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보훈정책'
갈 길 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보훈정책'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9.03.19 1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현 광복회 이사 / 본인 제공

"독립운동을 오랜 기간을 하다 보니 식사와 생활패턴은 간결했다. 소식하시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다. 집에서는 신문과 책을 읽고 글을 쓰셨다. 성격도 온화하시고 농담도 잘하시고 음악도 좋아하셨다"

권기옥 독립운동가 후손인 권현 광복회 이사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는 허허 웃으며 "어린 시절, 저에게는 어머니이자 할머니였다. 내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한평생을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며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 없는 국민의 서러움을 겪었고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17세에는 행상으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전달했고, 19세에는 평양에서 3·1운동을 주도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 후 1926년 7월, 중국 원난 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졸업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로 복무했다.

권현 이사는 "비행사가 되신 이유도 조선총독부와 황궁을 폭파하겠다는 굳은 의지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 "가사노동도 독립운동으로 인정해야"

권현 이사는 '독립운동가들 중 여성운동가들은 비교적 적게 알려져 있다'는 질문에 "현재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 독립운동가들이 구속되면 교도소에 재판 기록이 남는데, 남자에 비해 여자는 그런 기록들이 없다. 남자는 구형을 살아도 6개월 이상인 반면, 여자들은 단순 가담이다 보니 몇 주, 한 달 정도다. 징역을 살고 나와도 1년 안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고, 또 돌아가시면 국가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 전쟁 중에도 가족들 뒷바라지하고 식사도 챙겨야 하는 가사노동은 인정을 안 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국가유공자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도 이제는 어렵다. 1세대 애국지사분들은 거진 다 돌아가시고 2세대 분들도 80대가 넘었다. 이러다 보니 북쪽이나 일본에서 갖고 있는 기록을 찾아야 하는데 여기까지는 가져오지도 못하고 확인도 못한다. 남북관계와 한일관계가 개선돼야 많은 분들이 인정받을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일상 속, 독립운동가들 기억하는 사업 필요"

권현 이사는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할 수 있는 사업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념행사들이 신문에 나오고 뉴스에 나와도 주변 분들이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며 "현재 앰버서더 호텔 버스정류장 이름이 '장충문화체육센터. 권기옥 활동 터'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 같은 경우 안중근 정류장, 김구 전철역처럼 바뀌면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학교에서 역사를 충분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교과서에도 많이 실리고 영화와 뮤지컬, 연극에도 꾸준한 홍보와 제작 지원이 필요하다"며 교육 문제도 꼬집었다.

◆ "보훈정책, 이제 시작 단계"

권현 이사는 "독립운동가분들은 국가에서 강제로 모집을 하거나 지시를 해서 싸운 분들이 아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오신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후손들은 물려받을 재산이 없고 교육도 받기 힘들었다. 그분들이 생활고를 겪는 이유는 정부의 소홀함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에서 유족들을 찾아온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는 "제 기억으로는 20년 전 생활실태조사를 한 번 했다. 하지만 실태조사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행인 건 문재인 정부가 독립운동가정신에 관심이 많다. 똑같은 정책과 예산이라면, 직접 유족들을 만나고 광복회와 상의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만들기 바란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 "고향은 북쪽이지만 그들의 행적 잊지 말아야"

인터뷰를 마치고 몇 분 뒤, 권현 이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 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권현 이사는 "남쪽이 고향이신 독립운동가분들은 생가도 복원하고 동상과 기념비도 만들었다. 또한 기념사업과 묘지사업 등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북쪽이 고향이신 분들은 남쪽에 그 흔한 동상 하나 없다.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한평생 그 지역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사셨다. 각 지역의 관리자분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