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여성운동가'·영원한 'DJ의 동지' 이희호 여사 별세
1세대 '여성운동가'·영원한 'DJ의 동지' 이희호 여사 별세
  • 박철중
  • 승인 2019.06.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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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향년 97세를 일기로 10일 별세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 여사가 이날 "오후 11시 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여사는 노환으로 입·퇴원 치료를 받아오다가 상태가 악화되자 지난 3월부터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 여사는 의사였던 아버지 이용기 씨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이순이 씨 사이에 6남 2녀 중 넷째로 1922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고를 나와 이화여전을 다녔으나 1944년 일제의 교육긴급조치에 따라 이화여전이 문을 닫으면서 졸업은 하지 못했다. 해방 후인 1946년 서울대에 입학한 이 여사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렘버즈 대학을 거쳐 스칼릿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세대 신여성으로 당시 교육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이 여사는 일찍이 1952년 '여성 문제 연구원' 발기와 간사로 참여했고, 대한 YWCA 연합회 총무를 역임했다. 이후 한국 여성단체 협의회 이사, 여성 문제 연구회장 등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은 이 여사의 인생행로 전체에도 크나큰 변화를 몰고 왔다.

1962년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이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남편의 망명, 납치, 구금, 연금 등 군사정권 내 이어졌던 감시와 탄압의 가시밭길을 감내해야 했고, 1980년 내란음모 사건 때에는 국제적 구명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미 부부의 연을 넘어 정치적 동지로 김 전 대통령과 고난을 함께한 이 여사는 남편이 대선에 출마할때면 여성과 인권 운동가로서 찬조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1997년 네번의 도전 끝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을 때 한 지인은 "김대중 정권 지분의 40%는 이 여사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사회 운동가였던 이 여사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행정부에 변화가 일기도 했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모태인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장관들의 임명장 수여식때는 부부가 동반해서 임명장을 받는 관행도 새롭게 생겨났다.

'국민의 정부' 당시 외환위기로 결식아동이 많아지자 영부인인 이 여사는 직접 아이들을 돕기 위한 '사랑의 친구들'을 설립했고, 이후 여성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인 '한국여성재단' 설립을 위해 명예추진위원장을 맡으며 직간접적으로 공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가족의 뜻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질 이 여사의 장례는 오는 14일 발인이며, 빈소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 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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