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女·성] 든든한 PR업계 맏언니 ‘글로벌 홍보전문가’ 낸시 최 씨제이스월드 대표
[일·女·성] 든든한 PR업계 맏언니 ‘글로벌 홍보전문가’ 낸시 최 씨제이스월드 대표
  • 고윤(라이프라이터)
  • 승인 2019.05.0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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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女·聲’은 ‘일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뜻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워킹우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오늘, 바로 당신에게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기념사진 찍는 낸시 최  씨제이스월드(C.J.'s World) 대표 / 본인 제공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기념사진 찍는 낸시 최 씨제이스월드(C.J.'s World) 대표 / 본인 제공

‘프로의 남녀는 차별되지 않는다’(최인아),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조안 리),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한비야)... 1990년대 초중반, 여대생들 사이에서 필독서 혹은 롤 모델로 꼽혔던 저자들의 베스트셀러다. 그 당시 표현대로 한다면 ‘커리어우먼’의 표상 혹은 ‘프로페셔널’의 전형으로 꼽힐 만한 이들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졸’ 여성들이 ‘공채’로 대기업을 입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나마 ‘채용이나 승진에서 남녀차별이 거의 없다’고 알려진 외국계 기업에서 대졸 여성들을 일부 채용, 당시만 해도 국내기업에 비해 처우가 좋고 ‘주5일제’ ‘연차제도’ 등을 도입한 외국계 기업은 여대생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호텔과 항공사 등이 업의 특성상 여성들을 대거 채용했지만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용이한 직장은 또 아니었다.

‘대기업공채’가 막혀있는데다 ‘뭔가 창의적이며 일하는 보람이 남다를 것 같은’, 요즘 말로 ‘있어빌리티’ 충만해 보이는 직장들(예컨대 광고대행사나 언론사)이 전통적으로 공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곳들은 ‘바늘구멍’이다.

다시 앞서 언급한 베스트셀러들로 돌아가 보자. 이 저자들을 묶는 공통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글로벌, PR, 광고, 프론티어 등쯤 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여기 이 키워드를 모두 관통하며 위 저자들보다 선배로서 ‘글로벌PR’이라는 외길을 개척해온 ‘홍보업계 맏언니’가 있다. 낸시 최(Nancy Choi), 그의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길게 돌아왔다. 첫 줄에 소개하진 않았지만 그 역시 1990년대 베스트셀러이자, 많은 여대생들 손에 들려 있던 ‘나는 세상의 창을 보았다’ ‘나를 마케팅하고 세계를 PR하라’의 저자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도 중심, 시청앞 광장을 굽어보는 프레지던트호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 어느새 사반세기가 흘렀다.

“꿈? 뭘 해야겠다 생각해본 적 없다...근데 하고 싶은 건 다 해본 것 같다”

우리는 흔히 ‘꿈이 있어야 한다,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남다른 성취를 이뤘거나 성공한 사람들이 역경 속에서도 ‘꿈’을 향해 달려갔다거나 자신만의 목표로 인해 그 고난을 다 헤치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게 ‘흔한 사고의 정석’이기도 하다. 근데 의외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꿈이 없었다’거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낸시 최도 마찬가지다.

“대학 졸업 후에 취직은 해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특별히 꿈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지금도 뭘 해야겠다 생각해본 적 별로 없고요. 근데 해보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하하.”

이 무슨 이율배반적인 말인가. 꿈도 없고 뭘 해야겠다 생각도 안했는데 해보고 싶은 건 다 해 봤다니. 근데 최 대표에게 들으니 묘하게 설득이 된다. 공부 잘하고 영어에 관심이 있어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그가 대학을 다닌 시절에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라는 코스가 그리 일반적이진 않았다. ‘대졸’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정말 흔치 않았다.

당시 ‘세계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Pan Am, 팬아메리칸항공)과의 인연은 가히 운명적이었다. 찰스 램 수필 과제를 위해 영국문화원에 갔다가 그곳 직원에게 한국지사 직원채용 공고가 담긴 신문을 받았다. 지원을 했는데 한두 명 채용에 130명이 몰렸다. 같은 과에서도 30명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였다. 최종 합격자 두 명에 최 대표의 이름이 있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해외여행이 어려울 시기에 ‘글로벌’하게 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다. 비서로 출발해 마케팅과 세일즈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10년 넘게 팬암항공에서 일한 후 KLM, 노스웨스트항공 등을 거쳐 1990년 글로벌PR전문회사인 지금의 ‘씨제이스월드(C.J.’s World)’를 세웠다.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이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당시 하와이 관광청 국장님이 ‘낸시는 PR에 능력이 있는 것 같다’며 창업을 권유했어요. 회사에서 한창 커리어를 쌓을 때여서 사업은 생각도 안했는데 이 분이 ‘PR을 해 달라’며 1년을 끈질기게 요청하셨죠.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창업을 한 게 지금까지 왔어요. 회사이름도 그 분이 지어주셨죠.”

‘씨제이스월드’ 내년이면 창립 30주년...‘글로벌 관광 PR’ 외길

낸시 최 씨제이스월드(C.J.'s World) 대표 / 본인 제공
낸시 최 씨제이스월드(C.J.'s World) 대표 / 본인 제공

낸시 최 대표는 1990년 창업 이래 ‘글로벌 관광 PR(Destination PR & Marketing)’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그동안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등 10여개 관광청 한국 대표로서 국내에 낯선 지역들의 매력을 발굴 소개하며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인기 관광지’로 만들어왔다. 현재도 노르웨이-독일-오스트리아 잘즈부르크 관광청 대표로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

“글로벌 관광 홍보는 새로운 지역을 발굴해 한국에 알린다는 거, 그리고 그 나라에 한국을 알린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제가 외국항공사에서 오래 일하면서 해외여행이 어려울 때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었던 것, 워낙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도 저한테 잘 맞았고요. 어떤 공식에 따라서 하는 게 아니고 그 나라, 지역을 알리기 위해 어떤 식의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론칭해 사람들이 그 곳에 흥미를 갖게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성과가 나타났을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지금 PR을 맡고 있는 곳은 노르웨이, 독일, 오스트리아 잘즈부르크주 관광청 등이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 관광지로서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그나마 ‘스칸디나비아 3국’ ‘피오르 3국’ 중 하나로만 인식돼 있는 미지의 나라인 셈이다. 자연, 특히 ‘피오르’라는 걸 가지고 포지셔닝을 했고 그 결과 전세비행기까지 띄울 정도로 한국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연간 12만명 정도가 노르웨이를 다녀왔을 정도. “이제 정규 항공편이 만들어져야죠”하는 그의 말에서 ‘아직 배가 고프다’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어록이 얼핏 스쳤다.

우리나라 글로벌PR의 역사이기도 한 씨제이스월드는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2020년에 30주년. 딱 딱 떨어지는 숫자만큼 의미도 남다르지만 최 대표는 의외로 담담하다. “의식 못하고 있었는데 한 지인이 알려주시더라고요. 뭔가 해야 할까요?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하.”

공백 없이 달려온 커리어 “쉬고 싶다는 생각 없다...재밌고 항상 변화하니까”

커리어를 쌓아온 지 어느새 40년이 훌쩍 넘었다. 특히 공백이나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라 더욱 대단해 보인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공백이나 휴식이 없었음에도 지금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일이 재밌어서 그런가 봐요. 항상 변화해서 그런가? 물론, 어려운 때도 있었죠. IMF 때 클라이언트들이 떠났을 때라든가. 근데 일을 하다보면 약간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맞춰 전략을 만드는 거죠.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사업은 결국 사람이고 네트워크라는 말이 있다. 낸시 최 대표의 경우도 처음 창업할 때부터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인맥 관리, 사람 관리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특별히 관리는 안 한다”며 “평소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해 준다. 그렇다고 대가를 바라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것들이 쌓이면 저절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기준도 특별하다. “기본 역량이 돼 있다면,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좋아요. 또, 다른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보다는 신입사원을 주로 채용하고요. 이미 자기 스타일이 구축된 사람은 우리 회사 스타일이 잘 안 맞을 수도 있어서요.” 그러면서 “그 무엇보다 솔직한 사람이 좋다”고 덧붙인다.

이제까지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사업을 이끌어온 비결에 대해서는 ‘특별한 게 없다’고 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더한다.

“일할 때 중요한 건, 상대방(상사든 클라이언트든)이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제시하거나 실행하는 것이죠.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많이들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상사가 묻기 전에, 시키기 전에 먼저 해놓으면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아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좋은 팁이 아닐 수 없다. ‘PR업계 맏언니’이자 ‘시청앞의 터주대감’이기도 한 낸시 최 대표. “밥값 없어도 아마 외상으로 한 달은 견딜 수 있을 걸요?”라며 싱긋 웃으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친근하지만 도도한 카리스마’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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