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女·성] “현장에서의 감동 때문에 계속하게 돼요”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
[일·女·성] “현장에서의 감동 때문에 계속하게 돼요”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
  • 고윤(라이프라이터)
  • 승인 2019.05.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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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女·聲’은 ‘일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뜻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워킹우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오늘, 바로 당신에게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이 케냐에서 현지인들과 미팅하는 모습 / 본인 제공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이 케냐에서 현지인들과 미팅하는 모습 / 본인 제공

한 달이 멀다하고 SNS에 출국 사진이 뜬다. 이번엔 또 어디... 유럽? 일본? 동남아? 어랏! 스리랑카, 미얀마, 케냐, 부르키나파소... 어째 낭만적인 해외여행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목적지가 전부 아시아, 아프리카의 저개발국, 아니 개발도상국들이다.

여행마니아나 작가, 여행사 직원도 아니면서 한 달이 멀다하고 캐리어를 꾸리고 국제선을 타는 여자, SNS 댓글에 여지없이 ‘부럽다’는 내용이 끊이지 않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이지영 과장.

한눈에도 서글서글 선한 인상에 사람 좋은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 과장의 일터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지구촌 곳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국제개발협력 NGO의 협의체다. 현재 회원사는 136개로, 우리에게 친근한 한국월드비전이나 굿네이버스, 한국해비타트, 홀트아동복지회,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등 규모가 큰 기관부터 활동가 몇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단체들까지 다양하다.

흔히 ‘해외원조’나 ‘국제구호’로 불리던 국제개발협력 활동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으로 유명해진 한비야의 또 다른 저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KOICA)’에서 오랜 기간 운영해오고 있는 해외봉사단은 역사도 깊고 선망(?)하던 이들도 많았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코이카 해외봉사단’

무던한 인상과 성격대로, 흔치않은 ‘일복’ 속에서도 자기만의 페이스로 서두르지 않고 무난한(?) 삶을 살아온 이지영 과장의 인생에 ‘파문’이 인 것은, 앞서 언급한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전 직장 선배가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먼저 떠나는 걸 봤어요. 7년 가까이 다닌 직장에서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쉬어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수 별로 1명씩 뽑는 ‘사회복지’ 직군에 지원하게 됐죠.”

뒤늦게 사회복지를 공부하신 아버지의 영향과 막연히 취업이 잘 되는 과라는 생각에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여성인력개발기관과 서울시 여성정책 연구/사업 출연기관에서 20대 빛나는 시절을 보냈다. 늘 많은 일 속에 파묻혔지만 특유의 여유와 속도를 잃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그때까지 큰 변화 없는 삶이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집을 떠난 적 없고 스스로 생각해도 무난한 삶을 살았는데, 서른 넘어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먼 타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아, 나도 감정의 기복이 큰 사람이었구나’를 처음 느꼈어요. 저개발국에서 혼자 산다는 건 항상 도전의 연속이었고 외로움도 처음 느껴봤어요. 하하.”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되고 소정의 교육을 거쳐 2012년 9월 스리랑카로 파견됐다. 여성인력개발 및 교육, 여성단체 지원사업 등을 했던 경력이 인정돼 중앙정부 여성국에서 2년간 근무했다. 보통 해외봉사단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 파견되기에 단기간 집중적으로 현지어를 배워 익숙하진 않지만 현장에선 주로 현지어+영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장의 경우, 스리랑카에서도 특급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여성국에서 일했기에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행운(?), 먼 시골지역이 아닌 수도에서 생활하는 기회를 얻었다. 코이카는 1인 파견이 원칙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힘든 외딴 지역에 혈혈단신 배치될 경우 적응이 쉽지 않다.

우연히 만난 국제개발협력 업무, 협의회서 지금까지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이 부르키나파소에서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모습 / 본인 제공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이 부르키나파소에서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모습 / 본인 제공

“스리랑카 여성국 소속으로 봉제교육 우수사례로 선정된 시골마을에서 기존 취-창업교육 이수 여성들 대상 심화교육을 하는 사업을 맡게 됐어요. 코이카 지원예산으로 공업용 재봉틀 등 최신 장비를 구매해 시에 기증, 지역 여성들이 대여해 쓸 수 있게 하고, 대도시에서 강사를 초빙해 교육을 하고 시장 분석을 할 수 있게 연수프로그램 등을 기획해 실행 했어요.”

숙소가 있는 스리랑카 수도에서 사업시행 마을까지 가느라 새벽같이 일어나 대여섯 시간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도 하고 좀 더 새로운 방법과 접근을 보여주고 싶어 사전-사후조사도 했다. 조사항목에 일-여가 등 생애시간을 조사하거나 자존감-행복지수 등도 검사했다. 교육 안에 테라피 프로그램을 넣거나 젠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내용도 일부 포함했다.

“제가 사업을 진행한 스리랑카 시골마을은 외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 외국인이 와서 어설프게나마 스리랑카 말을 하며 뭔가 지원사업을 하니까 되게 신기하게들 보셨어요.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생각 외로 협조를 많이 해주셨고요.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소감도 듣고 설문조사 등을 통해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도 했는데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셨어요. 사업 성과랄까 그런 게 느껴지고 진행하면서 느끼는 감동, 보람이 커서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2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게 2014년 9월이다. 이번엔 좀 쉴 요량이었는데 주변에서 가만두질(?) 않았다. 지금의 직장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서 일하는 예전 직장 선배가 단기프로젝트를 제안했다. 2년간의 해외 경험을 마친 직후였지만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본 게 아니라는 생각에 경험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어느새 이 기관에 몸담은 지 4년 반이 훌쩍 지났다.

“스리랑카에서 돌아와선 정말 좀 쉬어야지 했는데 또 이렇게 연결이 됐네요(웃음). 협의회에 들어올 때 국제개발협력 쪽 일을 꼭 해야겠다거나 간절히 하고싶다는 생각까진 아니었어요. 협의회 일이 직접 현장사업을 한다기보다는 직접사업을 하는 단체를 지원하거나 코디네이터,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강하기 때문에, 대상-분야는 달라도 이전에 했던 일의 방식과 비슷했어요. 처음 해보는 분야, 새로운 분야지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부딪쳐 해봤고 처음 접한 분야에 대해 배운다는 점에서 자극이 됐어요. 개발협력 사업 부문도 다양하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했고요.”

새로운 도전, 늦었다 싶었는데...이전 경험이 소중한 자원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이 부르키나파소 출장 중 바오밥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 본인 제공
이지영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과장이 부르키나파소 출장 중 바오밥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 본인 제공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일반인들에게 ‘국제구호’하면 떠오를 ‘인도적 지원’ 그리고 ‘개발협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은 재난 복구 긴급구호, 생활환경복구, 난민지원 등이 있다. ‘개발협력’은 사회복지적 차원의 소득증대와 자립을 위한 지원사업이다. 그 방법은 농업, 직업훈련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

“협의회 직원 40명 중 10명이 현재 해외에 파견돼 있어요. 국제개발협력 한국 NGO들이 많이 나가 있는 국가들 중심으로 협의회에서 그 단체들을 지원할 코디네이터를 파견하죠. 내부 공모를 통해 해외 파견 근무자를 선발하는데 아무래도 해외봉사단원 출신들이 많이 나가려 하더라고요. 처음 코이카 활동 끝내고 막 협의회 일을 할 땐 ‘나도 곧 나가야 겠구나’ 생각했는데 국내 근무와 해외 파견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 관리, 소통, 퍼실리테이션이 주요 업무인데 일하는 장소가 달라지는 차원이지 하는 일은 국내, 해외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글로벌시대라서일까, 혹은 ‘해외 파견 근무’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어느 정도 작용을 해서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혹은 정도의 차이일지라도 ‘인도적 사명감’이 작동해서든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선망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래서 코이카 해외봉사단 모집은 늘 경쟁이 치열하다.

“코이카 봉사단원 모집에 지원해 스리랑카에서 일할 때가 30대 초중반이었어요. 그땐 봉사단원 중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긴 했어요. 20대 친구들이 확실히 많았거든요. 당시엔 ‘좀 더 일찍 올 걸’하는 생각에 좀 늦은 나이에 와서 아쉽다고 느꼈는데 돌아보니 그때 간 게 잘했다 싶고, 나이도 어렸더라고요. 하하.”

그러면서 이지영 과장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중요한 말을 덧붙인다.

“갓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친구들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게 우리의 경험을 가지고 현지자원을 활용해 그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이 소중한 자원이 되는 거예요. 제 경우만 해도, 이전에 여성인력개발사업을 했던 것, 공공조직에서 일했던 경험 등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물론, 나이가 문제될 건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거의 안 해보고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는, 여러 경험, 특히 조직에서 일한 경험들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참, 코이카 봉사단 중에 ‘시니어 봉사단’이 있어요. 50세 이상, 해당 분야에 10년 이상 경험이 있는 분들이 대상이 되는데, 가족 동반도 가능해요. 같이 해외에 나갔던 봉사단원 동기들과 자주 얘기해요, 나중에 같이 시니어 봉사단으로 나가자고. 같이 도전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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