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욱의 인사만사25시] 사직(辭職)의 몸부림에서 남다른 길로
[박창욱의 인사만사25시] 사직(辭職)의 몸부림에서 남다른 길로
  • 박창욱(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
  • 승인 2019.05.2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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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회의감의 극복 -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

사직서를 제출했다.                                                      직장인으로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기준도 애매하고 제각기 다른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정의는 백인백색(百人百色)이다. 더군다가 100세 시대를 맞는 현대인들에게는 더 난제가 되어 버렸다. 즉,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일까? 저주일까?’ 막연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아 변화의 몸부림치는 것이 대개의 직장인이나 운신의 폭이 크지는 않다.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직장생활 23년, 개인활동 15년. 도합 38년에 6개의 직업을 넘나들며 ‘사람’중심의 일을 하다 보니 조금 깨달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 구축했던 작은 행동강령이 평생을 사는 기초가 되었다. 지금도 기업이나 학교의 강의장에서 혹은 내 딸래미들이나 주변에 이 말을 하면 대체적으로 공감이 되는 듯 해서 한 번 정리를 해 본다.

군복무 3년을 마치고 대우에 입사하여 인사(HR)업무를 한지 3년이 되는 시점에 급격한 회의가 찾아 왔다. 종합상사에서의 인사부는 너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란 생각이었다. 주변에서 동조도 있었다. 그래서 영업부서로 옮기겠다고 하니 안된다고 하여 결국 사직서(辭職書)를 제출했다. 직장에서 첫번째 사직서 제출이었다. 이후 3년 주기로 사직서병이 재발된 경험이 있다.

업무에 대한 심각한 회의…
일반적으로 3개월, 3년이 되면 고비가 되며 나태함이나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사업무 3년?’, ‘영업이 핵심인 종합상사?’, ‘인사업무 만으로 세월이 지나면 나는?’하는 생각으로 이어져 갔다.

돌이켜 보면 종합상사라는 곳이 제품으로 조직이 나눠지며 고객(판매처, 제조처)이 제각기 다른 회사로 특징이 뚜렷하였다. 그러니 표준화 무의미, 전원 사장의 개념이니 인사부의 역할이나 성과를 말하기가 거의 불가능이었다. 특히, 전 세계에 직원이 펼쳐져 있는 데다가 매년 1/4의 직원의 로테이션(Rotation). 그러다 보니 인사부는 전형적인 ‘대서소(代書所)’의 수준으로 단순 유지관리라도 잘 하면 최고라는 생각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영업부서로 이동을 시도하였다. 그러면 상사(上司)의 말. “내년에 보내 줄게. 자네가 없으면 인사부 어떻게 하라고” 그러고 나면 정작 당사자가 먼저 떠났다. 그리고, 또다른 꼬드김(감언이설)에 주저 앉았다. 
그래서, 15년 동안 사직서 쓰고 주저앉고를 3-4차례 한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변화의 몸부림을 새롭게 풀어 낸 경험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방향을 잡으며 “인사업무 분야에서 한국 최고가 되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우연히 군대에서 인사장교의 보직이 이어진 인사업무에 나만의 차별화된 입지를 만들어 나가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1. 매일 1회씩 현업부서의 사무실에 커피를 마시러 가자.(현장감)
현업부서에 직접 가서 팀장이나 과장급들과 가지는 커피타임은 사람과 부서의 업무이해에 큰 힘이 되었다. 평소에 보고듣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품이 없는 종합상사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자산이자 본질이었다. 공식적으로 들려오는 직원에 대한 이해를 넘어 서 직원간 친소(親疏)관계도 알게 되었다. 이후 사람과 관련한 평가, 인사이동, 조직개편 등을 할 때 납득성을 높이는 큰 계기가 되었다.

2. 매월 1회씩 인사업무 관련 공부하러 가자.(전문성)
인사업무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나 논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사무실로 배달되는 외부 전문기관의 교육강좌에 눈을 돌렸다. 우편물로, 팩스로 접수되는 인사관련 교육강좌를 찾아 매월 하나씩 수강을 하러 갔다. 적게는 2시간, 많게는 하루 과정이다. 회사 돈으로 다닌 것이다. 전문지식의 살이 붙어 나갔다. 우리 회사에 접목할 것도 찾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다른 매직(MAGIC)도 일어났다. 강의를 부탁받았다. 정확하게는 ‘대우사례소개’였다. 우리가 하는 것들이 다른 회사에서는 궁금하고 탐이 났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용돈도 챙기는 솔솔한 재미도 있었다.

3. 매월 1회씩 회사 외부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하자.(업계의 동향 정보 등)
마침, 때 맞춰서 다양한 회사들의 ‘인사, 홍보업무’ 담당자 커뮤니티를 누군가 만들었다며 나보고 가입하라고 했다. 월 1회 모임에 회비는 만원. 회원은 100여명으로 매월 20~30명이 모여 자기 회사의 업무이야기, 사회적 이슈 등을 주고 받으며 밤을 태웠다. 30여년이 지나며 지금도 20여명은 매월 만나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첫 직장인 대우를 떠나 회사를 옮길 때 이 모임이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노력들로 지루함과 무기력함을 이기고 나니 제법 여러가지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부서로 가려고 하니 이제는 ‘다른 데로 옮겨 봐야 손해다’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5년을 달리는 중에 한국의 IMF외환위기를 맞고 ‘대우그룹’은 해체 되었다. 또다른 사직(辭職)의 유혹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판단력의 3요소 : 현장감, 전문성, 정보력
굳이 장황하게 써 보았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활력을 주는 요인으로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다. 그 단서(端緖)로 이 세가지를 든다. 스스로 정해서 행동했던 행동지침이었다. 그 이후의 직장이나 조직생활에서 지금도 어김없이 적용하고 있다. 기업이나 대학생 대상의 ‘리더십, 결정, 변화’등을 강의할 때도 이 3요소를 기준으로 진행한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단어)이 있다면? “결정, 선택, 판단”
- 좋은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이 있다면? “현장감, 전문성, 정보력”

무슨 일을 하더라도 별 거리낌 없이, 자신감 있게 맞닥뜨리는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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