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간디가 새삼 존경스러운 이유 
[송장길 칼럼] 간디가 새삼 존경스러운 이유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6.1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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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 백양누리의 마하트마 간디 흉상 / 연합뉴스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의 마하트마 간디 흉상 / 연합뉴스

마하트마 간디는 아힘사(불살생, 무상해)와 사티아그라하(진리의 추구)라는 두 개의 사상적 무기로 인도를 이끌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비폭력저항운동을 펴 거대한 인도를 하나로 묶었고, 영국이라는 당시 최강의 제국주의와 싸워 독립을 쟁취했다. 인도는 물론, 세계의 존경을 받았으며, 마틴 루터 킹과 넬슨 만델라, 틱낫한, 밥 딜런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지식층에 정신적인 영향을 미쳤다.

간디는 11차례의 장기 옥중단식을 결행한 바 있고, 수 없는 투옥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불가촉천민도 함께하는 공동체, 아슈람을 근거지로 삼아 물레를 저으며 납세거부와 취업거부, 상품불매 운동 등을 지휘했다. 영국정부와 협상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굴복 아닌 투쟁을 이어갔으며, 소금세 인상을 반대하며 6만여 명의 장사진을 이끌고 23일 동안 360km를 행진하는 길고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간디는 “폭력으로 얻은 승리는 일시적이어서 패배와 같다”고 외쳐댔다.

간디가 일구었던 저항의 생애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아힘사와 사티아그라하로 빚어낸 비폭력저항운동은 독립정신 이상의 깊음과 용기를 세계에 남겼다. 자신의 종교 힌두교와 기독교, 톨스토이즘, 싸르트르, 소로우 등의 정신적 영감으로 형성된 고귀한 철학과 신념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그 이념을 실천하는 저항도 목숨을 건 자기희생이 낳은 강고함 그 자체였다. 톨스토이를 통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예수의 설파를 읽고 비폭력을 확인했고,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크리슈나 어록에서 “행위의 결과를 보지 말고 오직 의무를 생각하라”는 실천의 원칙을 배웠다.

간디의 리더십은 유창한 언변이나 그럴듯한 외모가 아니라 오직 진실을 향한 순수한 열망에서 우러나온 힘이었다. 영국의 식민주의와 맞서면서도 국민의 희생을 걱정했고, 민중이 흥분해서 폭력을 휘두를까 노심초사했다. 타고난 지도자라기보다 보통사람으로서 끊임없이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추구한 편이었다. 종교인보다 더 계율을 지켰고, 실천하기 힘든 비폭력, 비문명적 방식으로 진리를 구현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본명이 모한다스인 간디는 시인 타골에 의해 성웅의 뜻인 마하트마라는 칭호를 얻었다. 간디는 “약한 자일수록 상대를 용서하지 못한다. 용서는 강함의 증거이다”라면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고 부르짖었다. 또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폭력이 선을 행한 듯 보일 때 그것은 잠깐이고, 오히려 행하는 악은 지속된다”고 비판했다. 갖은 것은 물레와 두 장의 담요, 허리 감개 한 장, 힌두교 경전, 몇 권의 책이 전부인 무소유주의자 간디는 연설과 칼럼, 시위의 앞장 등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채식주의자로서 키가 작고(164cm), 깡마른 체구의 노인, 그런 삶 자체가 이미 쩌렁쩌렁한 메시지였다.

오늘 인도의 국부 간디를 회상하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추락하고 있고, 민생은 고통스럽다. 북핵은 여전히 으스스하고, 주변정세는 한반도 상공 위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외교는 구한말 고종시대처럼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반세기 동안 국운을 일으킨 욱일승천과 번영의 기세는 꺾이고, 분명히 나라가 국운의 변곡점에 서 있는 형국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인들은 진영이기주의와 선거에만 골몰하고 있다. 암흑의 시대에 잠겨 있던 방대한 인도를 깨우고, 독립과 희망의 광채를 들어올린 간디의 지도력이 새삼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청와대는 뒤늦게 경제 악화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윤종원 경제수석은 7일 처음으로 그동안 견지했던 “경제 펀더멘탈이 나쁘지 않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좋은 결과가 곧 나올 것이다”라던 정부의 입장을 바꿔 경기하방을 전망한 것이다. 서민경제의 신음을 이제야 인정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초 예상했던 2.6%에서 2.4%로 낮춰진 올해 성장률이 노무라 증권의 예상치 1.8%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 정도로 낮아지면 한국경제는 IMF나 금융위기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당해 거의 발작을 일으키는 정도일 것이다.

윤 수석은 그 원인으로 대외경제환경의 악화를 들고 추경예산안 처리를 야당에 압박했다. 경기 둔화는 외부의 여건 탓도 있겠지만 소주성 정책에 따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대기업 압박, 친노조 스탠스, 탈원전, 부동산 시장 위축 등 일련의 정책적 실축의 결과라는 것이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여권에서는 추경예산안의 통과를 경제활성화의 보검처럼 내세우지만, 전문가들은 선심성을 차치하고라도 6조 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겨우 0.1%의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분석한다. 그나마 추경을 확보하려면 한국당이 등원하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하는데, 패스트 트랙을 견지하면서 백기를 들라고 강압만을 이어가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에 끼어 있는 화웨이의 딜레마에도 정부는 민간기업들에게 방책을 떠넘긴다. 외교적 난제에서 빠지려는 직무유기라고 질책을 받고 있다. 경제의 판세가 바뀔 중요한 싯점에 정부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현명함이나 단호함도 기대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간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비스마르크 같은 현란한 외교술은 아니라도, 적어도 이만한 나라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게 하는 묘책을 고뇌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이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화웨이 문제에서 미국 편을 들면 보복을 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보도는 한국국민들을 분노케 하고도 넘친다. 사드의 상처까지 후벼파는 횡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정치가 후진적이고, 저속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이 된 지 오래다. 그 불신의 저변에 정치적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개개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공동체의 이해는 헌신짝처럼 등한시하고, 정당은 집단이기와 진영논리를 위해 국가와 사회를 최대한 이용한다. 집권세력은 국가의 운영을 세력확대를 위해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휘두르고 있고, 국가조직을 사유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 결과 나라가 얼마나 불공평해지고, 피폐하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오늘날 한국정치의 현주소이며, 부식하는 악취이다. 정치인들의 어깨에 한국의 미래를 걸 수 있겠는가.

제1야당 한국당은 황교안 체재의 착지에는 일단 성공한 듯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설하는 대역사에 큰 역할을 하는 모습에는 미진하다. 겨우 여권을 비판하거나 공격을 받아치는 정도로는 제대로 구실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패스트 트랙을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정국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하고, 대통령이 당연히 야당대표를 만나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본새가 난다. 여론조사 결과도 신뢰도의 문제를 불식하고 더 끌어올려야 하고, 부정선거가 걱정되면 일반적인 우려 차원을 넘어서 근본적인 안전판을 설정하도록 정치계를 움직여야 제1야당이다.

간디의 지도력은 무소유와 자기희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놓은 과실이다. 억지로 만들려고 애써 작위적이지 않고, 국민들이 스스로 따른 것이다.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고, 측근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세력과 진용을 아예 형성하지 않았다. 재산도 만들지 않았고, 물레와 모포가 주요 재산 목록이었다. 만일 그가 정치적 욕심이나 재산에 대한 탐욕을 부렸다면 그는 마하트마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간디는 스스로 고난을 감수했다. 남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의 인권운동을 벌였을 때부터 무시무시한 감옥을 들락거렸으며, 영국의 식민지 정책과 싸울 때도 주저없이 구속됐다. 수없는 단식투쟁도 목숨을 건 용기였다. 그런 자기희생이 대륙을 움직이는 힘을 생성한 것이다.

물론 간디의 상황과 오늘의 한국은 판연히 다르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보는 지도자의 경륜과 진리를 품는 자세, 자신과 진영을 관리하는 겸손은 다를 바가 없다. 지도자의 비전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다는 원리도 동일한 것이다.

“모든 사람을 하나로 알아라, 악을 선으로 기꺼이 갚아라”라는 고향 구자리트의 교훈시를 품고 산 간디, 잘못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서 진실에 다가가고자 고뇌를 거듭한 간디의 체취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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