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여론조사를 믿을 수 있는가
[송장길 칼럼] 여론조사를 믿을 수 있는가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5.13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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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 관련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낙하중이다. “여론조사 결과의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또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회의의 목소리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교묘하게 조작됐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의구심은 여론조사 질문서에 의도적으로 수식어를 집어넣어 불순한 결과를 유도했다는 비판이 일어나 증폭됐다. 리얼미터가 지난 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과도한 증권투자 등으로 야권의 집중포화를 받던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해 15일과 18일 두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1차 조사에서는 이미선 후보의 적격성을 단순하게 물어 찬성 28%, 반대 54.6%의 결과가 나왔다. 그  3일 뒤 같은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재심 요구와 문 대통령의 지명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여 물은 결과 찬성이 15%나 늘어난 43%로 올라갔다. 의뢰기관은 다르지만, 한 조사기관에서 그렇게 서둘러 비슷한 조사를 실시한 점도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방송에 출연해 “동일한 소재의 복수 정보는 흐름의 분석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여론조사 방법론의 기본에 한참 벗어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여론조사는 계량화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인간심리와 사회현상을 측정하는 고도의 전문적 작업이다. 인간들의 태도와 의견, 신념과 판단, 그리고 정신적 경향을 완벽하게 추출해서 수치화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환경과 상황, 이해에 따라서 유동적이고, 측정하는 방법에도 예민하며, 계수화하는 기술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회과학은 사회구성원들의 의사와 태도를 수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아직도 그 과학성에 의문을 안고 있지만, 최근에는 정치적 판단과 사회진단, 기업의 홍보에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도, 정치이슈에 대한 여론조사가 점점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교하게 준비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는 그런 여론조사는 정치세력에 의해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있고, 여론의 조성으로도 피드백된다. 문제는 조사의 신뢰성인데, 최근에 같은 날 같은 주제로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가 조사기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조사 방법상의 미숙이나 편견(bias)이 들어갔음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지난 8일 KBS가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34.7% 대 21.7%인데, TBS가 리얼미터와 실시한 조사에서는 36.4% 대 34.8%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도 KBS와 TBS, SBS의 조사가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각각 다르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달 17일에4대강 가운데 금강과 영산강의 보 해체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1.8가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월 환경부 조사평가위의 44.3%보다 훨씬 높다. 보 철거를 주장하는 단체의 조사인 만큼 자기들의 입장에 유리하게 조사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의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질문서에는 환경부가 보 철거를 계획하는 이유를 죽 나열하고 그에 대한 답변자의 의견을 물어서 답변자의 생각을 유도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바이어스가 작용할 여지와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모집단의 선정과 샘플링에서도 어떤 이해 당사자에 유리한 선정이 가능하다. 지역과 연령, 성별 등을 특정할 때부터 세균의 침투 가능성은 열려있다. 예를 들어 핸드폰 사용자가 비교적 많은 젊은층이 조사에 다수 응답하면 그 젊은 세대의 지지가 두터운 측이 유리하다. 전화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령층의 의견채취를 배제하면 노인층의 의사는 불리하고, 기성세대의 지지대상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실제로 노인들이 조사기관의 전화를 받고 나이를 대답하면 전화연결이 끊어져버린다는 경험자가 상당히 많은 실정이다.

가장 민감한 부분은 질문서다. 어떤 방향으로 묻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문장이 특정한 방향으로 치중한다든지, 수식 문장이나 수식 단어를 붙이면 답변자의 의견은 조사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괄목할 만큼 유도된다. 심지어 질문 순서를 바꾸거나 형용사나 부사 한 자를 추가해도 답변은 놀랍게 달라진다. 물론 개념어의 사용이나 변경만으로도 답변이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질문서의 작성은 심리학과 사회학, 정치와 경제, 법률 등 전문가들의 참여나 자문을 받아 객관적이고도 정교하게 다듬어야 굴곡되지 않은 나이브한 여론이 채취될 것이다. 더구나 객관성을 벗어나 조사기관의 의도가 작용한 오염된 여론이 제시되면 그것은 분명히 사회적인 죄악이다. 그 자료를 근거로 정치와 정책이 이뤄지고, 사회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여론의 지지를 어느 정권보다 중시하고, 내세운다. 촛불시위 이후 높은 지지도를 십분 활용해왔고, 앞으로도 민중의 지지를 껴안고 정치를 펴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주 취임 2주년에 즈음한 KBS와의 대담에서도 질문자인 송현정 기자가 야당이 주장하는 “독재자”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느꼈냐고 묻자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부를 좌파 독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응했다. 그만큼 민중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 정권은 국회도 중시하지 않고, 야당도 경시하면서 높은 지지율을 믿고 여론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송 기자의 질문을 문제 삼아 융단 폭격을 해대는 일부 네티즌 지지층에 대해서 여권이 방관하는 태도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민중은 바람에 휩쓸리는 구름 같고, 비에 젖으면 무너지는 모래성일 수 있음을 집권층은 새겨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과학의 대부인 막스 베버는 사회과학의 방법론에서 가치중립, 몰가치론(wertfreiheit)을 외쳤다. 그것은 그만큼 사회과학에서 가치중립이 절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어떤 의도나 지향이 들어가면 그 결과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그에 의존하는 모든 정치와 정책은 허구이고, 헛발질이다. 따라서 가치중립은 여론조사기관의 종사자들이 가장 명심해야할 덕목이고 원칙이다. 어떤 바이어스도 침범하지 않도록 하면서 객관적이고 생생한 자료를 생산할 수 있도록 탐구적인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외부에서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을 획책하지 못하도록 감시와 긴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공공성을 갖는 기관으로서의 건전한 기능을 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이제는 한국사회가 불확실하고 무정형의 여론정치, 거리정치를 잠재우고 확실한 제도의 계승과 개선에 역점을 둔 상식의 정치, 이성적인 정치, 타협의 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안정되고, 그 위에서 평화와 발전을 차근차근 이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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