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 인터뷰 ①]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 인터뷰 ①]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
  • 곽호성 기자
  • 승인 2019.04.27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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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활동 위해 수익사업도 진행…"정직하게 노력해서 성공"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편집자 주] 탈북자들이 국내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탈북자 수는 3만2000여 명이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취업을 할 때도 차별받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탈북자들 중에도 성공한 이들이 적지않다. 성공한 탈북자 중 한 명이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이다. 북한 경제가 심하게 악화되고 있어 앞으로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애란 원장에게 탈북자 정착 문제 해결방안과 북한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북한음식 식당인 ‘능라밥상’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었다.

이애란 원장의 고향은 평양이며 1997년 탈북했다. 한국에 와서 22년째 살고 있다.

이애란 원장은 “제가 자유통일문화원이라고 하는 민간단체를 운영하다보니까 능라밥상이라고 하는 북한 전통음식점을 만들게 됐다”며 “그리고 통일약과를 개발해서 팔았는데, 통일약과 만드는 능라는 수익사업이고 자유통일문화원은 NGO(비(非)영리 시민단체)활동이다. NGO활동을 하기 위해서 수익사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애란 원장은 리버티코리아포스트라는 인터넷신문과 유튜브 ‘이애란TV’를 운영하고 있다.

이애란 원장이 탈북한 이유는 실향민 가족(월남자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애란 원장의 아버지가 혼자 북한에 남아서 이산가족이 됐다. 6•25 당시 월남한 가족 중 소설가가 있는데 가족스토리를 책으로 발간했다.

그는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김일성 물러가라’ 피켓 들고 싸웠고 월남자 가족이란 출신성분이 아주 안 좋았다. 차별받고 탄압받는 계층이었다”며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탈북했다”고 말했다.

이애란 원장은 탈북 중 4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북한은 탈북과정에서 체포돼 북송되면 처형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가야 한다”며 “저 같은 경우에는 4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오다 보니까 상당히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어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어려웠고 가족들이 체포될까봐 걱정했다”며 “워낙 출신성분이 안 좋아서 평양에서 추방돼 산간오지로 끌려가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생 끝에 한국에 오니 IMF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실직자 300만, 450만 할 때인데 그때 ‘사오정 오륙도’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30대 중반에 갓난아기까지 달고 왔기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애란 원장은 힘든 와중에서도 보험회사에 취직해 보험설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보험회사에 취직할 때는 월급을 100만 원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렇지만 보험사가 경쟁이 치열한 데 아닙니까? 100만 원 받았으면 좋겠다는 꿈도 사라지고 쫓겨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는 보험회사에서 성공했다. 그는 한 번도 계획을 달성하지 못한 적이 없었고, 영업소에서 항상 판매실적 1위를 했다.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특별승진도 했다.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묻자 “그냥 열심히 하니까 성공했다. 아무도 없었다. 연고도 없고 노하우도 없었다”며 “열심히는 했고 일하니까 재미도 있었다. 열심히 하니까 그것에 따른 결과가 생겨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쫓아다녔고 고객을 만나면 최선을 다했다”며 “그분들이 필요한 일을 대행해 준다는 마음으로 항상 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애란 원장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돈을 맡겨주는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고마워했다.

그는 “나를 어떻게 믿고 돈을 맡겨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 정직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며 “실적이 많이 올라서 2년 만에 삼성생명에서 전사 9위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영업은 모르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 것이며 아는 사람에게 영업을 하게 되면 나한테 기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 왜 좋습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급제도가 나쁜 이유는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주는 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컴플레인(complain)을 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그런데 제가 보험회사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은 열심히 일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굶어죽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정말 좋은 나라라는 것이 이애란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제가 와서 대한민국에서 살아보니까 정말 이 나라가 좋은 나라다.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만큼 좋은 나라에서 살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기반으로 하는 자유통일을 해내려면 여러 가지 활동이 필요하다. 교육이라든지 문화적 콘텐츠를 통해서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애란 원장은 이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자유통일문화원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북한식당 능라밥상에 대해 설명했다. 능라밥상은 북한 전통음식을 파는 곳이고, 처음에는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으로 시작했다.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그런데 북한전통문화음식연구원 설립 이전에 이애란 원장이 연구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제가 연구비를 사기당하는 사건이 생겼다. 연구비가 은행에 예치돼 있었는데 그 돈을 욕심낸 사람이 빌려달라고 했다”며 “공금을 어떻게 빌려줍니까? 공사(公私)를 구분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비를 욕심 낸 사람은 그에게 3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애란 원장은 그것을 못 빌려준다고 했다.

그는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이자를 준다고 했다. 천하 없는 것을 준다고 해도 빌려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며 “그런데 이 사람이 연구비를 지급정지가처분신청을 걸어놓고 못쓰게 하고 제 이름으로 돼 있는데 연구비를 자기 이름으로 돌려놓으려고 작당을 했다”고 말했다.

이애란 원장은 이 돈을 찾기 위해 그 사람과 싸웠다.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고 금식기도도 하고 해서 겨우 그 돈을 찾아서 연구비를 줬던 재단에 돈을 돌려줬다. 그런데 재단에선 연구비 명목으로 나간 돈이기 때문에 돌아오면 안 된다고 했다. 빨리 사단법인을 만들어서 연구보고서를 내라고 했다.

그는 “만들 줄도 모르는 사단법인을 만드느라 눈물깨나 쏟았다.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만들었다”며 “탈북자의 80%가 여성인데 여성들이 일할 곳이 없다.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탈북 여성들 수요조사를 해도 요리를 배우겠다는 수요가 가장 높았다. 이애란 원장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을 따고 요리학원을 만들었다. 그래서 학원을 만들었는데 북한 음식에 대한 마인드가 없었고 수요가 많지 않아 학원을 2~3년 동안 운영했다. 요식업이 힘들어지니 탈북자들의 수요도 줄었다.

이애란 원장은 요리학원을 운영할 때 정부가 말이 안 되는 것을 강제로 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면 법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며 “45일 정도를 교육시키고 50%를 취직시키라고 했다. 45일 교육시켜서 50% 취직시키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학원은 접었고 학원에 와서 공부했던 분 중에 취업할 의사가 있는 분들을 뽑아서 능라밥상이란 식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애란 원장은 탈북자들이 일하고 있는 능라밥상을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애란 원장은 “식당이라는 것은 대량 급식이고 인건비도 맞춰야 되며 원가도 맞춰야 된다”며  “대량 급식에 합당한 것들을 골라서 식당을 하고 있다.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식재료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을 살려주는 것을 택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웠고 생소했지만 노력해서 어려움을 돌파했다. 이애란 원장은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음식 맛을 느낄 때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식사할 때도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며 “어떤 생소함이 어울려지면 뭔가 만족하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애란 원장은 진실은 절대로 왜곡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직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며 진실하고 성실해야 한다”며 “제가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는 진정성을 갖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애란 원장은 신선한 식재료를 가지고 고객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는 “중저가이지만 퀄리티(quality) 있는, 고가 음식에 못지않은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각오를 가지고 했다”며 “장사꾼이 돈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고객들에게 이익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용인에 있는 롯데몰에서 우리에게 입점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며 “롯데몰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북한 음식과 한국 음식의 차이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북한 음식과 한국 음식의 차이는 없다”며 “북한은 예전에 산업화가 많이 됐었지만 남한은 농업지대였다. 개성에 왕조가 있었다.(고려왕조의 도읍이 개성이었다) 그래서 평양은 장사를 많이 하던 도시이고 술안주 요리가 많이 발달돼 있다. 반면 한국은 탕(湯)이 많이 발달돼 있다. 북한은 탕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거기서 나는 식재료가 다르고 기후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음식의 차이가 있다”며 “유럽에 가보면 북한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안도는 날씨도 따뜻하고 서해안도 끼고 있고 하니까 음식이 담백하고 양념이 강하지 않다”며 “함경도는 동해 바다를 끼고 있고 생선들이 아주 크다. 생선들에 고춧가루를 안 쓰면 비려서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함경도 음식과 다르게 평안도 음식은 고춧가루를 많이 안 쓴다. 평안도는 쌀, 옥수수 종류의 음식이 많다. 함경도는 감자음식과 귀리 등 잡곡이 많다. 평안도에는 이런 음식이 없고 황해도 음식은 충청도 음식하고 비슷하다.

그는 “황해도는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쌀 음식이 많다”며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서 김 요리들도 많고 황해도에 참외짠지가 있는데 충청도에도 있다”고 말했다.

황해도 음식과 충청도 음식이 비슷하다는 것이 이애란 원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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