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노라의 회오
[송장길 칼럼] 노라의 회오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4.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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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명동 거리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서울 명동 거리의 모습 / 연합뉴스

따가운 햇살로 세상을 익히던 태양은 저녁이 되자 도시의 서쪽 뒤로 꼴깍 넘어갔다. 비단 질감의 노을도 흐릿해져 영롱했던 빛을 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남 캘리포니아의 세리토스 시, 도심의 단아한 커뮤니티 공원인 [프렌드십 파크(Friendship Park)]의 고적한 여름밤이 어둠의 악령에 침식되고 있는 중이었다.

노라 헤르메는 하루 일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인근 공원에 산책을 나와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군데군데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가로등 불빛으로 그림자를  늘여뜨려 얼룩을 그리고, 푸르스름한 잔디밭 위를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노라는 벤치의 나무가 차츰 딱딱하게 느껴지자 육신의 퇴행과 세월의 흐름을 헤아리며 애틋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인형의 집]에 남아 있던 남편 토크발트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돌이켜 보면 그남자를 끔찍히도 사랑했었는데~.’ 노라는 사경을 헤매던 그를 간호할 때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플 수는 없을까를 되뇌며 가슴을 졸였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치떨리는 고뇌 속에서도 빗쟁이 크로그스타의 차용 증서를 끝까지 감춘 결기, 그가 승진했을 때 몸이 붕붕 뜨는 듯 흥분했던 환희도 생생했다. 헤어질 때 “안돼 안돼”라고 외치던 절규,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는 읍소, 편지라도 나누자는 호소를 모질게 뿌리쳤던 그날을 또렷하게 회고했다.

노라는 깊은 한숨을 몰아 쉬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린 철부지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을까?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라는 생각에 미치자 통증의 덩어리가 심장을 짓이기는 듯 아팠다. 노라는 괴로움을 못 이겨 숙였던 머리를 곧추세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갑자기 움직이자 긴 스커트가 바람에 크게 펄럭였다.

노라가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올 때도 스커트는 바람에 휘날렸다. 그 바람은 노라가 집 앞 골목을 빠져나가 도시를 휘둘고는 산과 바다를 나다니면서 강풍으로 변했다. 덴마크를 휩쓸고, 영국을 강타했으며, 유럽과 남·북 미주, 그리고 아시아에까지 위세를 떨쳤다. 노라의 바람은 고요한 산맥 골짜기에 갇혀있던 조신한 여인들까지 불러냈고, 화장기 속에 안주했던 여성들을 모아 상기된 여성공동체를 일으켰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이대륙에서 저대륙으로 거침이 없었다. 자유는 신선했고, 신나는 일이었다. 순풍에 살랑대는 숲들, 강풍에 흔들리는 고목의 가지들, 훈풍을 맞아 겹겹의 가림옷을 벗어 던진 여인들의 고운 살결, 삭풍에 외투를 여미는 남정네들의 움츠림은 짜릿한 흥분까지 자극하는 진풍경이었다.

패미니즘이 불 붙었고, 여성 권리는 신속하게 기지개를 켰다. 가부장제는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제1차 산업혁명으로 급증한 노동력의 수요를 작업복을 입은 여성들이 떼몰려가 채웠다. 입센이 [인형의 집]을 펴낸 1879년부터 뉴질랜드를 필두로 여성의 참정권도 확산되었고, 여성 먼저(Lady 1st)의 사회풍조는 날개를 달았다. 21세기의 양성평등(heforshe) 캠패인과 미투(me too)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성 권리의 흐드러진 개화는 노라의 열풍 덕이 컸다.

노라가 가출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 여성의 권리신장지수는 그녀의 본향 노르웨이에서는 36.4%, 인근 스웨덴에서는 45.3%나 높다. 미국 의회에는 여성이 14.0%나 진출했고, 행정 고위직에는 46.0%를 찾이하고 있다. 여성을 성적인 노예로 삼는데 유용했던 중국의 전족도 전통문화의 저항을 누르고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노라가 공원에서 귀가했을 때 집안에는 정적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앙징스런 애완견 스피츠가 날세게 달려와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노라는 그 유일한 반려에게 과자를 두어 개 던져준 뒤 저녁상을 준비했다.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컵, 아메리칸 치스 한 잎, 살구 한 개가 전부였다. 혼밥의 쓸쓸함과 욜로(you only live once)의 단순함이 노라의 웃음을 삼켜버린 지 오래다. 노라는 음식을 기계적으로 씹으면서 창밖을 응시했다. 거무스름한 하늘과 무수한 별빛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외롭고 암울한 자신이 거기에  부초처럼 떠있는 듯 싶었다. ‘단 한 번뿐인 내 삶의 역정에서 선택한 그 결정이 진정 옳았는가, 꼭 그길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요즈음 자꾸 엄습해서 더 그런가 싶었다.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일이 세상을 크게 바꿔 놓았음은 만인이 인정하고 있다. 만일 여성들이 지금도 19세기 이전의 구시대처럼 남자들의 외투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참담한 꼴이겠는가. 그 결행은 분명히 여성들을 옥죄던 가죽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자유의 통쾌한 진군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날로 투명해지고 건조해지자 남편 토크발트 헬마와 두 자식들의 생각이 더 짠하게 노라의 뇌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망을 속속들이 까발리는 신시대의 강풍을 어찌 견뎌내는지도 걱정이었다. ‘가출의 문턱이 점점 낮아진 것은 애초에 자신이 의도했거나 예상한 일이 결코 아니다, 불평등한 여성의 지위를 고민했던 것이지, 단란한 가정을 파괴하려던 행동이 아니었다’는 변명이 고개를 들었다.

최근에 미국의 이혼률이 50%를 육박하고, 재혼자의 이혼률은 67%, 재재혼자의 이혼률은 75%에 이른다. 로스엔젤레스 한 초등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의 40% 이상이 결손가정의 아픔과 고뇌로 몸을 뒤튼다. 한국에서는 딸을 출가시킬 때 ‘그집 귀신이 되라’던 예전의 덕담이 이제는 ‘수 틀리면 얼른 돌아오라’는 말로 변했다고 인구에 회자된다.

헐리웃의 여배우 리즈 테일러는 8번이나 남편을 갈아치웠고, 미국 전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도 고명한 명예를 걷어차고 부유한 사업가에게 개가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인기 골퍼 타이거 우즈는 두 자리 수의 여성 편력이 들어났음에도 TV앞에서 미소를 흘리며 팬들을 만난다. 미국의 미혼 여배우 조디 포스터는 비공개 남성의 정자로 출산한 아이를 양육하고 있고, 축구의 명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부인 말고 다른 두 여성에게 자신의 정자로 아들을 각각 낳게 해서 키우고 있다. 인간처럼 감정을 갖는 AI가 인류를 지배할 지 모른다는 걱정이 계속 이어진다. AI는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아니고, 가족이 없어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최근 한국의 [보건사회연구] 최신호는 결혼 적령기인 20~44세의 미혼 남녀 중 70%가 이성교제를 아예 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의 25~29세 남성 미혼률은 1994년의 64%에서 2015년에는 90%로 증가했다. 여성도 거의 비슷한 비율을 나타낸다. 결혼제도와 가족제도의 급격한 해체를 시사하는 현상들이다.

노라는 오른 손 주먹으로 답답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그래, 가족제도는 인류의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이며, 마땅한 대안도 없다. 종의 계승과 안정된 생활문화의 기초 장치이지 않은가. 소중하고 달콤한 사랑의 요람이기도 하다. 가족제도가 허물어지면 인류의 건강한 미래는 쇠락해버릴지 모른다. 문화의 개념을 넘어서 문명 차원의 명제이다. 내가 무슨 깜냥으로 거대한 문명의 물길을 돌린 일을 감행했단 말인가?’

노라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TV를 켰지만, 이내 꺼버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오늘도 혼자 쓰기에는 너무 넓다고 느껴지는 퀸 사이즈 침대에 오르면서 또 생각했다. ‘역사는 되돌려지지 않는다. 여성 파워의 신장과 결혼관을 바꾸어 놓은 저 도저한 물결을 이제와서 역류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겉잡을 수 없는 회의가 수시로 엄습하는 고뇌를 어쩔 수가 없다. 인형의 집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면 피를 토하는 격렬한 토론을 벌여서라도 무슨 타협안을 찾아낼 수는 없었을까? 인형의 집을 헐어버리고 남편과 생활 공간이 공평해지도록 대칭의 집이라도 설계할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인류의 젠더 문화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노라는 깊은 회오에 빠져들며 괴로워했다. 이불을 걷어차면서 만만한 베게만을 끌어안고 뒤척였다. 전두엽의 해마에는 남녀관계에 관한 뭇 상념들이 어지럽게 얽히며 들락거렸다. 그 와중에 하나의 강렬한 생각의 줄기가 치솟아 의식을 사로잡았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역시 가족의 사랑에 푹 젖어 있던 바로 그때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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