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 수리수리 마하수리
[김영회 칼럼] 수리수리 마하수리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5.20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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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하듯 내뱉는

악취 나는 막말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의 추한 얼굴

지친 국민들은 짜증이 납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 연합뉴스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1804~1881). 19세기 영국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명 수상이요, 빅토리아 여왕을 받들어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대정치가였습니다.

그는 두 차례나 수상을 역임했을 뿐 더러 뛰어난 풍자적 작가로서도 불후의 명작을 여러 편 남길 정도로 영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874년 보수당 당수로 그가 내각을 이끌 때 의회에 출석해 야당인 휘그당의원과 벌인 설전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옵니다.

어느 날 회의에서 한 야당의원이 디즈레일리에게 질문을 퍼붓다가 출신을 물고 늘어지며 느닷없이 고함을 지릅니다. “수상, 당신 수의사 맞지?” 순식간에 장내에 긴장이 감돌았고 의아한 의원들이 수군댑니다. “갑자기 수의사는 웬 수의사야?”

의원들의 시선이 수상의 입으로 쏠렸습니다. 디즈레일리는  대답했습니다. “맞소. 나 수의사요. 그런데 의원, 당신 어디 아픈데 없소?” 회의장은 순간 폭소로 뒤 덮였습니다. 디즈레일리는 흥분하지 않았고 침착했으며 여유작작하기까지 했습니다. 수상을 수의사로 깎아 내려 창피를 주려다가 되레 짐승이 되어버린 의원은 거꾸로 망신을 자초한 꼴이 되었고 코가 납작해졌습니다.

모욕적인 인신공격에 대한 디즈레일리의 반격은 재치의 극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 의회사의 백미(白眉)로 전해지는 이 에피소드는 정치인의 기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흥미롭게 보여 준 명 연기였습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유서 깊은 영국의회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토론 문화가 정착된 그곳에서 의원들은 이성을 잃지 않고 풍자와 해학, 유머 넘치는 익살로 의회를 이끌어 감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민주주의의 전통을 이어갑니다. 세계가 영국의 정치를 본보기로 삼고 우러러 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정치판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막말, 상소리, 악담들이 때를 만난 듯 넘쳐납니다. 그러잖아도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고 있습니다. 차마 듣기 민망한 저속한 언어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향해 “한센병환자(문둥병 자)”같다고도 하고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하자”고도 하는가 하면 광화문에 “단두대를 설치하자”는 섬뜩한 독설도 들립니다. “도둑놈”소리도 나오고 “달창(달빛창녀)”이라는 낯 뜨거운 말도 들립니다. 놀라운 건 막말 당사자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당대표, 원내대표, 대변인이라는 중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오늘처럼 이렇게 거친 폭언이 난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대로 해학도 있었고 여유도 있었습니다.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선거에 나설 후보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이때 출마희망자들이 띄워 올린 캐치 프레이즈는 ‘40대 기수론.’ 후보군에 오른 사람은 이철승 (1922), 김대중(1924), 김영삼(1927) 세 사람이었는데 이들이 모두 1920년대 생이었기에 똑같이 40대 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40대 기수론’은 파동이 컸습니다. 당 총재였던 유진산이 소식을 듣고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뭐? 40대 기수?” 그리고 내 뱉은 첫 마디는 “구상유취(口尙乳臭)”였습니다. 구상유치란 입에서 젖비린내 난다는 뜻이니 한 마디로 “까불고들 있네”라는 코 방귀였습니다.

1905년생으로 60대 중반이었던 유진산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정치경력에 따른 선후배 위계질서가 철저하던 때라서 유진산이 보기에 이철승이니, 김대중이니, 김영삼은 한낮 ‘애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 한사람 대놓고 항변도 못했습니다.

1990년 1월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합당을 해 민자당이 출범합니다. 노태우에 이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정책 혼선이 자주 생겨 청와대와 김종필 참모들 간에 갈등이 빚어져 두 사람 사이가 불편해 졌습니다. 그러자 청와대에 들어 간 김종필은 대뜸 “연작(燕雀)이 홍곡(鴻鵠)의 대지를 어찌 촌탁(忖度)하오리까”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고니나 기러기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자신을 작은 새에 비유해 납작 엎드렸던 김종필의 노회(老獪)한 몇 마디는 김영삼의 불편한 심기를 한 순간에 풀었던 것입니다. 신문 방송들은 앞을 다퉈 ‘연작, 홍곡…’기사를 실었고 이는 곧 김종필의 노련한 처신으로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군인이었지만 평소 독서를 즐겨하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김종필은 그때 마다 문장을 즐겨 쓰는 등 풍류를 아는 정객으로 문화계의 사랑을 받곤 했습니다.

강원도 철원출신으로 7선의원에 국회의장을 역임한 김재순 은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공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당시 일부 재산의 신고 누락이 밝혀져 결국 정계를 은퇴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오랜 정치 경력이 한 순간에 무너져 불명예를 안게 되자 김재순은 몹시 서운한 감정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향해 항변했습니다. “나를 토사구팽(兎死狗烹)시키다니…”하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나타냈습니다. 토사구팽이란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가마솥에 들어가 삶아진다”는 중국 한나라 고사에서 유래 된 말입니다.

기쁘면 기쁜 대로, 분하면 분한대로 자신의 심정을 에둘러 표현 할 수 있는 것도 정치적인 능력입니다. 그 옛날 정치인들은 오랜 수양을 통해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절제된 용어로 할 말은 하면서 나름의 정치력을 구사했던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말이 거친 젊은 사람들을 향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엄하게 혼을 내곤 했습니다.

험담을 즐기는 이들은 욕설을 통해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말이나 행동을 통해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는 듯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군중속의 낯 뜨거운 ‘자위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모르는 듯합니다.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국민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고 힘없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정치인들의 말이 꼭 아름답고 우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 오늘의 시궁창 언어들은 마구 내뱉어서는 안 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인간이 열 가지 죄를 짓는다면 그 중 아홉 가지는 입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千手經)의 맨 앞에 있는 구절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고 합니다. 입에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 내는 참된 말로 죄를 정화한다는 뜻입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 수리 사바하―. 종교를 떠나 정치인들이 읊어야 할 경구입니다. 이를 세 번 외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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