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축구장에서 빛난 절제의 품격
[송장길 칼럼] 축구장에서 빛난 절제의 품격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6.04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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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선수 / 연합뉴스
손흥민 선수 / 연합뉴스

2일 새벽 4시 마드리드에서 열린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UCL) 결승전은 축구 팬들에게는 열광과 흥분의 대회전이었다. 그만큼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는 경기이기도 했다. 개인기가 현란한 남미축구와는 좀 다르면서도 속도감과 패스, 팀웤, 날카로운 공격과 정치한 수비 등은 90분 동안 내내 눈을 부시게 했고, 가슴을 졸이게 했다. 리버플이 2 : 0으로 토트넘을 이기고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두 팀이 모두 자웅을 겨루는데 손색이 없었다.

손흥민이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을 내심 응원했지만, 어느 쪽이라고 가리기 전에 뛰어난 기량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편이든 잘한 건 잘한 것이지 않은가. 녹화된 지난 경기를 볼 때와는 다르게 숨을 멈춰가며 관전했고,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전염돼 경기 속에 파뭍혔다. 조그마한 공을 하나 던져 놓고서 각 팀의 11명 씩이 발과 머리로 공을 뺐고, 공격해서 골망을 흔드는 놀이가 저렇게 고도로 발달했는가, 어찌 저렇게 혼을 뺐길 만큼 흥미를 돋울까 하는 감탄도 나왔다.

토트넘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몸도 풀기 전에 패널티킥을 허용해 한 점을 내주므로서 결정적인 불운을 맞았다. 사실 경기 시작 28초 만에 공이 시스코 선수의 팔뚝에 맞은 핸드볼은 경기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규칙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규칙위반이었다. 말하자면 과실범실(?) 하나로 내준 골은 경기 전체에 먹구름이 된 것이다. 더구나 결승전에 처음 오른 토트넘은 긴장감 마저 떨치지 못해 전반전 내내 비교적 경직된 경기를 이어갔으며, 결국 여러차례 준우승으로 노련해진 리버플에게 무릎을 꿇는 패전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토트넘은 후반전에 들어서 동점골을 넣으려고 집중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6번의 유효 슈팅을 날렸는데, 그중에 3번이 손흥민의 발끝에서 나왔다. 손흥민의 역할과 날셈은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후반의 조급함과 힘이 빠진 공격은 리버플의 감독 클로프의 톰니처럼 물려 돌아가는 압박축구의 벽을 뚫지 못했다. 심지어 골키퍼가 쳐낸 슈팅을 다시 슈팅한 연이은 문전 공격(더블 슈팅)조차 988억원 짜리의 골키퍼 알리송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번번이 골키퍼에게 바치거나 위로 뜨는 허약한 슈팅만을 날린 것이다. 오히려 후반 42분에 지친 토트넘 수비의 헛점을 파고 든 리버풀의 하이에나, 오리기의 날카로운 쐐기골에 힘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드디어 레프리의 경기종료 휘슬이 선수들의 동작을 멈추게 하자 경기장내는 일순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환희가 덮치고, 좌절은 울었다. 리버플의 선수들과 임원들은 구장 안의 잔디밭 위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껴안아 춤추고, 스탠드의 리버플 팬들은 복받치는 기쁨에 소리소리 지르며 펄펄펄 뛰었다. 커다란 끓는 도가니에 다름 없었다. 그 와중에 패자의 쓰라림은 시선에서 멀어져 여기저기 가려져 숨어서 좌절을 삭이고 있었다.

구장에서 뿐 아니라 TV중계를 통해 시청하던 수 억명의 세계축구팬들도 비슷한 분위기에 휩싸였을 것이다. 영국 뿐 아니고 스페인, 다른 지역의 유럽과 남.북미주, 아시아, 아프리카의 축구팬들이 얼마나 많은가.

TV로 시청한 축구팬들에게 경기 자체와 함께 놀라워하고 부러워한 일은 경기 참가자들과 팬, 관람자들의 수준 높은 매너였을 것이다. 격조 높은 절제와 금도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경기에서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보이며 자기 기량만을 발휘하려고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이었고, 잔꾀를 부려 반칙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다른 경기에 비해 드물었다. 주어진 룰 아래에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지 않은가. 경기가 끝나 리버플 측이 환희에 취해 기쁨을 분출할 때도 토트넘 선수들과 임원진은 슬픔을 곱씹으며 나약함을 밖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절제했다. 손흥민 선수도 눈물은 감추고, 붉은 눈시울만 어쩌다가 들키곤 했다.

경기종료후 가장 먼저 TV 카메라에 잡힌 스냅 중 압권은 리버풀의 클로프 감독과 토트넘의 포세티노 감독의 가벼운 포옹과 인사였다. 의례적이긴 하지만 경기가 깔끔해서 더 돋보였다. 승자와 패자 간 승패의 깨끗한 인정과 경쟁심리의 정리였다. 경기도 청결했고, 마무리도 수준급이었다. 너 때문이라는 감정이 남아있으련만 그들은 자신들을 철저히 절제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실력과 운에 대한 아쉬움은 있겠지만 경쟁 상대를 탓하거나 미워하는 표정은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다.

관중들도 건전하고 상식이 넘치는 격조있는 스포츠 애호가들이었다. 우리 편의 실력에 환호했지, 상대를 탓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야유도 없었고, 종이 한 장, 물컵 한 개 던지지 않았다. 1969년 혼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의 축구전쟁이나 축구장에서의 빈번한 난투극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번 스페인 완다 메트로폴리타노 구장에서 보여진 축구의 건전한 금도는 먼저 상대를 꺾기보다 자기들의 실력으로 경쟁에서 이기려는 진정한 경쟁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피나게 연습하고 준비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만을 기울였다. 반칙을 범하거나, 잔꾀를 벌이거나, 상대 편을 심하게 타격하는 현상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금도는 철저한 준칙에서도 나타났다. 반칙이 다발적이고, 심판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는 경기와 좋은 비교가 되었다. 금도는 또한 수준 높은 시민정신에 뿌리를 밖고 있었다. 남을 비방하거나, 모욕하거나, 조롱하지 않았다. 탓하거나 원망도 않는듯 했다. 선진급 시민의식과 행위규범이다.

훌륭한 운동경기를 보면서 끊임없이 떠오른 것은 한국정치의 저급한 현실이었다. 세계 최강의 기술과 체력, 또 그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정교하고도 빼어난 작전의 구사는 한국의 오늘에 꼭 필요한 재원과 기술력, 그리고 정치력에 해당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러한 국가적인 능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지도층의 노력도 안 보이고, 국민적인 인식도 부족하다. 국력과 국격의 후퇴가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절제도 않고, 금도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계는 화급하지도 않은 사안으로 대립해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고, 경쟁상대를 헐뜯고 비방만 한다. 시시한 일을 놓고 시비하고 언쟁한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와 경제의 판도는 격변하는데 4대국을 비롯한 대외외교는 무력하거나 미숙하기가 이를 데 없다. 노조와 이익단체들의 강경노선에 따른 내부의 갈등지수는 치솟는데 대화의 기술은 규격상자에 갇혀있다. 국가가 이만큼이라도 이룩해놓은 자긍심을 유지, 발전시킬 골든 타임은 째깍거리며 빠르게 흐르고 있다. 누가 이 위기를 바로잡을 것인가?

먼저 국회를 열어야 한다. 거기에서 싸우지 말고 백가쟁명, 모든 가능성을 모아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게 하라. 일단 토론을 하면 무엇이라도 얻을 것이다. 어느 편이 옳은 지, 어떤 것이 유익한지 국민들이 판단하게 하라. 언론이 노조에 휘둘리지 말고 순리대로 정직하게 알리게 하고 휘드백을 채취하라. 그러기 위해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 시국수습안을 숙의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소리이고 요구이다.

스스로 연마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 결과에 환호해야 된다. 국민들의 평가에는 법에 따라 순응하면 된다. 엄중한 국사를 일개 운동경기 만도 못하게 운영하면 큰 일이다.  절제와 금도가 좋은 해답을 들고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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