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여자를 왜?”…외면과 상처에 시달리는 ‘중년여성 성범죄’
“나이 많은 여자를 왜?”…외면과 상처에 시달리는 ‘중년여성 성범죄’
  • 김연주 기자
  • 승인 2019.06.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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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중년 여성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 피해로 고통 받고 있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 /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40~50대 중년 여성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 피해로 고통 받고 있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 /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중년여성 성범죄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성범죄지원센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많은 여성의 성(性)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꼽았다. 또 언론이 20대를 대상으로 발생한 성범죄 보도에만 치중한다는 점도 중년여성의 성범죄 2차 피해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1. 서울 관악구에 사는 여성 이 모(56) 씨는 지난 2016년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이 씨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 피해 사실을 고발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내연관계를 의심하고 피해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와 존중을 받지 못해 상처를 입었다. 이 씨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사건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하라고 해서 괴로웠다”며 “어렵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경찰들은 가해자와의 관계를 수차례 묻고 내연관계인 것처럼 몰고 갔다”고 운을 뗐다.

이 씨는 조사과정에서 겪은 경찰들의 의심에 피해 사실을 괜히 알렸나 싶어 후회하기도 했다. 그는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말하기까지도 많은 고민과 갈등이 필요했다”면서 “경찰이 나를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신고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었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2. 슬하에 두 자녀를 둔 여성 강 모(54) 씨는 인터넷에 달린 악성 댓글로 성범죄 2차 피해를 보았다. 자신이 피해자로 연루된 성범죄사건 기사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성 댓글이 달린 것이다. 강 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나이 많은 아줌마한테 성욕을 느끼나?’, ‘세상에 여자가 그렇게 없나?’ 등 나이를 언급하는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강 씨는 “사람들은 성폭력을 당하는 나이가 따로 있다고 인식하는 거 같다”며 “가해자에 대한 비난보다 피해자인 나를 언급하고 조롱하는 댓글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사실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데, 기사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고 절망감을 느꼈다”라며 “한 때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려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3.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 전 모(49) 씨는 지난 2014년부터 퇴사연도인 2017년까지 직장 상사로부터 상습 성추행을 당한 바 있다. 전 씨는 근절되지 않는 성추행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퇴사한 이후 지금까지 상담센터를 드나들 정도로 심리 손상을 호소하고 있다. 센터 측에서 법률지원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성추행 피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피해와 관련해 전 씨는 “성추행은 퇴사 직전까지 발생했다”며 “가해자와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내가 회사를 나가야만 피해를 멈출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망설인 이유에 대해서 그는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면 남편과 아이들까지 알게 될 텐데 서로 상처받게 될까봐 무서웠다”면서 “이미 회사를 떠난 거니까 내가 받은 상처만 치유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2차 피해로 고통받는 중년여성 성범죄

40~50대 중년 여성 성범죄 2차 피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성범죄 피해자 연령을 집계한 결과, 20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8’에 따르면, 2016년 성폭력 범죄는 2만9357건으로, 2007년 1만4000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56.8건으로 하루에 80.4건, 시간당 3.4건 정도 발생한 것이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가 전체 중 34.0%로 가장 높았으며, 1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서 성범죄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언론은 주로 20대 성범죄 피해만 조명해 중년 여성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성범죄 피해를 당한 중년 여성들은 악성 댓글 등 2차 피해로 인해 피해 사실조차 알리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또, 방문 상담과 같은 성폭력지원센터에 대한 정보 접근성도 젊은 연령층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관계자들은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에게만 ‘성 보호권’이 있다고 보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 모 씨에게 상처를 입힌 악성 댓글도 중년 여성의 성(性)을 젊은 여성의 것과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센터 측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젊은 여성의 성(性)만 순결하고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식한다”며 “이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젊은 여성의 성을 침해한 것만 범죄, 피해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에 대한 편협하고 잘못된 인식이 깔렸으니까 성범죄 피해를 당한 중년 여성들이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관계자들은 가정이 있는 중년 여성의 경우 남편과 자녀와 같은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자체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 젊은 연령층에 비해 지원센터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남편과 자녀가 있는 중년 여성들을 비롯해 이혼이나 사별 등 결혼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성 규범 자체가 보수적”이라며 “때문에 남편 가족들이 사실을 아는 것을 꺼리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20~30대와 비교하면 지원센터를 찾는 방법이나 지원 절차를 알아보는 데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20대 성범죄 피해 사건만 조명하는 언론 보도에 중년여성 성범죄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다는 한계도 따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는 “우리 사회에서 20~30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뉴스가 집중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자극성, 선정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미디어 입장에서는 젋은 여성이 연루된 성범죄 사건을 다루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 측이 색안경을 낀 채 중년여성 피해자를 대하는 상황까지 더해져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이 씨의 경우도 수사 과정에서 느낀 수치심과 의심에 2차 피해를 입은 것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경찰에 의해 발생하는 성범죄 2차 피해는 전 연령대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현실적인 문제”라며 “이 가운데서도 중년여성이 수사과정에서 느끼는 수치심은 ‘나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장년층, 노인 성폭력 문제에서도 ‘노인이 어떻게 성폭력을 당하느냐’라는 질문부터 끊임없이 나이가 많으면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수사를 담당하는 사람마저도 피해자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다 보니까 신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년 여성 성범죄, 함께 분노하고 아파할 수 있어야

중년 여성 성범죄가 늘어가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40대 이상 성범죄는 2016년 기준 4300여 건으로 2012년 2900여 건과 비교했을 때 두 배에 약간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중년 여성이 체감하는 사회 전반에 대한 불안감도 높게 나타났다. 지난 1월 서울시가 발표한 '2018년 서울시 성(性)인지 통계 :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의 안전’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조사에 참여한 여성 50.3%가 우리 사회를 ‘불안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령·성별로 살펴보면 40대는 여성 46.4%, 남성 38%, 50대는 여성, 남성이 각각 48%, 39%였다. 40~50대 여성의 절반가량이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에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센터에서 피해 지원을 요청했다가 취소하는 인원과 피해사실을 미처 알리지 못한 인원까지 합산하면 더 많을 것”이라며 “중년층의 피해를 공감하고 심각성을 인지한다면 피해 사실을 알리려는 움직임도 일어날 것”이라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년여성의 성범죄 피해도 같은 크기의 상처와 아픔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공감하고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일차적으로 중년층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해자 마저도 사실을 밝혀야 하는지 헷갈릴 수 있다”며 “중년층 같은 경우는 오랜 기간 성에 대해 보수적인 환경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젊은 연령대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피해만큼 관심을 더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심을 갖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피해사실을 알리고 조속한 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는 “무분별하게 발생하는 성범죄 2차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연령대 별로 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면 사회 분위기가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성폭력 문제가 특정 연령층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환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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