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홍콩 주민들의 자유주의 열망
[송장길 칼럼] 홍콩 주민들의 자유주의 열망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6.17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공원 인근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지난 12일 시위 때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했다. 홍콩 언론은 이날 시위 참여 인원이 1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했다. / 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공원 인근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지난 12일 시위 때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했다. 홍콩 언론은 이날 시위 참여 인원이 1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했다. / 연합뉴스

지구촌을 들여다 보면 지금 홍콩지역에서 태풍의 눈 하나가 생성돼 꿈틀거리고 있다. 그 태풍이 큰 새력으로 발전할지, 기압골에 묻혀 소멸해 버릴지 아직 예단키가 어렵다. 740만여 명의 주민 중 100~140만여 명이 잇따라 거리로 쏟아져나온 매머드급 저항이어서 그 여파가 간단치 않다. 시위는 친중국정부 측의 범죄인 인도법안 제정 시도에 반대해서 일어났지만, 시위의 배경에는 중국정부의 간섭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뿌리 깊은 반발과 불안감이 깔려 있어서 더 복잡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 회견을 열고 고집스럽게 추진했던 문제의 송환법안 처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혀 주민들과의 물리적 충돌은 일단 피했다. 17일(월)에 예정됐던 시위도 철회됐다. 홍콩에 인접한 광동성 선전으로 급히 내려온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지시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람 장관은 법안의 철폐가 아니고 중단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주민들은 폐기 처분과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어서 갈등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으며, 16일도 홍콩섬 코스웨이 베이 등에서는 시위 중 자살한 주민을 추도해 검은 상복을 입은 140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의 ‘검은 시위’를 계속했다.

시위의 발단은 타이완에서 홍콩 출신 천둥지가 역시 홍콩 출신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주한 사건으로 촉발됐다. 살인범은 홍콩에서 체포됐지만, 홍콩과 타이완은 범인인도협정이 없어서 타이완으로 범인을 인계 할 수 없자 홍콩 당국은 이참에 해외로 범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이른바 ‘송환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서면서 불씨가 됐다.

홍콩 주민들은 그 법안이 중국정부에 비협조적인 홍콩인들을 본토로 넘기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면서 반발이 폭발했다. 실제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을 낸 천중서국 출판인 야오원텐은 선전에서 체포돼 징역을 살고 있다. ‘시진핑의 6 여인들’이라는 중국대륙에서 금지된 서적의 출판을 기획한 서점 ‘통로완’의 주주 5명도 실종됐었다. 그중 한 명은 아직도 행방불명이어서 이번 사태를 폭발시킨 휘발류가 되었다. 타이완 당국이 살인범 천둥지의 송환이 필요없다고 해도 법안을 철회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주민들의 거센 저항이 불붙은 저변에 ‘송환법’ 제정 이상의 우려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장래에 대한 깊은 불안감을 갖고 있어서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화약고였던 것이다. 그 불안 때문에 상당한 주민들의 엑소더스가 미국과 카나다, 싱가포르 등지로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아편전쟁으로 99년 간 조차된 홍콩을 중국에 되돌려 주는 1997년 영국과 중국의 협정은 50년 동안 1국 2체제를 보장하기로 명시돼 있다. 영국의 통치에서 중국에 귀환되더라도 홍콩에는 국제무역의 허브로서 시장자본주의가 유지되도록 하고, 홍콩인들에 의한 자치를  허용하기로 분명히 했다. 그 기간이 27년 뒤인 2047년에 끝나므로 주민들의 걱정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03년의 보안법 제정 파동과 2017년의 ‘우산혁명’을 부른 행정장관 선출문제 갈등에서 중국정부의 간섭에 대한 주민들의 알러지 반응은 폭발한 바 있다. ‘홍콩인에 의한 홍콩의 통치’라는 협정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홍콩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홍콩 기업 뿐 아니라 다국적 기업, 중소 자영업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구가하며 번영을 계속해 왔다. 2018년에는 GDP 3천 5백 억 불에 4만 8천 달러의 GNI를 기록하며 GNI가 만 달러 이하 수준인 중국 본토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자유주의 체제가 기업의 말단까지 공산당원의 통제를 받는 중국경제와 화학적으로 통합되려면 상당한 불협화음과 거부반응이 불가피할 것이다.

2047년 후에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귀속되기에 앞서 홍콩의 경제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도 계속 나오고 있다. 가장 예민한 부분은 낮은 세율과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찾아 모여든 다국적 기업의 자본유출을 예방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번 검은 시위로 홍샹지수는 급전직하를 면치 못했으며, 홍콩 당국이 소환법안을 고집한다면 홍콩경제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당국은 홍콩에 대한 통제를 서서히 강화해서 국가경영의 일부로 편입시킬 의지가 강하겠지만, 홍콩 주민들의 거친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이번 사태가 여실히 보여줬다. 산 너머 산 같은 중국당국과 홍콩주민 간 갈등의 연속이 불을 보듯 뻔하다. 도시형 상업자본주의와 수정된 사회주의가 부딪치는 또다른 형태의 체제갈등이 태풍의 눈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홍콩은 중국의 개방과 성장드라이브의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등샤오핑이 개방정책을 펴면서 가장 먼저 홍콩의 인근 선전에 경제특별구역을 지정했다. 유명한 흑묘백묘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개방정책의 포문을 연 곳도 선전이었다. 홍콩의 자본과 기술, 노하우를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선전이 중국경제를 견인하고, IT 산업의 메카가 된 배경에는 홍콩이라는 하나의 큰 젓줄이 있었다. 그런 홍콩이 시진핑 주석의 팽창주의와 1인 지도체제 강화에 상처를 주고 있다. 홍콩의 검은 시위로 가장 손해를 본 장본인은 시진핑 주석이라는 평도 나왔다.

홍콩 주민들의 시민파워는 홍콩의 장래를 결정짓는 하나의 변수로 떠오른 듯하다. 27년의 시간이 남아 있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는 예단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현재와 같은 수정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면 홍콩의 행정관리와 경제체제를 본토에 그대로 흡수하기는 무리일 것으로 보인다. 권력으로 홍콩을 완전히 통제하는 방법은 홍콩주민들의 자유주의에 길들여진 성향으로 보아 급류를 거스르는 일처럼 힘든 역사가 될 터이고, 많은 희생도 부를 수 있다. 현재처럼 주권은 중국에 두더라도 자치제와 자유경제 시스템을 상당히 인정하는 타협 가능성도 전망된다.

어떻든 홍콩의 장래는 중국의 정치판도와 위상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시진핑 체제의 향배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포스트 시진핑의 체제적 성향과 중국식 사회주의의 변형과도 함수관계가 있을 것이다. 중국 내에서 자본주의적 요인들이 점차 깊이 착지한다면 체제의 변화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 주민들을 이해한다”면서 관심을 표시한 데에도 그런 체제에 대한 민감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거대한 국가 중국의 고민과 몸부림이 지구촌의 관심을 모우고 있고, 그 파고에 인접해 있는 한국에서도 신경이 곤두세워진다.

1839년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국의 통치에 들어갔을 당시 7천 5백여 명의 주민들이 흩어져 살던 어촌, 천 백 평방 킬로미터의 피폐했던 도서가 아시아의 진주로 번창해 중국은 물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