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4월은 잔인하다
[김영회 칼럼]4월은 잔인하다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4.11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에서 가옥들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연합뉴스

― 아름다운 4월이 오면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인은 한국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

온 국민이 밤잠을 설치며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는데 더 크게 번지지 않고 일단 그 정도에서 진화가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하필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저녁에 시작돼 6일 아침까지 36시간이나 계속된 화재라서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는 예외 없이 숯덩이가 된 나무줄기들과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가옥들의 잔해(殘骸)가 이번 산불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고성에서 발화돼 속초, 인제, 강릉, 동해를 마구 휩쓴 이번 산불은 삽시간에 525㏊(525만㎡)의 삼림을 여지없이 불 태웠습니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290㏊)의 2배나 되는 넓이로 월드컵 축구장(7140㎡)의 735배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입니다.<1㏊(헥타르)= 3025평>

불은 주택 478채, 창고195동, 축산시설 925개소, 비닐하우스 21동, 기타 농업시설 60동, 농림축산기계 434대, 학교 부속시설 9곳, 상가 등을 태웠고 소, 돼지, 닭 등 가축 4만1520마리가 폐사했습니다. 하지만 화재의 크기에 비해 인명피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1명 사망에 10여명이 작은 부상을 당했을 뿐입니다.

태백산맥 동쪽인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화마(火魔)를 겪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불이 시작되면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게 관례처럼 되어있으니 당연히 피해가 크기마련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동해안 화재는 ▷1996년 고성산불(피해면적 3762㏊)을 위시해 ▷1998년 강릉・사천(301㏊) ▷2000년 동해안 4개시・군(2만3148㏊) ▷2004년 속초・강릉(619㏊) ▷2005년 양양(1141㏊) ▷2017년 삼척・강릉(1017㏊)이 잇달아 참화를 안겨 주었습니다. 특히 2005년 양양에서 문화재인 천년고찰 낙산사가 화염 속에 전소되던 안타까운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강원도 동해안지역은 왜, 그처럼 자주 불이 나고, 불이 났다하면 큰 불로 번지는 것일까. 국립기상연구소는 동해안 지역에 한번 불이 붙으면 짧은 시간에 큰 피해로 번지는 이유를 양간지풍(襄杆之風), 양강지풍(襄江之風)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양간지풍은 서쪽에서 태백산맥을 넘은 고온 건조한 바람이 빠른 속도로 양양→간성지방으로 내리 닥쳐 예부터 주민들은 불을 몰고 온다는 의미에서 ‘화풍(火風)’이라 부릅니다. 양강지풍 역시 양양과 강릉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번 산불은 불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진화에 동원된 장비나 인력 면에서도 사상최대, 역대 급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일 저녁 발화 신고가 있고부터 전국 시·군의 소방서에 비상이 걸렸고 현장으로 향하는 소방차 872대가 고속도로를 뒤덮고 달리는 초유의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소방공무원 3251명을 포함해 산림청 진화대원, 의용소방대원, 군 장병, 시・군 공무원 등 1만 여명이 진화작업에 동원됐고 헬리콥터만도 54대가 투입되어 진화작업에 참여했습니다.

경찰도 경기, 충북 등 인접도의 경찰관 1700명을 지원받아  진화작업에 나섰고 군 당국도 병력 1만6500명, 헬기 32대 및 군 보유 소방차 26대를 투입했습니다. 주한미군도 블랙호크 헬리콥터 2대를 지원했습니다. 경찰은 특히 화재 발생지점에서 7km떨어진 화약 저장소에 있던 폭약 4800kg, 뇌관 3000발 등 화약류를 다른 곳으로 재빠르게 옮겼습니다. 자칫했으면 큰 사고를 유발했을 위기일발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강원도산불은 전과 달리 정부의 대처가 빨라 다행하게도 피해를 더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진화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은 모처럼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5년 전의 세월호 참사 때 우왕좌왕하다 때를 놓쳐 많은 희생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이번 화재 진화에는 정부 각 기관의 유기적인 대응능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통령이 당일 화재 현장에 달려가 진화 요원들을 독려하는가 하면 국무총리가 두 번 씩이나 현장에 내려가 지휘를 하는 모습은 모처럼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는 불이 마구 번지고 있는 긴박한 시간에 야당 일각에서 보인 ‘어깃장’은 국민의 눈에 곱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화재 현장의 ‘영웅’은 소방관들입니다. 평소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구애받지 않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헌신하는 이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아무리 칭찬을 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폐허에서 넋을 일고 망연자실한 이재민이 하루 빨리 정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일이 시급합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집과 재산을 잃고 쑥대밭이 돼버린 마을에서 말을 잃고 망연자실 한숨만 쉬고 있는 주민들을 정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뒤따라 이들이 하루 속히 재기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생태계가 원상대로 회복되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난 곳은 토양이 산성화돼 나무가 잘 자라지 않을 수 있어 복구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식물뿐이 아니라 어류 3년, 개미 13년, 조류19년, 경관 및 식생 20년, 야생동물 3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훼손된 자연 생태계가 본래의 모습을 찾기는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우리는 T·S·엘리엇(영국・1888~1965) 장편 시 ‘황무지(The Waste Land)’를 생각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게 하고

 추억과 욕망을 섞어 / 봄비를 내려 잠든 뿌리를 깨운다 /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지 /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뒤덮고

 메마른 줄기로 작은 생명을 살려 남겼다―(略)

‘황무지’는 엘리엇이 1922년에 발표한 434줄의 긴 시입니다. 이 시는 ‘20세기 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4년에 걸쳐 수천 만 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1차 대전 종전 뒤 절망에 빠진 유럽인들은 이 시 ‘황무지’를 통해서 황폐한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 글귀 때문인지, 우리나라에 많은 독자를 갖고 있습니다. 설마 엘리엇은 일본 식민지였던 우리 한국의 현대사를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유독 4월에 비극적 사건이 많았기에 하는 말입니다.

▷1948년의 ‘제주 4·3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군과 경찰이 폭동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무자비하게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당시 희생자 수는 제주도민의 10%인 3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사망자들 중에는 노인, 여성,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국가기관에 의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다가 1997년김대중정부에 이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권력에 의하여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 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1960년의 4・19혁명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민 혁명이었습니다. 발단은 이승만 대통령의 무리한 장기집권 야욕으로 부정 선거를 획책했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경찰의 발포로 젊은이 185명이 사망한 가운데 집권당인 자유당이 해체되고 이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와 미국으로 망명한  불행한 사건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에서 세월호 침몰.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하교학생 304명이 세월호 침몰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대통령직을 잃었고 현재 수감 중입니다. ▷4월이면 어김없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산불 등등, 예나 이제나 한국의 4월은 잔인합니다.

그래도, 아무리 잔인한 계절이라 해도, 새들은 하늘을 날며 지저귀고 꽃들은 다투어 만개합니다. 그리고 시인들은 아름다운 시를 씁니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 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1916~1978)의 ‘4월의 노래’입니다. 아름다운 계절, 만물이 소생해 꽃 피는 4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모든 국민이 봄을 즐기는 그런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