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과거에서 나와 미래로 나가야
[송장길 칼럼] 과거에서 나와 미래로 나가야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5.28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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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가 없다”

서울 명동 거리 / 연합뉴스
서울 명동 거리 / 연합뉴스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미국 대통령이 누누히 강조한 명언이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도 “현재와 과거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과거에 머물거나 과거에 천착하면 발전하지 못하고 후퇴한다는 의미이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Elvin Toffler)는 “과거와 싸우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라. 미래가 과거를 정리해줄 것이다”라고 외쳤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으니 어서 과거에서 나와 미래로 향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미래를 설계하고, 기초를 다지고, 건축하기에 바쁜데 과거에 빠져있으면 낙오한다는 경고의 뜻도 된다.

학부형 자격으로 초청돼 미국 교육현장에 나가보면 가장 강조되는 교육방향으로 두 가지 가치가 뚜렷이 보인다. 창조(Creativity)와 도전(Challenge)이다. 초등학교(Elementary School) 교육부터 두드러지는 이 두 가지 개념은 모두 미래를 향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가를 일으킨 기본정신이다. 과거는 반성과 교훈으로 삼을 따름이다. 오늘의 미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회철학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온통 과거와의 싸움에 빠져있다. 아마도 이토록 과거에 몰두하는 사회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공자와 맹자, 주자 같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수 백년을 살아온 전통사회의 역사와 가치체계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현대사회를 꾸려나가는 오늘에게는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이다. 물론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상당한 여론을 업고 서슬이 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지만, 세상을 너무 어둡게하고, 나라가 전진하려는 기세에 족쇄가 된다면 국가와 사회의 불행이다.

지난 두 해 동안 TV뉴스를 켜거나 신문을 보면 거의 매일 과거를 수사하고 재판하는 기사로 가득했다. 전향적인 대안보다 고발에 매몰된 시민운동권과 과거정권의 비리 캐기에 혈안이 돼있는 현재정권의 정치적 공세가 어울어져 ‘사법공화국’이 돼버린 결과인 셈이다. 지난 정권의 부조리뿐 아니라 몇 십년이 지난 과거사까지 세세히 파헤쳐지고 있다. 거기에 독립운동과 친일 등 해묵은 이념도 부각돼 반도의 하늘을 검게 덮고 있어서 어떤 때는 언뜻 과거로 되돌아가 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이른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 4대강 사업, 세월호 참사, 광주 항쟁, 제주 4·3사건, 삼성의 경영권 승계, 한진 오너가족의 갑질, 김학의 수사, 장자연 자살  등등은 사회의 아픈 상흔이다. 이미 충분히 분노했고, 심판을 받았다. 사회적 돌팔매질과 법적용은 다툼의 여지가 많아 역사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다. 건강한 역사가 재단하는 대로 반성하고, 보존하면 된다. 이제 더 밝힐 일이 있으면 조용히, 그러나 명명백백히 다룰 수 있다. 이를 조금도 포용하려들지 않고 까발겨서 정치적 이득을 극대화하려고 하면 지겨워진다.

대한민국이 2년 남짓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주변의 국제적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가장 큰 파고를 몰고온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루비콘 강을 건넌 모양새다. 중화대국은 동서 문화전쟁까지 언급하며 저항하지만, 화웨이 압박에서 보듯 미국의 거센 공세에 직면해 정체를 걱정할 판국이다.

이런 태풍급 충돌과 그 여파에 대처할 한국의 위기관리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발빠르게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의 요구를 따라야겠지만, 중국의 보복도 두렵다. 정상적인 방법을 뛰어넘어야 위기는 타개된다. 사드와 같은 보복은 당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화웨이의 5G를 중국의 보복없이 피해야 하는 딜렘마를 어떻게 풀 것인지, 중국이 뒤뚱거리므로 몰려오는 한국 수출의 곤궁은 어디서 활로를 찾을 것인지,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들의 부진을 이길 성장동력은 무엇일지, 한국의 미래는 태산준령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환대하는 아베 총리의 판세 읽기가 상대적으로 탁월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권이든 야권이든 국정에 참여하고 있는 지도층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비젼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국익에 유리하게 형세를 이끌어가면 더 탁월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그랬고, 레이건도 그랬다. 문제가 발생한 뒤에 허둥대거나, 문제의 심각성조차 느끼지 못하면 지도자가 아니라 나라의 걸림돌에 불과하다. 오늘 한국의 지도자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임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치유신의 씨를 뿌린 일본의 요시다 쇼인은 20대의 약관에 외지를 떠돌면서 세계정세와 일본의 국운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품었다. 쇼인은 20대 후반 그의 고향 하기에 돌아와 짧은 기간 쇼카손쥬쿠라는 학당을 열어 제자들에게 구미열강에 대항할 독립국을 세워 힘을 키우자고 역설했다. 그 비젼이 후학들을 통해 발전돼 오늘의 경제강국 일본의 기초가 됐다. 미래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중요한가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OECD는 올해 한국경제가 예상보다 0.2% 낮은 2.4%의 GDP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낮췄다. 불경기의 반영이다. 젊은 층과 외국 여행객들의 메카인 홍대 앞과 삼청동 북촌 등지의 폐업하거나 거의 폐업상태인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여연대는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 과정에서 제일제당과 삼성로직스의 재산평가과정의 비리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처리가 불을 보듯 뻔하며, 삼성의 타격도 심각할 것이다. 삼성일가의 몰락은 한국경제의 타격으로 이어져 나라의 사정에도 치명적일 것이다. 최태원 SK회장도 최근 IMF요원들과의 만남에서 한국경제의 심각성을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정치인들은 정쟁에 정신이 팔릴 게재가 아니다. 주변정세는 예민해지고, 경제상황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정부와 정당들은 모든 역량을 경제대책과 주변정세 대응에 올인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국회정상화는 여권이 야당을 압박만 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추경예산이 늦어져 경제가 위축되고, 그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몰아세우는 전략은 속 좁게 남탓하는 계략으로 보인다. 추경예산 이전에 경제는 나빠졌고, 야당을 장외로 내몬 측은 패스트 트랙을 강행한 여권이기 때문이다.

정국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여권이 먼저 유연해져야 한다. 여야가 서로 기싸움만 계속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야 실마리가 풀린다. 호감이 간다고 만나고, 얻을 게 없다고 안 만나는 식의 단순한 정치는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패스트 트랙에 태워진 법안도 여야의 대타협을 위해 다시 협상하도록 양보해야 정치가 복원된다. 정치의 파국은 국민들에 대한 책무를 회피하는 것이며, 국익보다 사욕과 당리를 앞세우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존 로버트 실리(John Robert Seeley)는 “역사란 과거의 정치이며, 정치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규정했다. 과거는 역사에 맡기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를 지으라는 말이다. 현재의 역사는 당연히 훌륭한 미래를 설계하고 건설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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