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여성 리더' 등장 배경엔 여성 금융인 네트워크가 있다
금융권 '여성 리더' 등장 배경엔 여성 금융인 네트워크가 있다
  • 윤아름 기자
  • 승인 2019.04.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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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여금넷 회장 "금융권 성 평등 갈 길 멀어…여성 금융리더 숫자 늘릴 것"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지난해 금융·증권가엔 ‘여풍(女風)’이 불기 시작했다. 증권사에선 처음으로 여성 대표가 나왔고, 시중은행에서도 여성들이 약진했다. 여성 금융인 네트워크(여금넷)는 금융권에 몸담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을 결집하고, 궁극적으로 금융권 ‘유리천장’을 없애자는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위원회 산하 사단법인이다. 리더십, 기업금융, 국제금융 등 여성 금융 리더를 발굴하기 위한 교육 활동도 병행한다.

2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경 여금넷 회장은 “금융권 성 평등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여성 금융인들이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국내 첫 여성 외환 딜러’ 타이틀을 달았던 김상경 회장은 현재 여금넷을 비롯해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메리츠자산운용 사외이사 등을 맡고 있다.

지난 2003년 30여명의 여성 지점장들이 모여 만든 여금넷은 4월 현재 2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남성들만 하는 남성 네트워크, 우리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며 “16년간 70회 정도 모이며 업계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역량을 기르는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현재 금융사 임원급을 맡고 있는 여성들은 모두 여금넷 멤버일 것”이라며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은 창립 초부터 여금넷과 함께했고, 지난해 말 승진한 박정림 KB증권 대표, 왕미화 신한금융WM사업부문장, 조경선 신한은행 부행장보 또한 지점장 시절부터 여금넷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금융권 성차별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봤다. 김 회장은 “신입사원 비율은 비교적 동등하지만 지점장급으로 올라가면 여성의 비율은 17%, 부행장급은 4% 미만으로 떨어진다”며 “당국과 금융사가 보다 적극적인 성차별 해소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금융권 유리천장은 깨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 몇 명을 상징적으로 임원을 시켜놓는다고 해서 유리천장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며 “수십 명의 남성 임원 가운데 여성이 한두 명 있다고 해서 그들이 목소리를 잘 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김 회장은 “적어도 임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30%는 돼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며 “사내임원에 여성 비율을 확대하는 것은 당장 힘들더라도 ‘사외이사 여성 할당제’는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사들은 여성 임원을 선임하지 않는 이유로 ‘준비된 인재가 없다’는 변명을 하곤 한다”며 “내부에 없다면 외부에서라도 데려올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김 회장은 1980년대 노르웨이의 사례를 들며 “노르웨이는 ‘30% 이상을 여성임원으로 채워야 한다. 채우지 못하면 상장을 폐지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생기면서 성차별이 많이 개선됐다”며 “‘여성 인재가 없으니 승진을 못 시킨다’는 변명을 그만하고, 여성 인재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그는 금융사가 여성인재를 다양한 분야에 배치하는 한편, 남성에게도 육아휴직제도 사용을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은행권 여성인재들은 대부분 기업금융이 아닌 소매금융에 배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성별이 아닌 개인 역량에 따라 인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성들에게도 육아휴직제도 사용을 권장해 여성들의 양육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면서 “여성이 맘 놓고 나와서 직장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 또한 순탄치 않는 직장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는 “1979년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국내 은행에는 ‘결혼 각서제’가 있었다”며 “여성들은 시중은행 입사와 동시에 ‘결혼을 하면 퇴직을 하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한국은행의 경우에도 ‘30세에 퇴직 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결혼 후에도 커리어를 잇고 싶었던 대학 시절, 결혼 각서를 쓰는 친구들을 보고 외환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결국 외국계 은행에 입사해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함께 은행을 준비하다 시중은행에 몸을 담았던 친구들은 모두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떠났다”며 “나는 다행히 외국계 은행에서 성별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그 시절, 여성들이 받았던 차별을 빗겨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타의로 회사를 나서는 여성 금융인이 사라졌으면 한다”는 김 회장의 목표는 여성 금융 리더의 파이를 넓히는 것이다.

그는 “현재 금융감독원과 국회, 개별 금융사에 지속적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며 “금융사들이 금감원 공시시스템에 여성임원 비율을 필수로 밝히게 하고, 일정 규모 이사의 상장회사들은 여성 임원을 필수로 선임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개별 금융사가 여성 임원이 얼마나 많이 선임되는지, 왜 선임하지 않는지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여성 임원 선임 비율이 떨어지거나, 여전히 낮은 금융사에는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회장은 해외에 국내 여성 금융 리더들을 소개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국제 행사를 열어 외국 정계·금융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며 “지난 2017년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리를 모셨고, 올해는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등 외교대사를 모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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