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 나는 몇 살인가
[김영회 칼럼] 나는 몇 살인가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6.10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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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깊은 장유유서문화,

제각기 다른 나이 계산법.

글로벌 시대에 맞게

합리적 나이로 통일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연합뉴스

1300여 년 전 중국 당(唐)나라 때 이백(李白)과 함께 쌍벽을 이룬 대 시인 두보(杜甫・712~770)는 일생을 몹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벼슬에 뜻을 갖고 24세에 치른 진사 시험에서 낙방한 뒤 기회를 얻지 못하고 유람으로 이곳 저 곳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나이 40이 넘어 겨우 좌습유(左拾遺)라는 낮은 자리를 얻은 두보는 그에 만족하지 못했고 거기다가 술까지 몹시 좋아 했으니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친구라도 찾아오면 얼른 주전자를 들고 주막으로 달려간 부인이 머리를 잘라주고 술을 받아와 허둥지둥 손님을 대접했다는 일화는 두보의 삶이 얼마나 곤궁했는가를 잘 말해주고도 남습니다.

“자고로 사람이 나이 칠십을 살기 어렵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유명한 시구(詩句)는 두보가 좌습유를 맡고 있던 47세 때 쓴 ‘곡강(曲江)’이란 시의 일부입니다.

― 일과를 마치면 전당포에 봄옷을 저당 잡혀(朝會日日典春衣)

날마다 강가에서 흠뻑 취해 돌아온다(每日江頭盡醉歸)

술 빚은 여기 저기 있기 마련이고(酒債尋常行處有)

사람이 칠십년을 사는 것은 드믄 일이라네(人生七十古來稀) ―

곡강은 장안(長安) 남동쪽을 흐르는 아름다운 강인데 그로부터 사람들은 흔히 나이 70을 가리킬 때 ‘고래희’를 줄여 ‘고희’라 칭해 오고 있습니다. 두보가 이 시를 쓴 것은 47세 때로 그는 자신의 말대로 70을 살지 못하고 5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는 사람의 나이를 칭할 때 15세는 학문에 뜻을 둔다하여 지학(志學)이라 하였고, 20세를 젊은 나이라 하여 약관(弱冠), 30세를 뜻을 세운다 하여 이립(而立), 40세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여 불혹(不惑), 50세를 하늘의 뜻을 안다하여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세상이치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여 이순(耳順), 70세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하였습니다. 이는 70이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70년 풍상을 겪으면 세상만사에 통달해 인격이 원숙해 진다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나이 계산법이 유달리 복잡합니다. 한국나이, 음력나이, 양력나이, 만(滿)나이, 연(年)나이, 호적나이, 간지(干支)식 나이…등등 사람마다 몇 개씩의 나이와 생일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아기를 출산하면 0세로부터 나이를 시작해 1년이 지나 한 돌을 맞아야 비로소 한 살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있었던 40주 280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오래 된 관념 때문입니다. 거기다 새해가 되면 온 국민이 똑같이 한 살씩을 더합니다. 소위 나이를 먹는 것입니다.

당연히 문제가 있습니다. 12월 31일 아기가 태어날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 한 살, 이튿날 새해가 돼 또 한 살, 출생한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는 억지, 불합리성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아기는 채 한 살도 안 된 기간인데 말입니다.

그럴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지금 70대가 된 이들이 태어 난 1940~50년대만 해도 아이를 출산하면 2, 3년을 기다렸다가 출생 신고를 하는 게 상례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유아(嬰幼兒) 사망률이 높아 몇 년을 기다려 보고 무사히 생존을 하면 출생 신고를 하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때문에 지금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제 나이, 제 생일 갖고 있는 이들이 드뭅니다. 한국적인 문화 현상, 즉 음력 생일, 양력 생일이 있고 전통 나이, 법적 나이, 만 나이가 따로 있습니다.

고위공직자나 유명 인사들의 임명 때 신문 마다 나이가 다른 것은 바로 나이 계산법이 제 각각인데서 오는 모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법적인 나이 계산법이 있긴 합니다. 첫 번째로 ‘만 나이’ 입니다. 정부는 1962년 ‘만 나이’를 법적 표준으로 지정했습니다. 따라서 민법과 형법의 적용, 투표권 유무를 나누는 기준, 그리고 관공서나 병원 등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합니다.

두 번째로 또 다른 법적 나이인 ‘연 나이’가 있습니다. ‘연 나이’는 2001년에 도입된 개념으로 생일과 상관없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년도를 뺀 만큼을 나이로 세는 방식인데, 이 방식으로 계산한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나이입니다. '연 나이'는 병역법, 청소년보호법에 적용이 되는 나이이기 때문에 ‘연 나이’로 19세가 되지 않은 청소년은 마트나 가게에서 술·담배 등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이에 집착하는 국민도 흔치 않습니다. 유교사상으로 완전히 세뇌가 된 조선조 500년 '나이'가 곧 ‘권력’이던 뿌리 깊은 장유유서(長幼有序)사상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군에 입대하는 신병들이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군번 숫자를 가지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문화까지 있었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자 이제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국가의 재앙이라도 된 듯 젊은 세대의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서글픈 하소연이 항변의 노래가 되어 유행하고 있을까.

목하(目下) 세계는 한 지붕이나 다름없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지금 국회에는 서양식의 ‘만 나이’를 공통으로 쓰자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습니다. 숨 넘어 갈 일은 아니지만 이해관계가 갈리는 법안도 아니고 한지라 여야는 그만 싸우고 그런 법안이라도 조속히 처리한다면 놀고먹는다, 소리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말세가 된 것일까. 앳된 30대 여성이 전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해 또 한 번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여기저기서 혀 차는 한숨 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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