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역사가 미래를 제시하게 하라
[송장길 칼럼] 역사가 미래를 제시하게 하라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3.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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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했다. / 연합뉴스

안국역에 내려가면 벽면이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 위에 독립운동가들의 언행이 뺑뺑 돌아가며 가득 채워져 있다. 익숙한 의인들의 명언들도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생소한 분들의 모르던 기록도 채굴해서 보여 준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면서 지난해부터 D데이 표지판까지 큼지막하게 설치해 놨었다. 처음에는 한두 번 관심이 갔지만 자주 보니까 무심해졌고, 상황에 따라 지겨워지기도 한다. 너무 하얀 색으로 도배를 해 놓은 데다가 옛날 사람들의 빛바랜 사진들이 죽 늘어서 있어서 한밤중에 지나갈 때는 과거로 돌아갔나, 하면서 섬찟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안국역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손님들인 그들이 어떻게 여길 지도 걱정된다.

요즈음 방송이나 신문에는 독립운동에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글들이 넘쳐난다. 흥미를 돋우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너무 지나쳐서 어떤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의심될 때가 많다. 갑자기 독립운동의 시대로 시계가 뒤돌아갔나 싶기도 하고, 다시 독립을 해야 되나, 라는 웃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역사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오늘의 뿌리이자,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고 과거로 회귀하면 더욱 안 된다. 지나치게 천착하다 보면 대중의 혼이 암울했던 과거에 머물게 될까 우려되는 것이다.

역사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기념해야 되고, 그 경험을 새겨서 오늘과 미래의 밑걸음으로 삼을 때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세세한 사실 그 자체보다 시대의 배경과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자유주의 대표적 역사가인 로빈 조지 콜링우드는 <역사의 이데아>라는 책에서 역사는 그 사실과 사유(해석)의 공동영역임을 강조하며, 사유가 없는 역사는 죽음이라고 보았다. 사실보다 그 사실들을 낳은 시대적 배경과 오늘과의 연관성에 방점을 두었다.

진보진영에서 임시정부를 치켜세우는 것은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대중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18세기 영국에서 발아해서 19세기에 가장 풍미했고, 20세기까지에도 성행했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이며, 진보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오늘날은 국수적인 민족주의보다 국가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진취적인 글로벌주의가 시대정신이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일로 보는 프레임과, 이승만을 제치고 김구를 추앙하는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안국동 로타리에서 감고당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김구 선생의 사진전이 무시로 열린다. 몇 달씩 계속되기도 해서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김구를 띄우고, 통일을 연관지우며, 친북반미 기조가 강한 진보세력의 노선이 읽힌다. 거기에 아시아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 중진국으로 끌어올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진보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무시해 버리려 한다.

역사를 이념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왜곡되고, 뒤틀린다. 친일 역사관이 호된 비판을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건국은 영토와 국민, 안보와 정부 조직 등 국가로서의 체제를 제대로 갖추고 출범해야 세계가 인정하는 정식 국가가 된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임시로 가설된 정부의 모형을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수립보다 우위에 놓을 수 있을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부패를 제압하지 못해 물러나긴 했지만, 해방 후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독립된 국가를 어엿하게 출범시킨 점과 한국전 당시 유엔을 끌어들여 백척간두의 나라를 지킨 점, 한미 동맹으로 냉전시대 붉은 마수를 막아낸 안보의 우산과 지지대를 확보한 업적은 절대 과소 평가할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혁혁한 공로이기 때문이다. 지울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국가적 공적이다. 현학적인 지식장수 도울 김용옥이 공영 KBS-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승만을 국립묘지의 무덤에서 파내버려야 한다”고 한 말은 사려 깊지 못했다. 이승만과 김일성을 동률로 놓고, 각각 미국과 소련의 하수인으로 표현한 말도 사실관계가 맞지 않고, 일부 극좌파들을 제외하고는 국민과 국가를 모독한 망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폄하도 세계가 비웃을 것이다. 미국의 시카고 학파 밀턴 프리드만 교수를 비롯해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한결같이 "미스터리"라며 놀라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주도하지 않았는가. 잘한 일은 인정하고 열린 자세로 개혁할 일을 찾는 게 진보의 길이다.

민주당 정권은 집권 후 지나치게 과거의 흠을 파고드는 데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에 가둬놓고도 또 한 명을 가두려 한다. 사법부의 수장이었던 대법원장도 구속시켰다. 그전 정권의 주변에서 종사한 인물들의 재판까지 포함하면 부지기수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과거 정권을 적폐청산의 프레임으로 묶은 결과로 지적된다. 전 지구촌에서도 드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2년 간 대중매체의 내용을 분석적으로 연구하면 아마도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 또는 재판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거의 매일 수사와 재판 기사가 주요 뉴스였다.

역사 속으로 들어간 사건들도 줄줄이 끄집어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와 제주도 및 여순 반란 사건, 광주 항쟁, 세월호 침몰, 4대강 건설 등을 파헤치는 일에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해 전 정권의 계엄 검토설에 이어 최근에는 김학의와 장자연, 승리 등의 수사를 직접 지시하기도 했고, 주변에서는 친일 부역과 심지어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피해 보상론까지 나왔다. 진보세력이 보수의 씨를 말려 장기집권을 노린다는 비난과 분노가 보수진영에서 들끓고 있다.

물론 억울한 누명이나 희생은 밝혀져야 하고, 피해는 보상받아야 한다. 일본 우익의 뻔뻔한 대응도 못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국가의 운영이라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신중히 진행돼야 하고, 국가와 국민의 공감을 얻어가며 철저히 법으로 처리돼야 부작용이 없을 것이다. 사회가 과거지향적이 돼서도 곤란하고, 역사의 상처를 건드려 전체를 훼손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의감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루어진 양 상을 받으려 한다면 공치사로 여겨져 반감만을 사게 된다.

진보성향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사실 자체만도 아니고, 역사가의 주관 속에만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논리를 세웠다. 그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현재를 도외시한 역사적 사실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우리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는 데 역사가 유익한 교훈과 암시를 받을 때 과거의 역사는 가치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굴절과 질곡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런 역사를 극복하고 오늘의 굴기를 이뤄냈다. 역사는 오늘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 기복의 역사가 오늘의 곤궁을 다시 헤쳐나가 빛나는 미래를 창출하도록  방향과 지혜를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불안한 안보는 어떻게 다질 수 있을 것인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떻게 경제적 성장과 고른 번영을 이루어 낼 것인가, 하는 요체가 역사에 담겨 있다. 역사를 미루어 보면 해답의 방향과 힌트가 나온다. 역사의 제시에 치열한 노력과 창의를 더하면 대한민국은 또다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미 도약의 발판은 마련되지 않았는가.

역사를 날카롭게 노려보지만 말고, 긍정적으로도 바라보자. 그리고 진솔하게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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