월 후 생산을 장담할 수 없는 위기를 맞았다.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데, 그중 ‘수입처다변화’ ‘수입선다변화’ 등 낯익은 용어가 등장한다. 다시 말해 정부는 해당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를 신속하게 추진함과 동시에 그 때까지는 임시방편으로 부족한 물량을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조달하겠다는 뜻에서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일본이 핵심 소재·부품을 무기로 삼아 한국을 겁박하는 데,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피하려면 현재로선 ‘과거사’를 덮고 일본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수탈과 남북 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산업화를 서둘러 근근이 가난을 탈피했지만, 여전히 기술적으로는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54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대일무역 적자를 기록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일국교수립 첫해 대일 무역적자는 1억300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비례해 매년 늘어나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대일무역 역조를 이루고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4년간 대일 무역역조 누적액은 6046억 달러(약 708조원)에 달한다. 국교수교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 한해 수출 총액의 120% 가량을 한국에서 벌어간 셈이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에 산업화를 이뤄 성공적 국가로 평가받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재 수입을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산업구조 탓에 무역규모가 커질수록 대일 무역역조도 덩달아 커지는 모순을 잉태하고 있다. '가마우지 경제'라고 하던가. 물속을 헤엄쳐 물고기를 잡았더라도 목줄 때문에 주인한테 토해내는 가마우지 사냥법을 빗댄 말이다. 자본재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탓에 우리경제가 대부분의 이득을 일본에 빼앗기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대일무역 역조 문제를 일찌감치 우려해서 1977년부터 수입선다변화 제도를 운영했었다. 정부는 과거 5년간 무역역조 규모가 가장 큰 국가를 대상으로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결정했지만 해당하는 국가는 산유국을 제외하고는 일본뿐이어서 일본에만 적용돼 왔다. 이에 따라 불요불급한 일본산 전자제품이나 골프채 등은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금지됐고, 브릿지스톤 골프채의 경우처럼 일본 업체는 제품을 쪼개서 일본 밖에서 조립해 한국에 우회수출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정반대로 일본정부가 수출을 못하겠다는 것이어서 일본의 자본재 생산업체들은 큰손인 한국 거래처를 놓치지 않으려면 과거 수입선다변화 제도를 회피할 때처럼 한국에 우회 수출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업체도 앉아서 당할 바에는 일본의 거래 선과 접촉해 다각적인 묘안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이 전체국가도 아니고 사회주의국가도 아닐진대 민간의 무역행위까지 가로막는 것은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의 틈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깝고도 먼 나라’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국도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이웃 일본은 33억 달러의 긴급자금 요청을 외면하고 오히려 자금을 빼 가는데 혈안이었지만 ‘일본보다 먼 나라’ 호주는 한국이 내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한국과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 줄다리기 중에도 IMF 출자국 자격으로 일본은 한국의 수입선다변화 제도철폐, 독도영유권 주장의 빌미가 된 한일어업협정 개정, 일본문화 개방까지 줄기차게 요구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특히 한일갈등은 애증관계와 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다. 지금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국채보상운동, 금모으기운동 등 과거처럼 국민단합을 도모할 수는 있겠으나 한일문제를 오롯이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는 온전한 극일(克日)이 우수 인재를 키우고 핵심 기술을 자립해야 가능하다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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