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女·성] “여전히 꿈은 ‘좋은 책’ 만드는 것” 최연순 가디언출판사 편집본부장
[일·女·성] “여전히 꿈은 ‘좋은 책’ 만드는 것” 최연순 가디언출판사 편집본부장
  • 고윤(라이프라이터)
  • 승인 2019.06.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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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女·聲’은 ‘일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뜻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워킹우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오늘, 바로 당신에게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최연순 가디언출판사 편집본부장 / 최연순 제공
최연순 가디언출판사 편집본부장 / 최연순 제공

책을 사거나 읽지는 않는데 서점이나 도서관, 북카페는 좋다? 왠지 요즘 세태와 무관하지 않은 말일 것 같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는 경계해야 하지만. 여전히 북리뷰 블로그나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 책 소개하는 유튜브 등이 많기도 하고 인기도 있다. 그런가하면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거나 편집자나 편집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또한 끊이지 않고 나온다. 그만큼 책, 그리고 책 만드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책 만드는 여자’ 가디언출판사 최연순 편집본부장. ‘본부장이라는 직함을 출판사에서도 쓰네요’하니 요즘은 많이 일반화됐다고. 많은 이들에겐 ‘편집주간’이라는 직함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가디언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의 기획과 편집을 총괄하는 자리다. 본인이 직접 기획-편집-제작을 진행하는 책도 있다.

단행본 출판은, 처음 초고(첫 원고)가 취합된 뒤부터 책이 만들어져 나오기까지 두세 달이 꼬박 걸리는 짧지 않은 프로젝트다. 단계별로 꼼꼼하게 챙길 게 많은 지난한 작업이기도 하다.

“원고 넘기고 2주 만에 책이 뚝딱 나오는 줄 알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짧아야 두 달이거든요. 예전보다는 ‘저작’의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책을 만드는 프로세스 자체가 쉽게 단축되기 어려운 전문적이고 까다로운 작업이죠.”

독일 어학연수-프랑스 유학 후 ‘외서(外書)’ 기획으로 출판계 첫발

최연순 본부장의 학부 전공은 독어독문학이다. 자연스럽게 독일로 어학연수를 갔고 이후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다.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지낸 시간이 8년여. 이때 전공은 ‘지정학(地政學)’이다.

“프랑스나 영국엔 역사와 지리과목이 따로 있지 않아요. ‘역사지리’가 함께 있죠. 세계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게 익숙한 거죠. 워낙 지리도 좋아했고 이 전공 덕분에 그런 책들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 돌아와 출판계에 몸담은 지 15년이 지났다. 처음엔 여러 나라 언어가 가능한 덕분에 ‘외서 기획’으로 일을 시작했다. 번역해 소개할 만한 책들을 찾고 검토하고 에이전시를 통해 저작권 업무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해외 도서전에서의 수출입업무도 빼놓을 수 없다.

일에서의 완벽주의, 꼼꼼함, 치열함 덕에 능력을 빨리 인정받았고 몇 년 만에 대형출판사의 임프린트 편집주간으로 발탁됐다. 편집부서를 거치며 편집-제작업무를 완벽히 숙지하고 체득하기 전 초고속 승진(!)으로 주변에서 말들도 많았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땐데 거의 아이를 본적이 없을 정도로 야근에 철야에... 집에 잘 못 들어갈 정도였어요. 편집주간이면 편집을 총괄해야 하는데 제가 편집 쪽 경력이 약하다보니까 치열하게 일하고 배워가면서 했던 거 같아요.”

이때 냈던 책들이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로 대표되는 명상-힐링서적들이다. 당시로서는 편집 분야 흔치 않은 ‘외국어능력자’였기에 해외 번역서 기획, 저작권 업무 등도 병행해나갔다. 이곳에서 편집주간으로 재직한 5년간은 정말 독하게 일하며 많이 배웠던 시기였다.

초고속 ‘편집주간’ 발탁 후 ‘치열한 5년’

이후 김영사, 사회평론에서 편집이사로 주간 역할을 하며 홍보 등 대외업무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다. 미디어 관리, 기자간담회, 신간 출판기념회, 외국저자 초빙 간담회 등 행사도 많이 했다. 전문 분야라 할 수 있는 저작권 관리 업무는 계속 담당했고 해외 도서전도 여전히 다녔다. 그렇게 또 6년 가까이 일에 몰두한 후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 아이가 해외 대학 진학을 위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기도 했고 휴식도 간절했다. 휴식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4개월 만에 다시 지금의 직장인 가디언출판사에 새둥지를 틀었다.

“저의 몹쓸(웃음)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해서 해외 저작권 업무 전문 에이전시를 할까 고민도 했어요. 에이전시 등록은 해놨고 저작권 업무도 놓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이건 혼자 할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근데 전 콘텐츠를 다루고 편집을 하고 책 만드는 일 자체를 좋아하고 또 저한테도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또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네요. 하하.”

지금의 출판 환경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죽을 지경’이라는 그의 표현이 엄살이 아니란 게 절절히 느껴질 정도로 ‘너무 힘든’ 상황이다.

“책을 내는 데에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일반 직장처럼 하기 힘든 면이 많아요. 시간이 됐다고 딱 일을 끝내는 것과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붙잡고 만드는 것, 그 결과물들은 확실히 다르거든요. 출판 환경과 상황이 정말 안좋아요. 지금 책값, 지금 시장으로는 버티기 힘들거든요. 제작비 많이 드는 것에 비해 책값은 싸고... 그럼 책이라도 많이 팔려야 하는데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지난 1분기엔 한 달에 2권씩 미친 듯이 책을 냈어요. 양쪽 눈에 핏줄이 다 터지고 몸이 정말 안 좋아지더라고요.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어요.”

“많은 고민의 시간-사유의 깊이 담은 좋은 책 만들고파”

앞서 언급했듯이 책을 만든다는 건 간단치 않은 전문적 작업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은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또 책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최연순 본부장은 지적한다. “정말 쉽지 않아요. 근데 편집자를 전문직으로 인식 못하시더라고요.”

최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자기개발서 같은 실용서보다 인문, 사회과학 등의 다소 무거운 책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정학’을 공부한 영향으로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 파스칼 보니파스의 ‘지정학: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같은 번역서를 직접 기획해 내기도 했다.

“전 무거운 책들이 오래간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거든요. 편집자로서의 소망이라면 역시 좋은 책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좋은 책은 어떤 걸까요? 사유의 깊이를 닮은 책,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그리고 많은 고민의 흔적과 그 결과가 보이는 책들이라고 생각해요.”

끝으로 아픈 자성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막상 서점에 가면 책은 많은데 정작 사고 싶은 책은 별로 없는 경우가 있어요. 출판사들의 책임도 커요. 독자들은 좋은 책을 아는데, 출판사들은 부실한 콘텐츠로 요행을 바라며 제목 장사를 하려는 경우도 있거든요.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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