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미국·북한 담판의 관전법
[송장길 칼럼] 미국·북한 담판의 관전법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3.1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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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회담, 확대회담을 했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하노이의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배경에는 북측이 계책에 매몰돼 미국이라는 수퍼 파워의 존재감을 등한시한 오판이 웅크리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대등한 입장에서 맞짱뜨려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포커 놀음과 같은 따먹기 게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트럼프 태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패는 감추고 무리한 배팅을 결행한 것이다. 팔을 가볍게 두드려주며(patting) 친밀감을 표시하고, 상대를 추켜세워주는 의도적인 제스처를 과대평가했는지 모른다. 협상의 소프트웨어인 의제보다 먼저 하드웨어인 대좌의 매너에서부터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국가 간 협상이라 해도 테이블 매너가 있는 법이고, 서로의 입장이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있어야 절충이 이뤄진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을 상대로 진솔하게 나오지 않고, 교활한 게임을 밀어부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개인만이 아니고 세계를 들여다보는 참모진과  국무성을 비롯한 유관 기관, 의회와 언론, 300여개의 싱크 탱크 등 우수한 두뇌 집단의 직· 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이 지구 위에서 가장 불신을 받는 정권의 술책에 넘어가기를 기대하는 망상은 바늘 구멍으로 들보를 집어넣으려는 꼴이다. 새 핵시설을 숨기고, 유용성이 의심되는 영변의 낡은 핵시설 폐기를 담보로 주요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너무 단순한 노림수이자 무리수였다. 쓰다 남은 가구를 내주고 부도를 막자는 격이나 다름없다.

국제정치는 두 개로 된 수레바퀴의 원리로 돌아간다. 평등 원칙과 힘의 위세이다. 민주사회의 인권과 같이 오늘날 개개의 국가는 평등한 국권을 갖는다. 이상주의자들은 이 원리만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군사력과 경제력 등 막강한 대국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힘든 것도 엄연한 실정이다. 국제질서는 자결권과 독립성을 인정하지만 보이지 않게, 특히 일탈의 경우에는 각 국가의 의지와 달리 국제적 역학관계의 메카니즘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인 것이다. 미국이 지구촌의 리더로 군림하고 있는 뒷배에는 어느 나라도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국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가.

미국과 북한 간 국력의 차이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미국의 명목상 국민총생산은 18조 달러가 넘는데 (2017년 월드 뱅크), 북한은 그 1000분의 1 수준인 174억 달러(2015년 기준)로 추정된다. 1인당 총생산은 미국이 4만2000 달러(2018년 IMF) 수준인데, 북한은 겨우 648 달러(2015년 기준)로 알려져 있다. 핵 보유수는 미국이 1000여 기인데, 북한은 조악한 26기를 갖고 있다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국방비는 미국이 전 예산의 4.3%인 7000여억 달러인데, 북한은 23%나 쏟아부어도 그 70분의 1인 100억 달러 남짓이다. 한마디로 족탈불급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핵 담판을 벌이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 상대가 될만 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하도 그악스럽게 적대시하면서 시제품 정도의 핵으로 위협을 계속해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강도 높은 제재와 위협으로 압박을 펴나가고 있었다. 이에 견디기 힘들었던 김 위원장이 대화와 타협의 신호를 보냄으로써 협상 테이블이 펴진 것이다. 최소한의 희생도 내지 않으면서 골치거리를 해결하면 하나의 업적으로 삼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지한 태도로 나와야 그들이 처한 곤궁을 타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하겠다고 미국과 한국 대통령에게 거듭 다짐했다. 공개된 연설로도 약속했다. 그런 다짐과 약속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지금처럼 감추거나 찔끔거리면 안 된다. 비핵화를 확실하게 실행하면 제재의 해제는 물론, 경제적 지원과 안보·외교의 보장도 받게 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인 만큼, 거기에서 김 위원장이 머뭇거린다면 스스로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자인하는 결과가 된다.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는 이제 선택지가 아니라 발등 위의 불이다. 비핵화를 피하거나 미루면 주민들의 생활과 정권 유지가 위태로워진다. 북한의 경제는 거의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궁핍한 상태라고 전해진다. 2016년에는 북한의 국민총생산률이 3.9%까지 올랐는데, 국제제재 후 지난해에는 -3.5%였고, 올해는 더 악화돼  -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지난해 GDP 성장률이 0.4% 떨어지는데도 체감 불경기가 매우 높게 느껴졌는데, -5%로 떨어진다면 북한의 고통은 상상을 넘어 극심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여러가지 변수를 능란하게 휘두르는 편이라 어떤 곤경을 북한에게 더 안길지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 동창리에서 핵 관련 움직임이 다시 포착됐다는 정보에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논평한 것은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미· 북대화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을 에둘러 표현한 느낌을 준다.

미국의 보수 매파들은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괴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핵의 위협 뿐 아니라 대량살상 화학무기의 보유와 악랄한 인권 유린에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다. 사회주의의 실패로 주민들이 궁핍에 떠는 마지막 현장이라는 인식도 비호감을 더한다.

김정은 정권이 그나마 급하게 붕괴되지 않을 궁여지책은 핵을 포기하고 인권탄압을 개선하면서 국제사회에 동참하는 길밖에 없다. 물론 자유의 물결이 흘러들어가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을 우려하겠지만 언젠가는 겪어야 할 시련으로 보고 일찍 감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북한에는 이미 580여만 개의 휴대폰이 사용되고 있고, 470여 개의 장마당이 열리고 있어서 주민들의 귀와 눈을 막는 차단과 통제의 통치는 머지않아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질지 모른다.

한국정부는 미·북 협상이 결렬된 뒤에도 계속 이어지도록 중재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통일부 장관의 경질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 드라이브의 의도가 느껴진다. 김연철 후보자는 제재완화론자이며, 남북경협 추진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분명히 반대하고 있어서 그 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미·북정상회담의 개최에 한국정부의 중재가 기여한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타협의 내용은 미국 측이나 북한 측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이 북핵의 일차 당사자임에도 협상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 점은 우리 외교의 미숙이고 과제이다. 앞으로 북핵문제의 전략에 있어서 역점을 둬야 할 중요한 숙제이다. 북핵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대처해야 할 이유이다. 양측의 목표와 기본 입장, 전략 등을 면밀히 파악, 투시해 나가면 한국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스탠스를 앞질러 나감으로써 빚는 한·미 간 엇박자도 자제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든, 통일을 위해서든 공산주의 독재정권인 북한의 실상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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