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 팔죽시
[김영회 칼럼] 팔죽시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5.10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그런 대로 살고―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300여 년 전 신라의 스님이었던 부설(浮雪)은 원효(元曉), 의상(義湘)과 함께 3대 선승(禪僧)으로 꼽혔지만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서기 647년 선덕여왕 때 서라벌에서 태어 난 부설은 5세 때 불국사에 출가하였으며 원정(圓淨)선사의 제자가 되어 7세에 법문에 통달할 정도로 재주가 비범하였습니다.

부설은 도반인 영희, 영조와 함께 지리산을 돌아 변산 능가산 법왕봉 아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여러 해 수도하다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을 순례하기 위해 강원도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가던 도중 김제 만경들 한 불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벙어리로 태어난 18세의 딸 묘화(妙花)가 있었습니다. 묘화는 부설을 보고는 한눈에 반했고 법문을 듣고는 닫혔던 말문이 열리더니 이내 청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부설은 “수행자로서 어찌 아녀자와 연을 맺겠는가. 장부의 뜻을 꺾으려 하지 마시오”하고 승려의 본분을 들어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묘화는 “중생을 구제한다면서 눈앞에 있는 가련한 소녀의 소박한 소망 하나 들어주지 못하십니까. 이 몸이 죽게 되면 큰 뜻을 편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묘화의 끈질긴 간청에 감동한 부설은 모든 것을 인연이라 생각하고 뜻을 굽혀 소녀의 청을 받아들여 부부가 됩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본 영조와 영희 두 도반은 크게 실망하여 부설을 비웃으며 오대산을 향해 길을 떠났고  부부는 아들 딸 남매를 낳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설은 대오 각성하여  별당을 짓고 죽을 각오로 수행에 전념하여 도를 얻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옛 도반인 영조, 영희 스님이 갔던 길을 돌아와 부설을 측은하게 바라봅니다. 이를 눈치 챈 묘화 부인은 “한번 도력(道力)을 겨루어 보시지요.” 하고는 3개의 병에 물을 가득 담아 줄에 매달아 놓고 “병을 깨트리되 물은 쏟아지지 않는 것으로 서로의 공덕을 시험해 보라”고 권합니다.

영조, 영희 스님이 차례로 병을 치자 유리가 깨지며 물도 쏟아집니다. 그러나 부설의 차례가 되자 병은 깨졌으나 물은 병 모양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설은 두 스님에게 “진성(眞性)은 본래 신통하고 영묘하여 밝음이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 마치 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며 “참된 법신은 생사에 매이지 않고 여여하다”고 법문을 읊었습니다.

부설은 “눈으로 보는 것 없으니 분별이 없고(目無所見無分別), 귀로 소리 없음을 들으니 시비가 끊어졌네(耳聽無聲絶是非), 분별과 시비를 놓아버리고(分別是非都放下),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고 스스로 귀의할 지어다(但看心佛自歸依)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게송을 마친 부설이 움직임이 없어 두 도반이 몸을 만지자 그는 앉은 채로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 영조, 영희 스님이 그를 화장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에 모시고 부도를 세웠습니다. 이후 등운, 월명 남매도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묘화 부인은 가산을 정리하여 부설사를 세우고 110세 까지 살다가 입적하였습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쌍봉선 아래 부설암 묘적암 동운사 월명암이 나란히 있으니 유래는 그렇습니다. 그 뒤 이곳은 곧 호남의 3대 영지가 되었습니다.

부설거사 일가족의 깨달음은 성불에 있어 승과 속이 다르지 않음(僧俗不二)을 보여 준 것으로 이는 마치 연꽃이 흙탕물에 있으나 물들지 않는 이치와 같음을 보여준 것입니다.(暎虛大師集)

부설은 불교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나 묘화와의 혼인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두어 거사(居士)의 칭호로 달리 불리고 있습니다. 201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그의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부설거사의 ‘팔죽시(八竹詩)’가 천년의 시공을 지나 어지러운 세상을 사는 오늘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넘어 죽비소리로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부설은 사람 사는 게 별게 아니라면서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賓客接待家勢竹),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시세대로(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세(然然然世過然竹)-

팔죽시는 대나무 소리음운을 따라 ‘대’로 읽는 재치와 일상적 삶을 초탈한 도통경지가 엿보이는 선시(禪詩)입니다. 조선시대 김삿갓의 시에도 팔죽시가 나오나 이는 부설의 팔죽시를 옮겨 놓은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국문학계에서는 팔죽시를 가리켜 통일신라시대의 생활상과 시장 모습까지 살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로 취임 2주년을 맞았습니다. 박근혜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가위 혁명이라고 할 정도의 촛불정국에 힘입어 갑자기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지 두해가 된 것입니다. 문대통령은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인 한반도의 위기를 평화분위기로 바꿔 놓은 정치력을 보였으나 인사, 경제문제에 발목을 잡혀 절정을 치닫던 지지여론이 아래로 떨어져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문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KBS와 특별 인터뷰를 통해 이런 저런 의견을 피력했으나 표정은 그 옛날 사면초가에 처했던 항우(項羽)처럼 무거워만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관계와 외교, 적폐 청산에서는 괄목할 변화를 보여 줬지만 경제에 발목이 잡혀 국민 생활을 바꿔 놓지 못한 것이 민심 악화의 주원인이 되었습니다.

원래 정치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공자는 “좋은 정치는 가까이 있는 자가 기뻐하고 먼 곳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말하기 좋아 하는 소리지. 대자대비(大慈大悲).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