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드라마
[송장길 칼럼]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드라마
  • 송장길(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19.07.02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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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 자유의 집 인근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 인근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파격에서 파격으로 이어진 정치 드라마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원수처럼 으르릉거리던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이 벌인 악수와 웃음 파티였다.

하루 전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위터 한 꼭지가 높은 성 속에 폐쇄돼 있는 최고 존엄(?)을 끌어냈고, 역사적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며 양측이 모두 기뻐했다. 두 정상은 참혹한 전쟁으로 원수가 된 뒤 굳게 닫혀 있던 국경, 군사분계선을 서로 오가며 희생자들의 선혈이 스민 땅을 상징적으로 밟았다. 상기된 세계 최강국 지도자가 지구상 최빈국 중의 하나인 공산주의 전제국가 지도자와 번개팅으로 만나 서로 추켜세우며 임시 회담장으로 들어가 53분 동안이나 환담했다. 두 정상의 면담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가려진 채 남북미 정상들은 함께 파안대소하며 '자유의집'을 나와 판문점 드라마의 막을 내렸다. 외교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의 이벤트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판문점 회동은 갑작스러웠던 탓으로 준비가 덜 돼 66년의 빗장을 여는 행사로서는 초라했고, 진행도 뒤죽박죽이었다. 언론의 접근도 무리하게 통제돼 개방성 ‘리얼리티 쇼’에 흠결이 됐다. 최고지도자는 중차대한 국사를 책임지므로 일정에 급급해서는 안되며, 스케쥴 정렬은 참모들의 일이다. 시간에 쫓기던 노령의 트럼프 대통령은 피로가 역력했고, 참모들은 혼줄을 놓은 듯했다. 한미정상회담 뒤 회견장에서 미국 대통령을 향한 불름버그 통신 기자의 추가질문을 사회자가 아닌 동석한 국가원수가 “시간이 없다”며 막아주는 촌극도 벌어졌다.

미국과 북한 정상이 단독으로 만나는 동안 북핵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의 통치자는 예의 바르게(?) 조연을 자처하며, 다른 방에서 1시간이나 대기해 주었다. 세 정상들이 역사적이라고 누누이 자찬하는 북핵문제 관련 정상들의 빅딜에서 대한민국의 존재는 스스로 배제된 것이다. 북한이 끈질기게 추구한 '봉남통미'의 현장을 지켜보며 한국국민들은 미국과 북한의 비밀스런 대화의 내용이 궁금한 채 덩달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북한 정상들의 회동은 두 가지의 결과를 내놓았다. 하노이 회담 후 교착돼 있던 미북정상들의 만남이 성사되므로서 북핵협상의 숨통이 트였다는 점과 핵협상을 위한 실무팀을 구성해 2~3 주 안에 협의를 벌인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과 북한이 다시 협상의 테이블에 앉는다는의미는 평가할 만하다. 북한이 고집해온 톱다운 방식에 실무협의를 가미한 방안인데, 하노이의 실패를 보강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졌을 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바로 실무회담 대표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북핵 대표를 지목했고, 북한은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 부상이 카운터 파트로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기피하려던 인물(persona non grata) 중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빠졌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팀을 이끈다. 북한 측에서는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김성혜 통전부 실장, 김혁철 국무위 특별대표가 보이지 않아 문책성 변화가 감지됐고, 격상되었다고 알려진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 부부장의 그림자 수행은 현송월 부부장이 대신하는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백악관 방문을 초청했지만 확답을 듣지 못했으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역제안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은 노후한 항공기 사정과 신변 안전, 군부와 주민들의 설득이 난제일 터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북핵 타협이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외 정치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을 우려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형식과 절차의 돌파구가 마련될지라도 북핵협상의 본질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서두르면 안된다. 경제제재는 언젠가는 풀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재는 유지된다”고 말해 북한의 제재 철회 요구를 그냥은 들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포괄적인 핵폐기 외에는 답이 없음을 국제사회에 밝힌 것이다. 두 정상이 53분 간 대화하면서 통역시간을 뺀 30여분 동안에 북한은 제재 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했고, 미국은 포괄적인 핵폐기를 위한 리스트와 사찰, 폐기 스케쥴을 전제로 설득했음을 짐작케한다. 김 위원장은 총력을 기울이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고사하고, 지난해의 -3%에 이어 올해 -5%의 GNP 성장률이 예상되는 극심한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힘들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보고 북한이 급히 반응한 배경이 거기에 있다고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기업가적인 행태로 즉흥성을 구사해왔다고 하지만 북핵에 관한 당근은 국제사회와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내놓을 수가 없다. 더구나 민주당의 대선 레이스가 달아 오르고 있어서 신중모드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판문점 드라마도 그런 입장에서 치밀한 계획이었다기보다 미끼를 턱 던져보았을 개연성이 높다. 답답하던 김정은 위원장이 덥썩 입질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양쪽에 훈수를 두었을 것이다. 세 정상은 이런 복잡하고 예민한 북핵문제를 동상이몽 식으로 각각 국내 정치에 굴려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다만 홍보나 선전은 진실과 본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열기나 효험이 쉽게 소멸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미국 우선주의에 치우쳐 지나치게 영리하게(too much smart) 접근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 페이스를 부단히 구사하면 한미동맹은 소원해질 것이며, 국제사회의 신뢰도 멀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을 너무 가볍게 치부하면 결국 미국의 국익에도 독이 될 수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대로 서두르지 않기를 권고한다.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전략, 전술에는 반드시 감춰진 계략이 있었듯이, 북한의 핵 협상에도 깊숙한 골짜기에 은폐된 독이 쌓여있을지 모른다는 전제 아래 그 진의와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먼저다. 한반도의 비핵화 개념도 한국과 미국, 북한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사실은 웬만하면 다 아는 현실이 됐다. 그런 냉철한 판단 위에서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향한 뛰어난 비젼을 세워 나라를 이끌어야 진정한 지도자다. 진영논리를 앞세워 야권은 제쳐놓고, 눈 앞의 평화와 정치적 직조에만 천착하면 결국 나라의 재앙을 키우는 꼴이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진솔하게 핵을 완전 포기하고, 그 대가로 국제사회의 체제보장을 받아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 북한이 살길은 그 뿐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북한과 3000만 주민들에게 유익하다. 시대에 뒤진 방식으로는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버틸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권유와 압박이 아니라도 한반도의 북쪽이 이제라도 일어설 방법과 넓은 길은 그 방법밖에 없다.

이제 한 바탕의 리얼리티 쇼는 휩쓸고 지나갔다. 한국국민들은 남북미 세 정상들이 주연한 드라마가 화려한 바람에 그치지 말고 내용으로도 결실을 맺어 감동을 불러오기를 바란다. 정치가 정치적이기에만 그치지 않고, 허울 뿐인 역사적이기에만 머물지 말고 국가의 건강하고 발전하는 미래를 굳게 건설하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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